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핏빛 수정

축축한 어둠이 폐부를 찔렀다. 동굴 천장에서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적막을 깨트리는 유일한 음성이었다. 진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횃불을 높이 들었다. 붉은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오그라들기를 반복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검은 굴이었다. 제국 수도의 화려한 궁전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불빛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이곳은 모든 생명이 간신히 숨 쉬는 곳이었다.

“진호 형, 더는 못 가겠어요.”

뒤따르던 어린 동료, 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율은 채 열여덟도 되지 않은 몸으로 등에는 제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 안에는 혹독한 제국의 세금으로 바쳐야 할 ‘어둠의 심장’ 수정 조각들이 들어있을 터였다. 모두 목숨을 걸고 캐낸 것들이다.

진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왼손으로 벽을 짚고 몸을 지탱했다. 거친 바위의 감촉이 손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겨우 이 정도에 지칠 때가 아니야, 율. 우리는 아직 목표량의 절반도 못 채웠어. 이대로 돌아가면 이번 달은 또 굶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벌써 이틀 밤낮을 헤맸잖아요. 지난번에도 이 안쪽에서 마물한테 당한 사람이 몇인데… 제국 놈들은 우리가 여기서 죽든 살든 아무 관심도 없어요. 수정만 가져오면 된다고…” 율의 목소리가 점차 울음 섞인 쉰 목소리로 변했다.

“알아.” 진호는 짧게 대답했다. 모를 리가 없었다. 제국의 황금빛 찬란한 문양은 늘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을. 평민들의 고통은 그들에게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못했다.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굴은 점점 더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습기와 함께 퀴퀴한 흙냄새, 그리고 희미한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마물의 흔적이었다. 이따금씩 바닥에 널브러진 짐승 뼈 조각들이 이곳의 위험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조심해, 율. 발밑을 잘 보고.”
그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앞에서부터 슥슥,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호는 반사적으로 횃불을 앞으로 내밀었다. 불꽃에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

“거미다…! 젠장, 독거미떼잖아!”

율의 비명이 굴 안에 울려 퍼졌다. 거대한 동굴 거미 한 마리가 눅진한 거미줄을 토해내며 진호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여덟 개 눈은 붉은 빛으로 번뜩였다. 진호는 재빨리 품에서 낡은 단검을 뽑아 들었다. 칼날은 지난 세월의 흔적처럼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은 마치 살아있는 맹수처럼 거미의 다리를 정확히 노렸다.

쉬이이익!

거미의 날카로운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갔다.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더욱 맹렬하게 진호에게 덤벼들었다. 그 뒤로 수십 마리의 새끼 거미들이 거대한 어미를 따라 진호와 율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놈들의 등에는 흉측한 검은 무늬가 선명했다.

“율, 뒤로 물러나! 여기는 내가 막을게!” 진호는 소리쳤다.
율은 겁에 질린 채 등 뒤로 주춤거렸다.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지만, 진호는 그에게서 필사적인 생존의 의지를 보았다. 율은 이미 수십 번도 더 이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을 테니까.

진호는 쉴 새 없이 단검을 휘둘렀다. 거미의 끈적한 체액이 그의 옷을 더럽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거미들의 움직임을 쫓았다. 칼날이 휘둘러질 때마다 거미들의 다리가 잘려나가고, 몸통이 꿰뚫렸다. 하지만 놈들은 끝없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이곳은 마물들의 소굴이었다. 제국의 탐욕이 평민들을 밀어 넣은 지옥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진호의 눈에, 불현듯 굴 한쪽에 박혀 빛나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희미한 푸른빛이 주변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어둠의 심장 수정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발견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맑은. 저 정도면 이번 달 할당량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값나가는 수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위험 신호가 울렸다. 저렇게 노출된 채로 빛나는 수정은 함정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런 깊은 곳에서는.

“진호 형, 저거 봐! 저거면… 저거면 우리 다 살 수 있어!” 율이 흥분해서 외쳤다.
율은 진호의 만류를 듣지도 않고 푸른빛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진호는 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 율! 저건…”

쉬이이이이익!

