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최첨단 공기 정화 시스템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죽음의 비릿함까지는 걸러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제5 연구실의 문 앞, 두꺼운 강화 유리 너머로 푸른 조명 아래 정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하나 수사관이 옆에 선 한유진을 보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피해자는 박준서 박사. 시간은 대략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사인은 예리한 도구에 의한 경동맥 절단. 치명적이었습니다.”
유진은 말없이 강화유리 너머를 응시했다. ‘푸른 정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연구실 내부는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작업대와 홀로그램 패널들, 그리고 거대한 3D 프린터가 놓여 있었다. 그 중심에는 미완성으로 보이는 거대 메카의 팔 한 조각이 푸른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메카 팔 아래, 박준서 박사가 엎드린 채 미동도 없었다. 혈흔은 최소한으로 튀었지만, 그의 목 부위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완벽한 밀실입니다.” 하나가 덧붙였다. “출입문은 다중 생체 인식과 암호 잠금장치로 되어있습니다. 침입 흔적은 전혀 없어요. 감지 센서에도 어떤 이상 징후도 포착되지 않았고요. 환기구는 사람 한 명은커녕, 작은 애완동물조차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습니다. 창문은 아예 없고요. 비상 탈출구는 보안 시스템과 완전히 연동되어 있어 무단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전자기파 차폐까지 되어 있어서 외부에서의 원격 조작 가능성도 낮습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연구실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 일반적인 살인 사건과는 분명히 달랐다. 살인마가 유령이 아닌 이상, 이 상황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박사는 무엇을 연구하고 있었습니까?” 유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깊은 사고를 담고 있었다.
“주로 초소형 메카 부품과 정밀 조작 매니퓰레이터를 개발했습니다. 특히 ‘나노-매니퓰레이터 001’이라는 코드명의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었죠. 인간의 손으로는 다룰 수 없는 극미세 부품을 조립하거나, 메카 내부의 복잡한 회로를 수리하기 위한 팔입니다. 굉장히 섬세하고, 얇으면서도 강력하답니다.” 하나가 옆에 있는 태블릿으로 박사의 연구 자료를 간략히 띄웠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나노-매니퓰레이터는 마치 은빛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아직 시제품 단계였지만, 그 성능은 이미 업계에서 전설적이었죠.”
유진은 박사의 시신, 그리고 그의 주변에 흩어진 도구들을 살폈다. 작업대 위에는 여러 종류의 공구와 회로 기판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 유진의 시선이 멈춘 곳은 작업대 한편에 놓인 작은 은색 케이스였다. 다른 공구들과 달리 유독 깨끗하고, 미세한 먼지조차 없이 빛나고 있었다.
“저건 뭡니까?” 유진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저건… 나노-매니퓰레이터 001의 본체입니다. 평소에는 저 안에 보관하셨죠. 아주 중요하게 다루셨던 물건이라… 아마 범인도 손대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가 말했다. “지금은 덮개가 닫혀 있지만, 열면 얇은 관 형태로 길게 늘어나는 매니퓰레이터가 나옵니다.”
유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는 연구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보안 팀에 요청했다. 보안 팀장이 신중하게 문을 열고 내부를 재점검했다. 어떤 침입 흔적도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유진은 박사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의 목에 남은 절단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마치 레이저로 자른 듯, 피하지방층까지 정확하게 도려낸 흔적이었다.
“이 상처, 뭔가 이상합니다.” 유진이 중얼거렸다. “일반적인 칼이나 흉기로는 이런 깨끗한 단면을 만들 수 없어요. 설령 나이프 마스터라 해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어떤 것도 침입하지 못했는데… 대체 어떻게…”
유진은 바닥에 엎드린 박사의 손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손은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다. 작은 메카 부품, 아마도 그가 마지막까지 작업하던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그의 손가락 끝에는 미세한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박사는 저항했습니다.” 유진이 말했다. “하지만 무언가에게 잡혀 제압당한 흔적은 없습니다. 단순히… 긁힌 자국입니다. 무언가를 움켜쥐려다가 생긴 자국처럼요.”
그의 시선은 다시 은색 케이스로 향했다. 그는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내부에는 말려 있는 얇은 은색 관이 보였다. 그것이 나노-매니퓰레이터 001의 본체였다. 유진은 옆에 놓인 작은 컨트롤 패드를 집어 들었다. 아직 전원이 켜져 있었다.
“박사는 이 매니퓰레이터를 항상 충전 상태로 두었을 겁니다.” 유진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는 침묵했다. 유진의 예리한 관찰력은 늘 그녀를 놀라게 했다.
유진은 컨트롤 패드의 스위치를 눌렀다. ‘나노-매니퓰레이터 001’이 작동음과 함께 서서히 본체에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얇은 은색 관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 끝에는 작은 레이저 커터가 부착되어 있었다.
“놀랍군요.” 하나가 감탄했다. “저렇게 작고 정교한 팔이라니.”
