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은 사막의 모래처럼 목구멍을 긁었다. 사흘째였다. 지친 발걸음은 잿빛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잔해 위를 힘없이 내디뎠다. 강민은 굳은 표정으로 흐릿한 시야를 멀리 던졌다. 부서진 건물들 사이로 솟아오른 으스스한 실루엣, 폐허 속 깊이 파인 검은 입구. 오늘의 사냥터였다.
“오빠, 여기 맞죠? 지난번 지도에 표시된… 폐기물 처리장 던전?”
유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였지만, 이 쥐죽은 듯 고요한 폐허에서는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불안감이 역력한 두 눈은 강민의 등을 번갈아 보며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허리춤에 찬 낡은 권총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탄창에는 겨우 세 발만이 남아있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젠 다른 선택지가 없어. 정화 장치 부품을 찾지 못하면… 다음 비는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의 시선은 마르다 못해 균열이 간 손바닥에 닿았다. 마지막 남은 식수마저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도시 곳곳에 솟아난 ‘균열’이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이후, 깨끗한 물은 금보다 귀한 존재가 되었다. 지하수가 오염되고, 하늘에서는 독성 비가 내리는 세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균열이 만들어낸 던전 속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폐기물 처리장 입구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무너져 내린 틈새에 숨겨져 있었다. 찌그러진 철제 문짝은 녹슬어 있었고, 그 안쪽은 영원한 밤처럼 어둡기만 했다. 강민은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낡은 손전등은 간신히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자, 유나. 정신 바짝 차려. 여긴 다른 던전보다 더 지독할 거야. 과거의 오물과 균열의 오염이 뒤섞인 곳이니.”
유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공포와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강민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한 발짝. 발밑에서 부서지는 잔해들이 삭막한 소리를 냈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알 수 없는 금속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좁은 통로는 지하 깊숙이 뻗어 있었고, 손전등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암흑 그 자체였다. 천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딸깍, 딸깍’ 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불규칙하게 울렸다.
벽면에 달라붙은 녹슨 배관에서 끈적한 액체가 주기적으로 흘러나왔다. 바닥에는 정체 모를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유나가 바닥을 조심스레 밟았다. “흐읍… 오빠, 이거, 혹시 지난번 그 독성 점액인가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식칼은 이미 허리춤에서 뽑혀 손에 쥐어져 있었다. 무딘 칼날이었지만, 그에게는 생명줄과 같았다.
“맞을 거야. 조심해. 닿으면 피부가 녹아내릴 수도 있어.”
그는 손전등을 휘둘러 통로 구석구석을 비췄다. 오래된 폐기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거미줄처럼 끈끈한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마치 던전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강민은 본능적으로 유나를 뒤로 밀치고 식칼을 움켜쥐었다. 컹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형상의 그림자가 전등 불빛에 잡혔다. 거대한 쥐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쥐가 아니었다. 덩치는 소형견만 했고, 피부는 녹색의 점액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핏발 선 눈은 살기에 번뜩였다.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길게 튀어나와 있었다.
‘하수도 변이체!’ 강민은 이를 악물었다. 한때는 그저 하찮은 해충이었을 뿐. 하지만 균열 이후, 이놈들은 맹독과 함께 인간을 사냥하는 존재로 변모했다. 놈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악취는 코를 찌르는 듯했다.
“유나, 뒤로! 독액 조심해!”
강민은 짧게 외치며 쥐의 돌진을 옆으로 피했다. 놈이 지나간 벽면에서는 산성액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했다. 한 방이라도 맞으면 피부가 녹아내릴 것이다. 놈은 강민을 스쳐 지나가 벽에 부딪혔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 일부가 움푹 들어갔다. 그 충격으로 천장에서 또 다른 잔해들이 떨어져 내렸다.
“망할!”
강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놈이 몸을 돌리는 순간, 그는 낡은 식칼을 쥐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강민의 목표는 놈의 목덜미였다. 한 번에 끝내야 했다. 놈의 독액은 칼날마저도 부식시킬 수 있었다. 깊숙이 찔러 넣었지만, 변이체의 피부는 생각보다 질겼다.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그 과정에서 독액을 사방으로 뿌렸다. 강민은 간신히 피했지만, 옷자락 일부에 액체가 튀어 ‘치지직’ 소리와 함께 타들어갔다.
결국, 강민은 칼을 비틀어 놈의 경동맥을 끊어냈다. 거대한 쥐는 몇 번 경련하더니 이내 축 늘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녹색 점액이 흥건하게 흘러나와 썩은 내를 더욱 진하게 풍겼다.
강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변이체를 내려다봤다. 이미 식칼은 엉겨 붙은 독액 때문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겨우 버틴다는 느낌이었다. 그의 손에 든 식칼은 이제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유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더 깊이 들어가야 해.”
그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놈이 뛰쳐나온 곳은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그곳에서는 뭔가 기계적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어쩌면 정화 장치의 잔해일 수도 있었다.
수색을 마친 강민은 통로 구석에 놓인 낡은 작업대를 발견했다. 먼지에 덮인 탁자 위에는 부식된 공구들이 널려 있었고, 그 옆에는 찢겨나간 문서 조각이 있었다.
“오빠, 여기 뭐 있어요!” 유나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작은 희망에도 금세 생기를 되찾는 아이 같았다.
강민이 다가가 종이를 주워 들었다. 낡아서 바스라질 것 같은 종이에는 알아보기 힘든 글씨와 함께, 회로도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하 3층… 중앙 제어실… 정화 장치… 마지막 동력원…’
글씨는 드문드문 이어졌지만, 강민의 눈은 번뜩였다. 이건 분명 우리가 찾는 정화 장치 부품, 아니면 그와 관련된 핵심 정보일 터였다. 이 폐기물 처리장이 과거에 거대한 지하수로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정화 장치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찾았어, 유나. 희망이 보여.”
강민은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피로와 절망감이 잠시나마 걷히는 듯했다. 유나 역시 그의 미소를 보며 살짝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사라졌다. 강민이 종이를 뒤집자, 뒷면에는 누군가 급하게 쓴 듯한 경고 문구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경고… 지하 3층… 변이체 강화… 절대… 접근 금지… 연구원… 생존 불능…’
강민의 심장이 다시금 날카롭게 조여 들었다.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곧장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변이체 강화’라는 문구는 아까 만났던 하수도 변이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존재를 암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생존 불능’이라니.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뒤에는 유나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생존이 걸려 있었다.
물을 찾지 못하면, 이대로 말라 죽을 뿐이었다.
강민은 손에 든 식칼을 더욱 굳게 쥐었다. 녹아내리는 칼날이 그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아픔마저도 무감각해진 채, 그는 오직 나아가야만 했다.
“가자, 유나. 3층으로.”
미지의 어둠 속으로. 그곳에 어떤 끔찍한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강민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굳건했다. 죽음이 기다리든, 생존이 기다리든, 그 끝을 봐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