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학원(靑雲學園).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무인들을 배출해 온 명문 중의 명문. 깎아지른 듯한 비봉(飛鳳)산의 중턱, 늘 구름이 휘감고 도는 그 웅장한 봉우리를 등지고 학원은 자리했다. 푸른 기와를 얹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기왓장 하나까지 영험한 기운을 품고 있는 듯했고, 수많은 학도들이 밤낮으로 기(氣)를 수련하며 정진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곳, 청운학원의 삼학년 진호(鎭豪)였다.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뒤처지지도 않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열심히 수련했다. 이곳의 학생들은 모두 비범한 재능을 타고났거나, 피나는 노력으로 그 격차를 메워나가는 이들이었다. 어설프게 게으름을 피웠다간 낙오되기 십상이었다.
어느 늦은 밤, 나는 오래된 장서각(藏書閣) 깊숙한 곳에서 고문헌을 뒤지고 있었다. 졸업 논문의 주제를 잡기 위해서였다. 퀴퀴한 종이 냄새와 먼지가 가득한 공간에서, 나는 촛불에 의지해 흐릿한 글자들을 해독하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무슨 소린지…”
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이었다.
읏차.
오래된 나무 마루가 작게 삐걱거리는 소리.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지만, 오늘은 어딘가 달랐다. 내 발밑에서 미묘한 진동과 함께 아주 희미한 기운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기(氣)’와는 다른, 음습하고 차가운 기운. 마치 깊은 물속에서 샘솟는 냉기 같았다.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발밑을 살폈다. 낡은 마루는 수십 년간 수많은 발자국에 닳아 반들거렸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그 기운은 분명히, 발밑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촛불을 들고 바닥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리고 발견했다.
책장으로 가려진 구석진 곳. 평소에는 아무도 발길을 두지 않는 구석의 마루 틈새. 손톱만큼도 안 되는 작은 틈이었지만, 그곳에서 차가운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틈 사이로 시선을 고정하자, 아주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도 같았다. 마치 그 아래에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문득 떠오른 학원의 오래된 괴담을 떠올렸다. 청운학원 지하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금지된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 학원의 창립 비사(秘史)와 관련된 곳이며, 그곳에는 절대 깨워서는 안 될 무언가가 잠들어 있다는 섬뜩한 소문.
그저 잠 못 드는 밤에나 떠올리는 허황된 이야기라 치부했었는데.
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오묘한 감정.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은 고요했고, 오직 촛불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밀어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책장이 움직였고, 그 아래에 숨겨진 낡은 나무판이 드러났다. 다른 마루보다 색이 바래고, 고대의 문양 같은 것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무판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틈새가 있었다. 아주 얇은, 그러나 분명한 틈. 판을 열 수 있는 고리나 손잡이는 없었다. 나는 무심코 그 틈새에 내 기(氣)를 흘려보냈다.
순간, 찌릿.
손끝으로 강렬한 반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과 함께, 나무판이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판이 안쪽으로 스르륵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크르륵… 콰앙!
먼지가 확 피어오르며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드러났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공기는 내 피부에 소름을 돋게 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음습한 기운이 나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나는 촛불을 들어 어둠 속을 비췄다. 좁고 가파른 돌계단이 끝없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계단 양옆으로는 이끼가 끼어 축축했고, 벽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학원의 웅장하고 밝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세계의 입구 같았다.
“진짜… 있었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금기를 건드리는 행위와 같았다. 선배들이 늘 강조했던 학원의 ‘절대 금지 구역’이 바로 이곳일 터였다. 하지만 이미 열어버린 문 앞에서, 나는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내 안의 호기심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돌계단은 발소리를 흡수하는 듯 조용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고,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촛불의 불꽃은 미약하게 흔들렸지만, 신기하게도 꺼지지 않았다.
십여 미터쯤 내려갔을까.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두운 공간이 펼쳐지고, 그곳의 중심에는 거대한 석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원의 어떤 건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이한 형태의 석문이었다.
석문은 검은 돌로 만들어져 있었고, 표면에는 섬뜩한 형상의 조각들이 뒤엉켜 있었다. 흡사 악마의 얼굴 같기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영혼들의 형상 같기도 했다. 그 모든 조각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거대한 눈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눈의 한가운데, 아주 작은 틈새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마치 심해의 빛과 같은 빛이었다. 그 빛은 깜빡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존재의 심장박동처럼 미세하게 수축하고 이완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석문 앞에 섰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석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앞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것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끔찍한 기운이었다.
“이게 대체…”
내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곳은 학원의 지하가 아니라, 마치 세상의 끝자락, 혹은 태초의 어둠이 응축된 공간 같았다.
그때였다.
쿵…
갑작스러운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석문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석문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
쿠구궁… 쿵… 쿠구궁…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아니, 심장이라기보다는,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소리에 가까웠다. 쇠사슬이 긁히는 듯한 소리, 육중한 몸체가 벽에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내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섰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본능적으로 외쳤다. 이건 도망쳐야 한다고. 절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쿠웅!
마지막으로 들려온 소리는 앞에서 들었던 어떤 소리보다도 거대하고 강렬했다. 마치 석문 너머의 거대한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듯한 포효와도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촛불을 든 손이 심하게 떨렸고,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돌계단을 두 칸 세 칸씩 뛰어올랐다.
달려… 달려야 해!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될 것 같았다. 그 소리, 그 기운은 내가 평생 느껴본 어떤 위험보다도 거대하고 압도적이었다. 내가 건드려서는 안 될, 세상의 질서를 파괴할 수도 있는 무언가를 깨운 것만 같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장서각 마루에 도달했다.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급하게 나무판을 다시 닫으려는데, 그 순간이었다.
내 등 뒤, 어둠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늦게, 지하에서, 무슨 짓을 하였느냐?”
차가운 칼날이 등골을 훑는 듯한 섬뜩한 목소리.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학원의 원로, 서장로(徐長老)의 목소리였다.
그는…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던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