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류진은 땀으로 축축한 이마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턱으로 걷어 올렸다. 2342년, 네오 서울 지하 300미터. 이곳은 ‘구시가지’라 불리는 고대 유적지 중에서도 가장 깊은 심연이었다. 도시의 심장부 아래, 수백 년간 잊힌 채 잠들어 있던 거대한 지하 구조물. 고고학 연합은 이곳을 탐사하는 데만 10년이 넘는 시간을 쏟았지만, 아직도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젠장, 또 막혔네.”
그녀의 옆에서 소형 드릴을 조작하던 동료 연구원, 강민이 툴툴거렸다. 특수 합금으로 된 드릴 날이 고대 문명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단단한 벽에 닿자 불꽃을 튀기며 멈춰 섰다. 센서가 벽의 밀도를 측정하는 동안, 진은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오직 자신들의 헬멧 내장형 라이트만이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이건 그냥 돌덩이가 아니야. 뭔가 다른 재질인 것 같아.” 진이 헬멧 스캐너로 벽을 훑으며 말했다. “밀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구성 성분은… 미지의 물질이 섞여 있어.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강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뭘로 뚫어요? 이 프로젝트 예산도 바닥나 가는데.”
그들의 임무는 구시가지 최심부에서 발견된 ‘제13문’이라 불리는 거대한 아치형 통로 너머를 탐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 너머에는 끝없는 미로 같은 복도와 더 이해할 수 없는 벽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지난 몇 달간, 그들은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진은 손가락으로 차가운 벽을 더듬었다. 매끄러운 표면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단 한 치의 손상도 없었다. 문득, 그녀의 손끝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벽면을 따라 돋아난 아주 작은 돌기였다. 처음에는 그저 무작위적인 무늬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어떤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강민, 잠시 이쪽 좀 봐.”
강민이 다가왔다. 진은 헬멧 라이트를 돌기에 집중시켰다. “이거… 뭔가 이상해. 단순히 장식이 아닌 것 같아.”
돌기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그것들은 미묘하게 빛을 흡수하고 있었다. 진은 본능적으로 어떤 에너지 흐름을 감지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뻗어 돌기 중 하나를 건드렸다.
그 순간, 섬광이 터졌다.
“으악!” 강민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진의 손끝에서 시작된 빛은 벽면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돌기들이 하나둘씩 깨어나듯 강렬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벽 전체가 거대한 회로도처럼 빛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서 웅장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이게… 뭐야?” 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빛을 응시했다. 빛은 그녀의 손끝에서 벽으로, 다시 벽에서 주변으로 전이되는 듯했다. 그녀의 헬멧 센서가 미친 듯이 경고음을 내뱉었다. 감지할 수 없는 에너지 파동이 온몸을 휘감는 듯한 기분이었다.
푸른빛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벽의 중앙에서부터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균열이라기보다는 공간이 부드럽게 뒤틀리는 것처럼 보였다. 고대 벽은 마치 안개처럼 사라지면서 그 너머의 공간을 드러냈다.
그곳은 또 다른 통로가 아니었다. 거대한 원형의 공간이었다.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돌기둥이 서 있었고, 그 기둥 위에는 수정처럼 맑게 빛나는 구체가 얹혀 있었다. 구체는 희미한 빛을 내뿜으며 공간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세상에… 이건 지도에도 없던 곳인데!” 강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은 홀린 듯 그 공간으로 발을 내디뎠다. 신비로운 푸른빛이 발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듯했다. 돌기둥과 구체는 자신들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구체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구체에 닿는 순간, 거대한 에너지가 온몸을 관통했다. 그것은 전기가 아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마치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진의 눈앞에서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환영이 펼쳐졌다. 낯선 문자의 홍수, 별들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셀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이 짧은 순간 그녀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으윽!” 진은 무릎을 꿇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환영이 사라지고, 주변의 푸른빛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 안에는 이제까지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각이 남아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미세한 진동, 바닥을 이루는 물질의 구성, 심지어 강민의 심장 박동까지도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빛.’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작고 푸른 빛줄기가 피어났다. 마치 손안에 작은 별이 탄생한 것처럼. 빛은 춤추듯 일렁이다가 그녀의 의지에 따라 모양을 바꾸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시 사라졌다.
“진!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강민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경외심이 뒤섞여 있었다.
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었다. 기술도 아니었다. 오래전, 고대의 존재들이 ‘마법’이라 불렀던 것과 가장 가까운 힘일 터였다. 우연히,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그녀는 그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좀 더 강렬하게 ‘빛’을 생각했다. 그러자, 손에서 피어난 푸른빛은 주변을 환하게 밝힐 정도로 강해졌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지만, 그 안에는 방금 얻은 힘의 엄청난 무게와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미래에 대한 설렘, 그리고 깊은 고뇌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구시가지의 심연은 침묵했다. 그곳에서,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류진은 알고 있었다. 이 힘은 세상을 바꿀 수도, 혹은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모든 것은 그녀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그녀는 고대 문명이 남긴 마지막 유산을 짊어진 채, 혼자 어둠 속에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