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녹슨 철근이 뼈대처럼 드러난 건물 잔해들이 잿빛 하늘 아래 늘어서 있었다. 한때 번화했던 거리는 이제 죽음의 침묵만이 감도는 공동(空洞)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닳고 닳은 전투화가 부서진 보도블록 위를 조심스럽게 딛고 나아간다. 내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그러나 한없이 무겁게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하준 씨, 이 근처 맞습니까?”

낮게 깔린 목소리가 황량한 건물 사이를 가로질러 왔다. 옆에서 묵묵히 경계를 서던 지원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나는 그녀의 눈빛은 내가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지옥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어도 알았다. 이 잿빛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믿는 유일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 건물 3층. 지난달 이 구역을 쓸었던 ‘그들’의 흔적이 여기서 끊겼어.”

‘그들’. 현수가 새롭게 꾸린 무리. 내가 그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할 때마다, 언제나 등장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 내가 너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죽음의 강을 건너야 했던가. 내가 너를 부르는 이름은 이제 ‘친구’가 아니라, ‘복수’ 그 자체였다.

“이 건물, 느낌이 안 좋습니다. 시체가 좀 많아요.” 지원이 낮게 읊조렸다. 그녀의 손은 이미 소총의 방아쇠에 감겨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조용히 진입을 지시했다.

건물 내부는 바깥보다 더 어두웠다. 썩어가는 살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역겨움을 자아냈다. 복도에는 깨진 유리 파편과 뜯겨나간 문짝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분명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흔적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여기를 거점으로 삼았을 수도 있었다.

“쉿.”

벽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복도 끝을 살피던 지원이 작은 소리를 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놈’이 있었다. 놈은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벽의 일부가 된 것처럼. 나는 천천히 총을 들어 견착하고 조준했다. 망설임 없는 한 발.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놈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쓰러지는 놈의 몸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우리는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은 우리가 내딛는 걸음마다 불길한 소음을 냈다. 신경이 곤두섰다. 이곳은 너무 고요했다. 살아있는 기척도, 죽어있는 기척도. 오히려 그것이 더 불안했다.

드디어 3층. 문이 반쯤 열려 있는 사무실이었다. 널브러진 서류 더미 사이에서 먼지 쌓인 낡은 사진첩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집어 든 사진첩 안에는… 잊고 싶었던 얼굴이 있었다.

그날이었다. 피와 비명이 뒤섞인 아비규환 속에서, 나는 너를 믿었다. 너는 내 유일한 벗이었고, 내 생존의 이유였다. “하준아! 정신 차려! 곧 구조대가 올 거야!” 너는 그렇게 외치며 나를 부축했다. 좀비 무리에 팔을 물려 피를 흘리고, 다리마저 부러져 움직일 수 없었던 나를 보며, 너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핏발 선 눈으로 “하준아, 미안하다. 어쩔 수 없어. 이건 나라도 살아야 할 길이야.” 그렇게 속삭였던가. 아니, 그건 변명이었다. 네 눈에 비친 건 오직 탐욕이었다. 버려진 낡은 차에 나를 밀어 넣고, 놈들이 덮치기 직전, 너는 그대로 시동을 걸고 내달렸다. 내 절규는 굉음에 묻혔고, 너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네가 버린 그 지옥에서, 나는 새로운 나로 태어났다. 오직 너를 위해, 이 복수를 위해.

사진첩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내 복수의 지도를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될 것이다.

“하준 씨, 괜찮아요?” 지원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얼굴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바닥에 굴러다니던 캔 하나를 발로 툭 찼다. 찌그러진 캔에는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현수가 아끼던 문양. 그가 새롭게 꾸린 ‘무리’의 상징.

“찾았다.”

내 목소리는 마치 얼어붙은 얼음 조각처럼 차가웠다. 지원이 캔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도 미세한 긴장이 스쳤다. 드디어, 길고 긴 추격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천장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동시다발적으로 복도 끝에서 섬뜩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놈들의 비명은 아니었다. 인간의 비명.

지원이 급하게 총을 고쳐 잡았다. “젠장, 매복인가요?”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니, 함정이다. 그 자식…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어.”

어둠 속에서 섬광탄이 터지고, 눈앞이 잠시 하얗게 변했다. 귀청을 찢는 금속성의 파열음과 함께, 내 몸이 휘청였다. 시야가 돌아왔을 때,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 위로, 낮게 깔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다, 하준아.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내 시선이 흐릿하게 위를 향했다. 그곳에는… 냉소적인 미소를 띤 현수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섬뜩한 빛을 내는 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복수의 시작이자,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