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벙커에선 낡은 형광등이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거친 기계음과 낮은 목소리들을 비췄다. 눅진한 흙먼지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낡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한쪽에서는 땜질하는 스파크가 튀었고, 다른 쪽에서는 쇠붙이 긁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강산 대장! 4호기 연료계통 누유가 심합니다. 수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두터운 장갑을 낀 손으로 거대한 철제 다리를 쓰다듬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로 얼룩져 있었지만, 두 눈만은 형광등 빛 아래서 강렬하게 빛났다. 강산이었다. 한때 제국 최고의 기갑 정비사로 이름을 날렸으나, 지금은 이 지하 공동체 ‘새벽별’의 대장으로 불리는 남자.

“시간이 없는데… 다른 방법은 없나?”

강산은 한숨을 쉬며 옆에 놓인 설계도를 집어 들었다. 제국 수도 ‘아이언 가드’ 외곽의 에테르 정제소. 그곳은 제국의 심장부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과도 같았다. 정제소를 점거해야만, 그들의 존재를 제국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대장. 억지로 움직였다간 폭발할 수도……”

“젠장.”

강산은 짧게 욕설을 뱉었다. 부패한 아레스 제국은 대지에 묻힌 고대 에너지원, 에테르를 독점하여 천상에 닿을 듯한 첨탑 도시들을 건설했다. 반면, 에테르를 캐내는 땅의 사람들에게는 유독성 찌꺼기와 죽음만이 남았다. 강산의 가족도, 친구들도 그렇게 사라져갔다. 더 이상 숨어 지낼 수는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흙먼지 속에서 죽어가는 그림자가 아니었다.

“내가 직접 나간다.”

강산의 말에 주위가 순간 정지했다.

“대장?! 위험합니다! 대장은 우리 모두의 기둥입니다!”

“그래, 기둥이 쓰러지기 전에 직접 싸워야지. 4호기 부품을 내 기체, ‘돌풍’에 달아. 그리고 출격 준비해. 오늘 밤, 우리는 제국의 심장을 찌른다.”

강산의 눈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의 확고한 의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새벽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 잿빛 하늘 아래, 거대한 실루엣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낡은 공업용 메카들을 개조한 ‘쇠말벌’ 부대였다. 제국제 타이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투박하고 작은 크기였지만, 그들의 기체 곳곳에는 평민들의 피땀과 기지가 서려 있었다.

“돌풍, 출격 준비 완료.”

강산은 자신의 애기(愛機) ‘돌풍’의 조종석에 앉았다. 거친 철판 냄새와 엔진 오일 냄새가 그를 감쌌다. 전면 스크린에는 목표인 에테르 정제소가 보였다.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수십 개의 감시탑이 어둠 속에 날카로운 눈을 번득였다.

“모두 들리나? 작전명 ‘새벽별’. 목표, 제1 에테르 정제소. 우리의 존재를 잊은 제국에게, 평민들의 분노를 보여줄 시간이다. 움직인다!”

강산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퍼져 나갔다. ‘쇠말벌’ 부대원들의 심장 박동이 일제히 고동쳤다.

“돌풍, 선두!”

강산은 스로틀을 최대로 밀어붙였다. 낡은 엔진이 으르렁거리며 붉은 불꽃을 토해냈다. ‘돌풍’은 묵직한 발걸음으로 땅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쇠말벌들이 거친 쇳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정제소 외곽 경비선에 접근하자, 적의 감지 시스템이 그들을 포착했다.

“경고! 미확인 비행체 접근! 즉시 격추하라!”

경비탑에서 섬광이 터지며 레이저 포대가 불을 뿜었다. ‘위이이잉!’ 굉음과 함께 붉은 광선이 밤하늘을 갈랐다.

“흩어져! 3번, 5번, 측면으로 우회! 나머지는 정면 돌파!”

강산은 민첩하게 기체를 조종하며 레이저 세례를 피했다. ‘돌풍’은 옆구리에 거대한 드릴을 달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채광용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강력한 관통 무기였다. 강산은 그대로 경비탑 하나를 향해 돌진했다.

“크아아악!”

철판 긁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울렸다. ‘돌풍’의 드릴이 경비탑의 강철 기둥을 뚫고 지나가자, 탑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좋아! 후속 부대, 진입!”

