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망각의 숨결

**1장. 검은 숨결의 황무지**

메마른 바람이 흑요석 바위틈을 훑고 지나며 뼈 시린 소리를 냈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대지는 생명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죽음의 그림자로 덮여 있었다. 한(翰)은 닳아빠진 가죽 장화를 질질 끌며 그 그림자 속을 걷고 있었다. 그의 눈은 핏줄이 선명했고, 초점은 멀리 지평선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고대 도시의 잔해에 박혀 있었다.

“젠장, 오늘도 꽝인가.”

목구멍에서 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고, 근육은 이미 쥐어짜낸 걸레짝처럼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한의 손에 들린 것은 녹슬어 거뭇거뭇한 쇠창 한 자루가 전부였다. 언제든 달려들지 모를 황무지의 짐승들을 막아낼 유일한 무기이자, 때로는 삶을 연명해 줄 사냥 도구이기도 했다.

이 세상은 예전 같지 않았다. 영기(靈氣)가 풍성하여 신선들이 구름을 타고 넘나들고, 고고한 선문(仙門)들이 천지에 솟아 있었다는 옛 이야기는 이제 그저 어린아이들을 달래는 허황된 전설일 뿐이었다. 수백 년 전, 알 수 없는 대재앙이 세상을 덮쳤다. 영기는 대지에서 증발했고, 하늘의 길은 끊겼으며, 수많은 선문은 하룻밤 사이에 폐허로 변했다. 남은 것은 돌연변이 된 짐승들과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들뿐이었다.

한은 고개를 들어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제나 변함없는, 영기를 품지 않은 죽은 하늘. 과거의 영광은 먼지처럼 흩어졌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오직 본능에 충실했다. 선인들의 도가 무엇이냐고? 지금은 그저 굶어 죽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도였다.

그는 무심코 발길을 옮기다, 뾰족한 흑요석 파편에 발목을 긁혔다. 쓰라린 통증이 퍼졌지만, 한은 얕게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를 무시했다. 이런 작은 상처는 일상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의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때였다. 바싹 마른 덤불 너머에서 나직하고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한의 온몸에 퍼뜩 전기가 올랐다. 눈빛이 한순간에 날카롭게 변하며 쇠창을 움켜쥐었다. 녀석의 체취가 바람을 타고 실려 왔다. 퀴퀴하고 역겨운, 짐승 특유의 비린내.

‘황무지 늑대인가? 아니면…….’

이 흑요석 황무지에는 굶주린 짐승들이 너무나 많았다. 영기가 사라지면서 괴이하게 변형된 짐승들, 이빨과 발톱은 쇠처럼 단단하고, 가죽은 바위보다 질겼다. 놈들을 사냥하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크르르릉…….”

덤불이 흔들리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늑대는 아니었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하지만 겉모습은 맹금류와 늑대를 섞어 놓은 듯한 기괴한 형상의 짐승이었다. 놈의 등에는 깃털 대신 날카로운 뼈 비늘이 돋아 있었고, 눈은 핏빛으로 번뜩였다. ‘골각랑(骨角狼)’. 영기가 사라진 후 돌연변이 된 황무지 최악의 포식자 중 하나였다. 보통 무리를 지어 다니지만, 이 녀석은 홀로였다. 아마도 늙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개체일 터.

한의 입술이 비틀렸다. 홀로 다니는 녀석이라 해도, 골각랑은 늘 치명적인 상대였다.

“……하필이면 너냐.”

골각랑은 땅을 박차고 한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거친 발톱이 땅을 긁으며 흑요석 파편을 사방으로 튀겼다. 한은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쇠창이 허공을 갈랐고, 놈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녀석은 재빨리 자세를 고쳐잡고 다시 한에게 덤벼들었다.

한은 필사적으로 쇠창을 휘둘렀다. 골각랑의 공격은 빠르고 맹렬했다.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어깨를 스치며 가죽옷을 찢었다. 살점이 뜯겨 나가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곳에서 고통에 무너지면 죽음뿐이었다.

한은 놈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본능적인 짐승의 사나운 눈빛. 그 속에는 굶주림과 광기만이 가득했다. 그의 뇌리에는 어릴 적 들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한아,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

그는 쇠창을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놈이 달려드는 순간, 온몸의 힘을 실어 창끝을 골각랑의 목덜미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꾸엑!’ 놈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거대한 몸뚱이가 흑요석 바닥에 부딪히며 먼지를 일으켰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골각랑을 노려봤다. 놈은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다, 이내 축 늘어지며 숨을 거두었다. 한은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손이 떨리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어깨에서는 끈적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살았다.”