유진은 나노-매니퓰레이터의 움직임을 조작했다. 팔은 부드럽게 꺾이고 휘어지며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연구실 벽 한편에 있는 ‘재료 이송 포트’에 닿았다. 아주 작은 원형 포트였다. 지름이 겨우 10센티미터 정도 될까 말까 한 크기였다. 연구실 내부의 재료를 외부의 보관소로 이동시키거나, 외부에서 내부로 소량의 정밀 부품을 들여올 때 사용되는 포트였다. 평소에는 단단히 잠겨 있었다.
“저 포트는 어떻습니까?” 유진이 물었다.
“재료 이송 포트 말씀이십니까? 저건 외부 통제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내부에서도 열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총괄 통제실의 승인이 있어야만 열 수 있죠. 게다가 너무 작아서 사람이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가 설명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나노-매니퓰레이터를 조작해 그 팔을 재료 이송 포트 쪽으로 뻗었다. 팔은 미끄러지듯 포트의 틈새로 접근했다.
“잠깐, 지금 뭘 하시려는 거죠?” 하나가 의아해했다.
유진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집중했다. 나노-매니퓰레이터는 포트의 잠금장치 부근을 섬세하게 탐색했다. 그리고 이내 유진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포트, 외부에서 열렸던 흔적이 있군요.” 유진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총괄 통제실 기록에는 전혀…” 하나가 당황했다.
“기록에는 없을 겁니다.” 유진이 말을 잘랐다. “아주 잠시, 그것도 특수한 장치를 사용해서 열었을 테니까요. 이 포트는 단순히 작다는 것 외에도, 내부와 외부의 기압 차이 때문에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외부에서 강력한 압력으로 일시적으로 포트를 열고, 동시에 내부에서 나노-매니퓰레이터를 이용해 외부의 무언가를 당겨 넣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하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유진은 나노-매니퓰레이터의 팔을 다시 거둬들였다. “박사는 나노-매니퓰레이터 001을 이용해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범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죠. 아마 박사 몰래 이 컨트롤 패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을 겁니다. 아니면 아예 똑같은 컨트롤러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박사는 타인이 자신의 연구에 접근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보안 시스템도 철저했고…”
“그래서 더 쉬웠을 겁니다.” 유진이 날카롭게 말했다. “내부에 있는 것을 굳이 외부에서 들여올 필요가 없으니까요. 범인은 외부의 유지 보수 통로를 통해 재료 이송 포트에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특수한 진공 흡착 장치 같은 것으로 포트를 순간적으로 열었을 겁니다. 동시에, 박사가 작업하던 나노-매니퓰레이터 001을 원격으로 조작해 포트 안으로 집어넣었겠죠. 아마 범인이 외부에서 준비해 둔 독극물 주입기나 극소형 칼날 같은 것을 팔 끝에 장착했을 겁니다.”
하나는 입을 떡 벌렸다. 그의 설명은 너무나 완벽했다.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았다.
“즉, 나노-매니퓰레이터 001은 살인 도구이자 동시에 밀실을 만든 트릭이었던 겁니다.” 유진이 말을 이었다. “범인은 이 팔을 이용해 박사를 살해하고, 다시 외부로 빼돌렸습니다. 그리고 재료 이송 포트는 다시 자동으로 닫혔겠죠. 모든 기록은 ‘재료 이송’으로만 남았을 겁니다. 감시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는 아주 작은 이동체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박사의 손에 남은 긁힌 자국은, 그가 죽기 직전 자신의 매니퓰레이터가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막으려다 생긴 흔적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도구에 의해 살해당한 거죠.”
차가운 침묵이 연구실을 가득 메웠다. 하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박준서 박사는 자신이 만든 혁신적인 기술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범인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이용했다.
“그럼 범인은… 이 매니퓰레이터를 다시 가지고 사라졌다는 말씀이시군요?” 하나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증거는 사라졌죠. 하지만…” 유진은 바닥에 떨어진 박사의 안경을 주웠다. 그의 시선은 안경알에 묻은 희미한 얼룩에 멈췄다. “완벽한 범죄는 없습니다. 범인이 나노-매니퓰레이터를 조작할 때, 분명 그 컨트롤러를 만졌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그 과정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겼을 테죠.”
유진은 안경을 하나에게 건넸다. “이 안경에 묻은 얼룩과 박사의 시신에서 채취한 미량의 섬유 조각을 분석해 보세요. 그리고 재료 이송 포트의 미세한 틈새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외부 먼지나 미생물 샘플도요. 범인은 완벽하게 계획했지만, 살아있는 인간이기에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스쳤다. 밀실의 비밀은 풀렸지만, 이제 진짜 살인범을 찾아내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연구실 속에서, 한유진의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다음 단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강철 거인의 시대, 그 그림자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그 칼날의 주인을 찾아낼 작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