“함장님, 목표까지 1200km. 더 이상 접근하면 이온 엔진의 잔류 에너지가 간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복자 호의 함교를 가득 메운 푸른빛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심우주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의 형상이 선명하게 비춰졌다. 그것은 알려진 어떤 문명의 양식과도 달랐다. 육면체도 구체도 아닌, 불규칙하면서도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기묘한 형태. 마치 심연 그 자체를 잘라내어 빚어낸 것 같은 검은 결정체였다.
함장 김민준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박사, 현재까지 수집된 정보는?”
과학 책임자 이지영 박사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복잡한 데이터를 훑었다. “함장님, 여전히 미확인입니다. 스캔은 표면에서부터 50m까지밖에 침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센서가 먹통이에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 어떤 에너지원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죽은 물체입니다.”
“죽은 물체라기엔, 너무나도 완벽한 형태로 존재하는군요.” 김 함장의 눈은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자연 발생은 불가능합니다.”
“동의합니다. 제 추측으로는, 이 물체 자체가 주변 에너지를 흡수하는 블랙홀 같은 특성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신호도 외부로 방출되지 않는 거고요.” 이 박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가장 불안한 점은, 이 물체 주변의 시공간이 미묘하게 뒤틀려 있다는 겁니다. 우리 함선의 중력장이 계속 불안정해지고 있어요.”
엔지니어 박성현이 뒤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함장님, 계속 이 상태로 머무는 건 위험합니다. 함선의 자체 보호막에 무리가 가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시공간 왜곡으로 인해 시스템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우주 탐사선 ‘정복자 호’는 인류의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기 위해 파견된 최첨단 우주선이었다. 심우주에서의 낯선 조우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은 차원이 달랐다. 마치 우주가 숨겨둔 거대한 비밀을 우연히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김 함장은 이 박사를 돌아보았다. “이 박사, 이 물체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무인 탐사정 ‘나비’를 이용해 최대한 근접 스캔을 시도할 겁니다.”
이 박사의 눈이 빛났다. “정말입니까? 하지만… 안전은요?”
“어차피 이대로 떠날 순 없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가 이 미지의 물체를 발견한 이상, 인류는 이에 대한 답을 요구할 겁니다.” 김 함장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한 기장, 탐사정-01 발진 준비시켜.”
보안 책임자 한지혁 기장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
탐사정-01은 정복자 호의 거대한 격납고를 빠져나와 칠흑 같은 우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조종석에는 한 기장이, 옆자리에는 보조 과학 담당인 오 연구원이 앉아 있었다.
“화면 깨끗합니다. 간섭은 아직 없습니다.” 오 연구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한 기장은 숙련된 조작으로 탐사정의 자세를 미세하게 제어했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수십 년간 우주를 누볐지만, 이토록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목표까지 100km. 스캔 주파수 최대로 올립니다.” 오 연구원이 조작 패널을 두드렸다.
거대한 검은 결정체가 점점 더 가깝게 다가왔다. 화면을 통해 본 물체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표면은 빛을 집어삼키는 듯 검었고, 불규칙하지만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착시를 일으켰다.
“젠장, 이게 대체…” 한 기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표면이 꼭… 숨 쉬는 것 같군.”
“말도 안 됩니다. 무기물이에요. 최소한, 센서상으로는요.” 오 연구원이 반박하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도 미묘한 동요가 섞여 있었다. “전자기장… 왜곡이 심해지고 있어요! 탐사정 보호막이 한계치에 도달합니다!”
그 순간, 탐사정 내부의 조명이 깜빡였다. 모든 시스템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통신 연결이 끊겼다 재개되기를 반복했다.
“함장님! 들리십니까? 여긴 탐사정-01! 통신 상태 불안정합니다! 강한 전자기 간섭이… 으악!”
오 연구원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리가… 머리가 너무 아파요! 뭔가… 뭔가가 들어와요…!”
한 기장 역시 미칠 듯한 두통을 느꼈다. 뇌 속을 파고드는 듯한 차가운 감각. 수많은 목소리, 속삭임,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그의 정신을 짓눌렀다. 낯선 언어들이 귓가를 맴돌고, 폭력적인 색채의 환영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마치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응축된 절규와 비명, 그리고 알 수 없는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그것은 공포였다.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순수한 공포.
“진정해, 오 연구원! 무슨 일이야!” 한 기장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며 자세 제어 스틱을 움켜쥐었다. 탐사정은 흔들리고 있었다.
화면 속의 검은 결정체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불규칙한 문양들이 더욱 선명해지더니, 한순간 섬광처럼 빛났다. 하지만 그 빛은 눈부시지 않고, 오히려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음습한 기운을 내뿜었다.
쿵!
탐사정 전체가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시스템 전체가 먹통이 되었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경고음마저 멈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기장은 오 연구원이 헐떡이는 소리를 들었다.
“도망쳐야… 해…”
한 기장은 본능적으로 조작 패널을 더듬었다. 비상 동력! 재부팅!
가까스로 시스템이 재부팅되는 소리가 들렸다. 조명이 다시 들어오고, 경고음이 울렸다.
“함장님! 함장님! 들리십니까?!” 한 기장이 필사적으로 통신을 시도했다. “여긴 탐사정-01! 즉시 이탈하겠습니다! 즉시 이탈!”
“한 기장! 무슨 일입니까! 응답하라!” 정복자 호 함교에서 김 함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에 의해 공격받았습니다! 오 연구원,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 기장은 탐사정을 전속력으로 후퇴시켰다. 심장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듯한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뒤로 멀어지는 검은 결정체에서, 마치 자신들을 비웃는 듯한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착각에 빠졌다.
***
정복자 호의 의료실. 오 연구원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뇌파는 극도로 불안정했으며, 온몸의 신경계가 과부하된 상태였다.
“함장님, 한 기장님은 다행히 큰 외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 연구원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쇼크 상태인 것 같아요. 뇌파에서 이상 패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의료 담당관이 보고했다.
김 함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한 기장을 바라보았다. 한 기장은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한 기장,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십시오.”
한 기장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듭니다, 함장님. 그것은…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을 직접… 직접 공격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정보량을 억지로 주입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과학 분석실에서는 이 박사와 박 엔지니어가 탐사정의 데이터를 복구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 데이터는…” 이 박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 박사?” 김 함장이 다가오자, 이 박사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화면을 가리켰다.
“함장님, 탐사정의 모든 센서가 먹통이 되기 직전, 이 물체에서 미세한 신호가 포착되었습니다. 주파수는 없지만, 정보량을 가진… 일종의 메시지 같습니다.”
“메시지라고요? 무슨 내용입니까?”
“그게…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겁니다.” 이 박사는 손가락으로 다른 화면을 가리켰다. “탐사정 내부의 환경 센서 기록입니다. 충격 이후, 탐사정 내부의 이온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산화탄소 수치가 평소보다 높게 측정되었어요. 마치… 누군가 탐사정 내부에 함께 탑승해 숨을 쉬었던 것처럼.”
박 엔지니어가 덧붙였다. “물리적인 침입 흔적은 없습니다, 함장님. 탐사정-01의 모든 격벽은 완벽했습니다.”
함교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김 함장은 홀로그램 화면 속의 검은 결정체를 다시 바라보았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물체는 단순한 미지의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탐사정을 통해 정복자 호의 내부를 들여다본 것 같은, 불길하고 거대한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젠장…” 김 함장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때, 함교 모니터 중 하나에서 삐빅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함장님! 비상 상황입니다!” 통신 담당관이 외쳤다. “함선 내부 시스템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격납고 구역에서…!”
김 함장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들은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그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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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