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밤은 깊고, 삭막했다. 제국력 173년, 가을. 황제는 황궁에서 신선들이 빚어낸 영주(靈酒)를 마시며 희희낙락했지만, 제국 변방의 백성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밤마다 별똥별에 빌었다. 영양실조로 스러져가는 아이들의 창백한 뺨, 메마른 밭에서 거둬들일 것 없는 농민들의 절망적인 눈빛. 모든 것은 거대한 제국의 탐욕스러운 손아귀에서 비롯되었다. 황제의 지극한 신임을 받는 신하들이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고, 그들의 목숨까지도 마치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시대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숲 속, 스무 명 남짓한 그림자가 조용히 움직였다. 낡은 천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강철 같은 의지가 번뜩였다. 그 선두에 선 이는 어린 여자였다. ‘아린’. 찢어진 옷자락과 먼지 묻은 얼굴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기개와 날카로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가는 허리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단도가 매달려 있었다. 이 칼은 대대로 그녀의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이었다.

“모두 들었겠지?” 아린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숲의 정적을 꿰뚫는 듯 또렷했다. “오늘 밤, 제국 제13곡물창을 습격한다. 저들의 양식은 곧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다. 단 한 톨도 흘리지 마라. 그리고… 불필요한 살생은 피한다.”

“알겠습니다, 아린 님!” 낮은 함성이 숲을 울렸다. 그들의 눈에는 굶주림과 분노, 그리고 아린에 대한 깊은 신뢰가 교차했다. 그들은 평범한 농부이자, 사냥꾼이자, 때로는 도적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국의 불의에 맞서는 작은 불씨들이었다.

아린은 고개를 들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저 별들 중 과연 몇 개나 우리의 길을 비춰줄까. 그녀는 자신에게 맡겨진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뒤에는 수천, 수만 명의 굶주린 이들이 있었다.

제13곡물창은 제국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견고한 석벽과 높이 솟은 감시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황금빛 영기(靈氣)가 벽을 따라 미약하게 흐르는 것이 보였다. 제국의 선법(仙法)으로 강화된 방어술이었다. 이 기운은 평범한 인간에게는 느껴지지 않겠지만, 아린에게는 대지를 누르는 듯한 거대한 압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아린은 이미 며칠 밤낮으로 이곳의 지형을 탐색했다. 굶주림으로 잠 못 이루는 밤, 그녀는 굶주림보다 더 강렬한 의지로 곡물창의 모든 허점을 파악했다.

“뒷문 쪽으로 이동한다.” 아린이 손짓하자, 그림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숲을 벗어나자 눈앞에 거대한 곡물창의 위용이 드러났다. 황량한 평원 한가운데, 마치 거인의 무덤처럼 웅장하게 서 있었다. 저 안에 쌓인 곡식들은 이 제국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거둬들인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백성들의 생명줄을 조이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뒷문은 의외로 삼엄했다. 제국 병사 네 명이 창을 들고 서 있었고, 그들 뒤에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색 도포를 입은 자가 있었다. 선관(仙官)이었다. 제국의 탐욕스러운 관리이자 약탈의 앞잡이. 그들은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선력(仙力)을 사용하는 자들이었다.

“조심해.” 아린이 속삭였다. “저 붉은 도포는 제국 선부(仙府)의 하급 선관이다. 비록 하급이라 해도, 우리 평범한 이들과는 격이 다르다. 정면에 나서지 말고, 기습으로 제압해야 한다.”

그녀는 손짓으로 병사들에게 은밀한 신호를 보냈다. 활을 든 자들이 먼저 움직였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세 발의 화살이 날아갔다. 화살촉에는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약초 독이 발라져 있었다. 세 명의 병사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흐느적거리며 쓰러졌다. 치명상은 아니었다. 아린은 불필요한 살생은 피하라고 분명히 일렀다.

남은 병사 한 명이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아린이 그림자처럼 튀어나갔다. 그녀의 움직임은 육안으로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쉬이익!’ 그녀의 손에서 섬광처럼 푸른 단도가 번뜩였다. 칼날이 병사의 목에 닿기 직전 멈췄다. 아린은 그의 손에 들린 창을 걷어차고, 다른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 내지 마라. 우리 역시 너희와 같은 백성이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맑았지만,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병사는 두려움에 질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은 그를 기절시키고 동료들에게 눈짓했다.

“감히 건방진 놈들이!” 붉은 도포의 선관이 소리쳤다. 그의 몸에서 짙은 붉은 기운이 솟아오르며,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의 손에는 연기처럼 피어나는 검은 철편이 들려 있었다. “하찮은 백성들이 감히 제국의 양식을 탐하다니! 모두 여기서 목숨을 내놓아라!”

선관은 거대한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다. ‘펑!’ 땅이 갈라지고, 나무들이 부러져 나갔다. 선관의 눈에는 이들을 그저 거슬리는 벌레로 여기는 경멸감이 가득했다.

아린은 앞으로 나섰다. “뒤는 맡겨라! 내가 저자를 상대한다!”
그녀의 몸에서 푸른빛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선관의 붉은 기운과는 다른, 맑고 청량한 기운이었다. 마치 숲의 정령이 응축된 듯, 거대한 자연의 힘이 응축된 듯한 느낌이었다.