하지만 그들의 진입을 막아서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제국 최정예 기동부대 ‘철갑기사단’의 대장, ‘칼날’ 장군이 탑승한 타이탄 ‘제노스’였다. 제노스는 거대한 양손에 플라즈마 검을 쥐고 있었다. 번쩍이는 푸른 빛이 어둠을 가르고 강산을 노려봤다.

“미천한 벌레들이 감히… 이 아레스 제국의 위용을 더럽히려는가!”

칼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기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제노스는 거대한 발걸음으로 땅을 울리며 다가왔다. 타이탄의 중장갑은 쇠말벌의 공격으론 흠집도 내기 어려웠다.

“각개 격파는 피한다! 전원, 칼날의 제노스를 집중 공격해라! 취약 부위는 무릎 관절과 후방 냉각 장치다!”

강산은 냉정하게 지시했다. 쇠말벌들은 일제히 제노스를 향해 돌진했다. 몇몇 기체가 미끼가 되어 타이탄의 시선을 끄는 사이, 강산은 ‘돌풍’을 제노스의 다리 사이로 쑤셔 넣었다.

“감히 내 발밑으로 기어들어 오다니!”

제노스의 플라즈마 검이 땅을 찍었지만, ‘돌풍’은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거대한 무릎 관절을 향해 드릴을 발사했다. ‘쉬이이이익! 쾅!’ 드릴이 강철판에 부딪히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흠집은 미미했지만, 타이탄의 동작이 잠시 멈칫했다.

“지금이다! 7번! 전방 보조 로켓 발사!”

미리 대기하고 있던 쇠말벌 7호기가 기체에 매달린 투박한 로켓을 제노스의 냉각 장치에 발사했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제노스의 등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이런 젠장! 감히! 감히 내 기체에 흠집을 내다니!”

칼날 장군은 분노했다. 제노스의 플라즈마 검이 난폭하게 휘둘러지며 쇠말벌 몇 대를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로 만들었다. ‘비이이이이익!’ 비명과 함께 통신이 끊어졌다.

강산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뒤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전원, 흩어져! 정제소 내부 진입조는 서둘러라! 제노스 교란조는 계속해서 어그로를 끌어!”

강산은 다시 한번 제노스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돌풍’의 드릴이 이번에는 어깨 관절을 노렸다. ‘지지직!’ 고대 에테르 제어 장치에서 떼어낸 고출력 에너지 충격기가 강산의 드릴에 장착되어 있었다. 드릴이 철판에 닿자마자 강력한 전기가 흘러들며 제노스의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켰다.

“크으으윽! 이 무슨 조잡한 기술이!”

칼날은 비명을 질렀다. 제노스의 움직임이 잠시 마비되었다. 그 틈을 타 정제소 내부 진입조가 보안 게이트를 부수고 안으로 침투했다.

“핵심 제어실 점거 성공! 모든 에테르 흐름을 변경 중입니다!”

환호성이 통신망을 타고 울려 퍼졌다.

“잘했다! 이제 철수다! 쇠말벌, 후퇴!”

강산은 서둘러 제노스에게서 떨어졌다. 타이탄의 시스템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감히 나의 제국을 농락하고 무사히 돌아가려 하다니! 어림없다!”

칼날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강산을 쫓았다. 제노스의 팔에 달린 대구경 레이저 캐논이 ‘파아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붉은 광선을 발사했다. 강산은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돌풍’의 왼쪽 어깨 부위가 녹아내렸다.

“크윽!”

강산은 이를 악물었다. 정제소는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제 할 일은 최대한 많은 기체를 살려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쇠말벌 부대는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제국의 증원군이 곧 도착할 터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쇠말벌들의 실루엣을 보며 칼날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에테르 정제소는 멈췄고, 제국의 심장이 잠시 멈췄다. 미천한 벌레들이 일으킨 작은 반란이, 제국의 견고한 성벽에 균열을 낸 것이다.

강산은 피로에 젖은 몸으로 ‘돌풍’의 조종석에 기대어 앉았다. 스크린 너머로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붉게 물든 새벽 하늘이, 마치 오늘 밤 그들이 일으킨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우리는… 해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들은 비록 작은 불씨였지만, 이제 그 불씨는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평민들의 반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