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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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검과 핏빛 그림자**

광활한 무림맹 주경기장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수만 명의 시선이 한곳에, 오직 무대 위 두 명의 인물에게만 꽂혀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은 공기마저 얼어붙게 할 듯했다. 천하의 운명을 건다는 비장한 대회, 그 마지막 관문 중 하나인 준결승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경기장 중앙에선 한 사내가 정적 속에서도 고고하게 서 있었다. 청풍객. 그의 새하얀 도포는 미동도 없었고, 허리에 찬 검은 차가운 월광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그의 앞, 한 치 물러서지 않고 대치하고 있는 이는 묵혈광이었다. 혈교의 잔당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강림. 그의 전신에 감도는 검붉은 살기는 주변의 고요마저 집어삼킬 듯 맹렬했다.

“흐흐… 청풍객이라. 그대, 꽤나 잔망스러운 이름이군.” 묵혈광의 입가에 비틀린 조소가 걸렸다. 핏발 선 눈이 청풍객을 훑었다. “감히 이 무대에서 고고한 척이라니. 머지않아 그 깨끗한 도포가 피로 얼룩질 터.”

청풍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이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호수와 같았다. 묵혈광의 맹렬한 살기에 맞서, 그의 내공은 마치 고요한 심해처럼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의 침묵은 오히려 묵혈광의 신경을 긁는 듯했다.

“건방진 놈! 입은 굳게 닫고 있으나, 네놈의 심장은 벌써 공포에 떨고 있겠지!”

묵혈광의 고함과 함께, 대지가 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발을 구르자마자 바닥의 돌조각들이 파편처럼 튀어 올랐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기운이 회오리치며 청풍객을 향해 쇄도했다. ‘혈풍참(血風斬)’! 단순한 내공의 폭발이 아니었다. 살기와 내공이 섞여 거대한 피바람의 칼날처럼 변모한 기세였다.

청풍객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검이 칼집에서 뽑혀 나오는 순간, 주위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읏- 하는 짧고도 청아한 검의 울림이 허공을 갈랐다.

‘청풍검결(淸風劍訣) 제1식, 유운답월(流雲踏月).’

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검기는 혈풍참의 검붉은 기운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마치 맑은 바람이 피바람을 가르듯이, 청풍객의 검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묵혈광의 기세를 찢어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달 위를 걷는 구름처럼 가볍고 빨랐으나, 검 끝에 실린 내공은 산악을 가를 듯 강맹했다. 혈풍참의 거친 기세가 검기 앞에서 갈라지며 소멸했다.

“흥! 제법이군!” 묵혈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예상보다 청풍객의 검술은 훨씬 정교하고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눈빛이 더욱 사납게 번뜩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혈마대강(血魔大降)’!”

묵혈광의 두 손이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변모했다. 손톱은 기괴하게 길어졌고, 검붉은 살기가 뼈를 덮어 마치 강철 갑옷처럼 보였다. 그가 두 팔을 휘두르자, 마치 수십 개의 손톱이 동시에 할퀴는 듯한 환영이 펼쳐졌다. 각각의 손톱 끝에는 응축된 내공이 실려 있었고, 그 움직임은 마치 폭풍 속의 나뭇잎처럼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했다. 공간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귀를 찢었다.

청풍객의 푸른 도포가 강풍에 휘날렸다. 그는 자신의 검술이 일점돌파에 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묵혈광의 공격은 난무형으로, 사방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덮쳐왔다. 정교함만으로는 막아내기 힘든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그는 검을 가볍게 휘둘러 몸을 감싸는 듯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청풍검결 제2식, 만류귀종(萬流歸宗).’ 수많은 검기들이 청풍객의 주위를 감싸며 회전했다. 묵혈광의 피 묻은 손톱이 검기들을 때릴 때마다, 쇠를 긁는 듯한 섬뜩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크하하하! 방어밖에 할 줄 모르는가? 약하디약한 검법이군!” 묵혈광은 더욱 광포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의 공격은 점점 빨라졌고, 힘도 더욱 실렸다. 검기들의 방어막이 조금씩 흔들리는 듯 보였다.

청풍객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그는 묵혈광의 공격이 거칠고 빠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치명적인 빈틈을 찾고 있었다. 모든 난무 속에는 반드시 핵이 존재하기 마련. 저 겉잡을 수 없는 광란 속에서, 그는 묵혈광의 내공 흐름의 중심을 읽어내려 노력했다.

점점 더 격렬해지는 공방. 청풍객의 도포는 묵혈광의 맹공에 스쳐 작은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묵혈광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자비란 없다! 내가 이 대회에서 승리하여, 천하는 새로운 질서 아래 놓이리라! 너 같은 구시대의 잔재들은 모두 사라져야 마땅해!” 묵혈광의 외침에는 광기 어린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청풍객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묵혈광의 동작에서 아주 미세한 순간의 멈칫거림을 포착했다. 거대한 힘을 휘두르는 반동으로 인해,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 자세에서 아주 짧은 찰나의 틈이 생기는 것을.

‘지금이다.’

청풍객의 발이 움직였다. 바닥을 차고 솟아오르는 그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이 이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경공술’의 정점이었다. 묵혈광의 눈에 청풍객의 잔상이 여러 개로 겹쳐 보였다.

“이… 이럴 수가!” 묵혈광이 당황하여 잠시 공격을 멈췄다. 그 짧은 멈칫거림이 치명적이었다.

청풍객의 검이 묵혈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어느새 그의 몸에 가장 가까운 곳에 나타났다. 번개처럼 빠르게, 그러나 흐르는 물처럼 유려하게. ‘청풍검결 제3식, 역린비천(逆鱗飛天).’ 거대한 용이 하늘로 솟구치듯, 검은 묵혈광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묵혈광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그의 가슴팍에 싸늘한 검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검은 그의 심장을 비껴갔으나, 내공이 응집된 검기가 그의 폐부를 관통하며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커헉!”

묵혈광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검붉은 살기가 한순간에 흩어졌고, 그는 무릎을 꿇으며 휘청거렸다.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경내는 다시금 침묵에 잠겼다. 단 한 번의 결정적인 공격으로, 그 맹렬하던 묵혈광이 무너진 것이다.

청풍객은 검을 거두었다. 그의 검 끝에서는 한 방울의 피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요하게 묵혈광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 이럴 리가… 내가… 내가 당하다니…” 묵혈광은 자신의 상처를 움켜쥐고 이를 갈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분노로 이글거렸지만, 전과는 다른,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때, 묵혈광의 몸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더욱 짙게 물들더니, 피부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혈관이 튀어나오고, 마치 내부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크아아악!” 묵혈광의 비명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주변의 살기가 증폭되어 경기장 전체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휘몰아쳤다.

청풍객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이것은… 금지된 비술인가?’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묵혈광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죽음의 기운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파괴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묵혈광은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전신을 감싸던 검붉은 살기는 이제 순수한 검은색으로 변했고, 그의 눈은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인간의 형상을 잃고, 악귀로 변모한 듯한 모습이었다.

“죽어라… 죽어라, 청풍객! 나의… 나의 피의 힘으로… 너를… 너를 찢어발기겠다!”

묵혈광의 변모는 심상치 않았다. 그가 내뿜는 살기는 이제 단순한 내공의 수준을 넘어섰다. 경기장의 바닥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청풍객은 다시 검을 쥐었다.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른 비장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천하의 운명을 건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그는 이 자리에서 직접 마주하고 있었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막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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