“어린 계집이 감히!” 선관이 비웃었다. 그의 거만한 표정에는 아린을 깔보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네놈에게서 희미하게 영기가 느껴지긴 하나, 고작 그런 잔재주로 날 막을 수 있을 줄 아느냐! 감히 제국의 위엄을 모독하다니, 그 대가는 죽음이다!”

선관의 검은 철편이 아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철편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 속에서 검은 기운이 뱀처럼 꿈틀대며 아린을 옥죄어왔다. 철편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땅이 깊게 패였고, 주변의 공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린은 침착했다. 그녀의 두 눈은 철편의 궤적을 꿰뚫어 보았다. ‘휘익!’ 그녀는 허리를 숙여 공격을 피하며, 동시에 푸른 단도를 휘둘렀다. 단도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기운이 검은 기운을 찢어발겼다. 그 순간, 선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흥미롭군.” 선관이 씩 웃었다. “정체가 뭐냐, 계집! 이런 비범한 선력은 평범한 백성에게서 나올 수 없다!”

“제국에 짓밟힌 이름 없는 백성일 뿐.” 아린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고 빨랐다.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같으면서도, 거대한 바위를 움직이는 듯한 굳건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선관의 주변을 맴돌며 약점을 찾았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에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비기(秘技)가 담겨 있었다.

선관은 묵직하고 강맹한 공격을 퍼부었지만, 아린은 그림자처럼 피하거나 흘려보냈다. 그녀의 푸른 단도는 선관의 붉은 기운을 흩트리고 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선관의 공격이 거칠어질수록, 아린은 더욱 침착하게 그의 빈틈을 노렸다.

“제국 무인의 비기, ‘혈화참(血花斬)’!” 선관이 외쳤다. 그의 철편에서 붉은 기운이 폭발하며 수십 개의 칼날이 되어 아린을 향해 쏟아졌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날은 피할 곳을 주지 않았다.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웬만한 하급 선관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었다.

아린은 눈을 감았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녀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기운이 아니었다. 마치 수많은 푸른 꽃잎들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회오리 푸른 꽃’이라 불리는, 그녀 가문의 비기였다. 이 비기는 공격이 아닌 방어에 특화된 기술로, 공격을 감싸 안아 힘을 분산시키고 무력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수많은 푸른 꽃잎들이 붉은 칼날들을 감싸 안으며 산산조각 냈다. 선관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눈빛에는 경멸이 사라지고, 당혹감과 함께 희미한 공포가 스며들었다.

“이럴 수가! 너는… 그 잊혀진 가문의 후예인가!” 선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말에서 아린의 가문이 한때 제국에 위협적이었거나, 혹은 깊은 인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푸른 꽃잎의 회오리가 붉은 칼날을 뚫고 선관에게 날아들었다. 선관은 황급히 철편으로 방어했지만, 회오리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선관은 멀리 날아가 바위에 부딪혔다. 바위는 금이 가고, 선관의 몸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젠장! 네놈의 힘으로는 날 죽일 수 없다! 나는 선관이다! 감히 제국의 선관을 해치려 하다니, 죽음으로써 갚아야 할 것이다!”

“죽일 필요 없다.” 아린이 말했다. “빼앗을 뿐이다.”

그녀는 선관에게 다가가지 않고, 땅에 박힌 거대한 바위를 향해 푸른 단도를 휘둘렀다. ‘파지직!’ 단도에서 뻗어 나간 푸른 기운이 바위를 순식간에 관통했다. 바위는 거대한 굉음을 내며 곡물창의 견고한 석벽을 향해 굴러 떨어졌다. 아린은 선관을 무력화시키는 대신, 곡물창의 방어를 파괴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가장 효율적이고, 동료들에게도 안전한 선택이었다.

‘쿠구궁!’ 곡물창의 석벽이 바위에 부딪히며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거대한 돌덩이가 무너져 내리며 곡물창의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처럼 쌓인 곡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문을 통해 들어간다! 서둘러라!” 아린이 외치자, 대기하고 있던 백성들이 일제히 곡물창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함께 굶주렸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한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들은 곡식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손길, 기쁨에 찬 탄성들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선관은 뒤늦게 균열이 난 벽을 향해 날아갔지만, 이미 수많은 백성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이런 미물들이 감히…!” 그는 분노에 몸을 떨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의 눈앞에는 허기진 백성들의 분노와 희망이 뒤섞인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린은 쓰러진 병사를 일으켜 세웠다. “도망쳐라. 그리고 전해라. 제국의 탐욕이 계속되는 한, 백성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그리고 다음은 너희의 황제가 될 것이라고.”

병사는 공포에 질린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달아났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경외심마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아린은 곡물창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호성을 들었다. 그들의 함성 속에는 굶주림에서 벗어날 희망과, 불의에 맞서는 작은 승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린의 얼굴에는 희미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 작은 승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제국의 뿌리는 깊고 견고했으며, 이 작은 불씨로는 아직 거대한 폭풍을 일으킬 수 없었다.

“단목 어르신… 저희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차가운 빛을 내고 있었다. 이 별들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이 곡물창의 곡식으로는 그들 모두를 배불릴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지.” 아린은 푸른 단도를 옷자락에 갈무리하며 굳게 다짐했다.
그녀의 눈빛은 비록 지쳐 보였지만, 그 안에는 결코 꺼지지 않을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희망의 불꽃이었다. 거대한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백성들의 염원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릴 불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