이 녀석의 고기는 질기고 맛없겠지만,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한은 익숙한 동작으로 골각랑의 시체에서 쓸 만한 부위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젠 그에게 익숙한 삶의 냄새였다.

고기를 썰어내던 중, 녀석의 목덜미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 돌연변이 짐승들은 가끔 몸속에 쓸모없는 기이한 결정체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이렇게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은 쇠창 끝으로 살점을 긁어내 그 단단한 것을 끄집어냈다.

손바닥에 올려진 것은 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조약돌 크기의 결정체였다. 놀랍게도 그 결정체에서는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은 숨을 멈췄다. 이런 것은 처음 봤다. 황무지의 모든 것은 생명이 없고, 빛도 없는 죽은 것들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결정체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었다. 차가운 촉감. 그리고 아주 미약하게,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처럼, 알 수 없는 에너지가 그의 손끝을 스치는 듯했다.

‘이게 뭐지?’

그때였다. 발아래 땅이 약하게 진동했다. 흑요석 바위틈 깊숙한 곳에서, 방금 그 결정체와 같은, 하지만 훨씬 더 강렬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것을 한은 보았다. 골각랑이 죽기 전 몸부림치다 만들어낸 균열이었다.

한은 망설였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하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끌어당기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이 있었다. 그는 방금 얻은 고기를 대충 챙겨 넣고, 쇠창을 짚으며 균열이 난 바위틈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균열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는 몸을 구겨 넣으며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흑요석 바위의 차가운 기운이 그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좁은 통로는 이내 작은 동굴로 이어졌다.

동굴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눈은 이미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동굴 한가운데,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거대한 흑요석 암반 중앙에 박혀 있는, 아까 그 결정체와 똑같이 생긴 푸른 수정이었다. 하지만 이 수정은 훨씬 크고, 그 안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푸른빛이 파동치고 있었다. 그 빛은 동굴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한은 수정에 가까이 다가갔다. 수정 주변의 공기가 미약하게 떨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수정 아래, 바위틈에 박혀있는 낡은 두루마리 하나를 발견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종이는 바스러지기 직전이었지만, 글자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한은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펼쳤다. 고문(古文)이었다. 읽기 어려운 오래된 글자였지만, 한은 어릴 적 마을의 촌장이 읽어주던 옛 이야기들 속에서 몇몇 글자들을 어깨너머로 익힌 적이 있었다. 그는 집중해서 글자를 해독하려 노력했다.

‘……천지간에 흩어진 영기를 모아…… 몸을 단련하고…… 하늘의 길을 엿보니…… 무상(無常)의 도에 이르리라…’

읽을수록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다. 영기. 신선. 무상(無常). 그가 어린 시절부터 전설처럼 들어왔던 단어들이었다. 이것은, 설마…… 신선들이 영기를 수련하는 방법이 적힌 고대의 수련서 조각인가?

그는 눈앞의 푸른 수정을 다시 보았다. 이 수정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에너지가, 어쩌면 이 ‘영기’라는 것일까?

한은 홀린 듯 푸른 수정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수정에 닿는 순간, 거대한 전류가 온몸을 꿰뚫는 듯한 강력한 충격이 밀려왔다. ‘욱!’ 그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눈앞이 번쩍였고, 그의 몸속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

수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는 듯했다. 한은 고통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황홀감에 휩싸였다. 이 감각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죽음만이 가득한 황무지에서, 그는 처음으로 생생한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빛이 잦아들고, 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어깨에 난 상처는 아물어 있었다. 통증도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은 떨리는 손으로 두루마리를 다시 집어 들었다. ‘영기를 정제하여……’. 그의 눈은 빛났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의 도구가 아니었다. 이것은 어쩌면, 이 죽어가는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낼 수 있는, 황폐한 세계를 넘어선 길일지도 모른다.

그는 동굴을 벗어나 다시 흑요석 황무지 위로 올라섰다. 차가운 바람이 다시 그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이제 그의 눈빛은 전과 달랐다. 희망과 동시에 미지의 길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그의 안에 소용돌이쳤다. 손안에 든 푸른 수정은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
그래, 희망은 있다. 이 미지의 길이 그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지만, 한은 결심했다. 이 죽은 세상에서,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황폐한 세상의 모든 망각된 숨결 속에서, 그는 그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의 발걸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새로운 생존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