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보이지 않는 틈

고요했다. 언제나처럼. 서울의 밤은 창밖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불빛들로 가득했지만, 내 공간은 소리 없는 심해처럼 깊고 고요했다. 팰리스 스카이 1703호. 내 이름 석 자로 계약된, 오롯이 나만의 성.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퇴근 후 널브러진 몸을 겨우 일으켜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쳤다. 거울 속의 나는 오늘 하루도 버텨낸 피곤한 전사 같았다. 피부에 스며드는 스킨의 차가운 감각이 현실감을 일깨웠다. 습관처럼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닫혀 있어야 할 옷장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내가 열어뒀나?”

기억이 가물거렸다. 워낙 건망증이 심한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손으로 닫았다. 뻑뻑한 경첩 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부드러운 이불이 온몸을 감쌌다. 천장을 응시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곱씹다 보면, 이내 잠이 스르륵 찾아오곤 했다.

정확히 열두 시를 알리는 디지털시계의 불빛이 침실을 희미하게 밝혔다. 그리고, 그때였다.

*쿵.*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하게. 주방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혼자 사는 집에서 한밤중에 들리는 소리는 항상 불길했다. 도둑? 아랫집이나 윗집에서 나는 소리인가?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뭐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발끝으로 소리 나지 않게 거실로 나섰다. 어둠 속에 잠긴 거실은 그저 평범했다. 식탁 위에는 어제 먹다 남은 배달 음식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소파 위에는 벗어놓은 잠옷이 구겨져 있었다.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의자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아주 미세하게, 삐딱하게 놓여 있었다. 분명 퇴근하고 들어왔을 때는 벽에 바싹 붙여 놓았었다.

“내가 치웠던가?”

기억을 되짚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식탁 의자를 저렇게 애매하게 밀어놓고 잠자리에 들었을 리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랍을 열어 칼이나 둔기가 사라졌는지 확인했다.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혹시 환각이었을까? 피로가 극에 달하면 간혹 헛것이 보이거나 들릴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름 건강하게 산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다시 침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하지만 한번 깨진 고요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층간 소음일 수도 있고, 건물 노후화 때문일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잠이 들락말락 하는 몽롱한 상태에서 다시 주방 쪽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번에는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짤그랑.*

유리병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젠 착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내 주방에서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망설일 수 없었다.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다.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숨을 헙 들이켰다.

싱크대 옆 찬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유리로 된 양념통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져 있었다. 후추가루가 사방으로 흩뿌려져 온 사방이 검은 점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양념통이 바닥에 깨져 있는데,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가 깨진 것처럼, 산산조각 난 파편들이 한 곳에 뭉쳐 있었다. 그리고… 양념통이 떨어져 깨질 만한 높이의 찬장이 아니었다. 손을 뻗어 겨우 닿을 만한 가장 윗 칸에 있던 것이 분명했다.

“이게… 무슨…”

내 입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둑이라면 굳이 양념통을 깰 리가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정갈하게 파편을 모아놓은 것처럼. 바람 때문이라고 하기엔 창문이 단단히 닫혀 있었다.

손전등 빛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한여름밤인데도 등골을 타고 한기가 흘렀다.

두려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 팰리스 스카이 1703호는 분명 잠겨 있었고, 나 혼자 있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내 집에 침입했다는. 하지만 물리적인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믿을 수 없었다. 이건 뭔가 잘못된 일이었다. 나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이젠 그 어둠이 친근하기보다는 섬뜩하게 느껴졌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구… 없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고요한 적막만이 내 목소리를 삼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어딘가 모를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 내 등 뒤에서, 아니, 내 바로 옆에서.

내가 서 있는 주방 한가운데, 차갑게 식은 공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듯했다. 소름이 돋아 팔을 비볐다. 내 집이 더 이상 나만의 성이 아니라는 섬뜩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내 공간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겨버린 것만 같았다.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밤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했다. 깨진 유리 파편과 흩뿌려진 후추가루가 내 밤을 잔인하게 조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