그 순간, 동굴 벽의 그림자가 흔들리더니, 거대한 촉수 하나가 진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촉수는 순식간에 진호가 베었던 거미들의 시체를 꿰뚫고 허공에서 흔들렸다. 거미들은 촉수 끝에서 경련하다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거대한 촉수의 주인은 벽의 틈새에 숨어있던 거대한 촉수괴물이었다. 녀석의 몸은 어둠에 가려져 있었지만, 촉수 끝의 날카로운 이빨들이 횃불 빛에 번뜩였다.

촉수괴물은 어둠의 심장 수정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진호는 직감했다. 그리고 놈이 이 굴에 나타난 것은 율이 말했던 ‘깊숙한 곳에서 마물에 당한 사람들’의 희생 때문일 터였다. 무분별한 채취가 놈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결국에는 더 강한 마물들을 불러내는 셈이었다.

“젠장, 이런 괴물까지 나타났다고?” 진호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촉수괴물은 율이 바라보던 수정을 감싸는 듯, 몸을 움직여 길을 막아섰다. 녀석은 분명 그 수정을 지키고 있었다.

진호는 다시 단검을 고쳐 잡았다. 살기 위해선, 그리고 율을 살리기 위해선 이 괴물을 쓰러뜨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왜 자신들이 이토록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왜 제국은 그들의 피땀을 당연하게 여기며 한 줌의 자비조차 베풀지 않는가?

그때였다. 진호의 눈에 촉수괴물 뒤편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건 어둠의 심장 수정보다 훨씬 작고, 더 깊숙이 박혀 있는 돌덩이였다. 그러나 진호는 본능적으로 그게 평범한 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희미하지만, 그 돌덩이에서는 핏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변의 어둠의 심장 수정들이 푸른빛을 띠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불길하고도 강렬한 붉은빛.

**핏빛 수정.**

진호는 과거 제국이 금지한 마물의 부산물 중 하나로, 극한의 절망과 분노를 흡수하여 그 힘을 증폭시킨다는 전설의 돌을 떠올렸다. 그건 단순한 수정이 아니었다. 강력한 마력을 품은, 금기의 물건이었다. 제국조차도 직접 채굴을 금지하고, 발견 즉시 파괴하도록 명했던 위험한 존재.

그런데 그 핏빛 수정이 이곳에, 이 촉수괴물 뒤에 있었다. 왜?
그 순간, 진호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촉수괴물은 단순히 수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 핏빛 수정이 촉수괴물을 이렇게 강력하게 만들고 있는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어쩌면, 제국이 이 핏빛 수정의 존재를 알면서도 쉬쉬하고 자신들을 위험한 채굴에 내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의심. 핏빛 수정은 마물을 강화하는 효과뿐 아니라, 다른 위험한 힘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었다. 제국이 탐낼 만한, 혹은 숨기려 할 만한.

그 순간, 진호의 손에 쥐어진 단검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그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가 단순한 살기로 변모하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어쩌면 저 굴속 깊은 곳,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제국의 심장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율, 저 놈 뒤에 있는 붉은 돌멩이를 봐!” 진호는 거의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저게 저 놈의 힘의 근원일지도 몰라.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너는 저 돌멩이를 부숴!”

율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진호의 단호한 눈빛과 명령에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형은…!”

“잔말 말고, 목숨 걸어. 우리가 살 길은 그것뿐이다!”

진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더 이상 단순히 마물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핏빛 수정 뒤에 감춰진 제국의 추악한 진실을 향한 냉철한 분노였다.
이 굴의 어둠은, 제국의 어둠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리고 이 어둠을 걷어낼 방법은, 결국 스스로 피를 흘리며 싸워 나가는 길밖에 없을 것 같았다.

촉수괴물이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진호를 향해 촉수를 휘둘렀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진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몸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단검이 마침내 핏빛 수정을 향해 던져질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 싸움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 제국의 발아래 짓밟혀 온 평민들의 작은 반격의 서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심장이 핏빛 수정처럼 격렬하게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