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흉터처럼 박혀 있는 낡은 아파트 단지, 그중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13층의 1304호. 밤은 깊었고, 자정은 이미 한참을 넘긴 시간이었다. 거실의 작은 스탠드만이 어두운 공간에 희미한 온기를 더하고 있었지만, 지은은 그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추웠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서늘함이 단순히 초가을 밤공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손에 들린 핸드폰 화면에서는 고양이 영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지만, 지은의 시선은 텅 빈 복도를 맴돌았다. 복도 끝, 현관문은 분명히 잠겨 있었고, 방마다 불은 꺼져 있었다. 그런데 왜… 왜 자꾸 누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시작은 사소했다. 며칠 전부터 물건들이 제자리를 이탈하는 일이 잦았다. 분명히 책상 위에 올려둔 이어폰이 침대 밑에서 발견되거나, 거실 탁자에 놓아둔 컵이 주방 개수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식이었다. 처음엔 건망증이 심해졌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워낙 잠이 부족한 날들이 이어졌으니까. 하지만 어제는 좀 달랐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욕실 문이 굳게 닫혀 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는데 활짝 열려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불 리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환기됐다고 쳐야지 뭐.”
지은은 애써 웃으며 중얼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입술이 바싹 말라왔다. 오늘 밤, 그 알 수 없는 기척은 더욱 선명해졌다.
똑, 똑.
복도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발밑으로 쿵 떨어지는 듯한 느낌. 지은은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분명히,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아주 작고, 불규칙적이며, 마치 손톱으로 벽지를 긁는 듯한.
“누구…세요?”
말도 안 되는 질문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소리는 멎었다. 잠깐의 정적. 지은은 다시 심장이 뛰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안도했지만, 그 순간, 거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유리 장식들이 ‘딸랑, 딸랑’ 하고 약하게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이게 뭐야…”
지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였다.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샹들리에는 그녀의 시선 아래에서 느릿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거대한 철제 구조물을 건드린 것처럼.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 나 너무 무서워. 지금 우리 집에 누가 있는 것 같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마 모두 잠들었을 시간.
그때였다. 부엌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지은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떨리는 시선으로 부엌을 바라보자,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히 서 있던 컵이, 마치 누군가 내던진 것처럼.
“흐읍…”
공포가 목구멍을 옥죄었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바닥의 유리 파편들이 스탠드 불빛에 반짝였다. 마치 섬뜩한 눈빛처럼.
그 순간, 거실의 스탠드 불빛이 ‘찌직’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어둠. 완벽한 어둠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도시의 불빛만이 창문을 통해 간신히 실내의 윤곽을 드러냈다. 지은은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아… 아냐… 착각일 거야…”
자기 최면을 걸 듯 중얼거렸지만,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확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는 것처럼. 섬뜩한 한기가 폐 속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리고,
‘툭.’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건드렸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었다. ‘무언가’였다.
가늘고, 차갑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 하고 밀었다. 지은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몸을 움찔 떨었다. 더 이상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아파트, 이 공간에 자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망쳐야 해.’
몸은 돌멩이처럼 굳어 있었지만,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현관문을 향해 달려갔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간신히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비틀어 돌리고 문을 당기려는 순간,
‘철컥!’
문이 잠겼다. 분명 잠그지 않았는데. 아니, 잠갔더라도 이미 돌려 열 수 있게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손잡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로 굳게 막아놓은 것처럼.
“흐윽… 안 돼…!”
지은은 절규했다. 온 힘을 다해 손잡이를 돌리고 몸으로 문을 밀어붙였다. 쾅, 쾅, 쾅! 요란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눈에 공포로 가득 찬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소파가, 마치 보이지 않는 발에 밀린 것처럼, 마룻바닥을 긁으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파 뒤에서, 작은 그림자가 삐죽이 솟아올랐다. 흐릿해서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검은 그림자. 그것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은은 닫힌 문에 몸을 기댄 채, 끓어오르는 공포 속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림자는 점점 커져갔고, 그와 동시에 아파트 전체가 낡은 뼈대처럼 ‘우드득’ 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갇혀버린 이 공간은,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심장을 옥죄는 압력과 함께, 지은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대로, 이곳에서… 정말 죽는 걸까? 그녀의 눈앞에서, 소파 뒤의 그림자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것은 키가 컸고, 팔이 길었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지은은 보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고 섬뜩한… 두 개의 점을.
그것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아아아악…!”
지은의 비명은, 아파트의 오래된 벽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