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휘몰아치는 도시의 밤,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붉은 사이렌 빛이 번들거렸다. 김민준은 익숙한 표정으로 빗방울을 피하며 굳게 봉쇄된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흩어진 유리 조각과 검붉은 얼룩 위를 미끄러졌다. 번잡한 과학수사대와 형사들 틈에서도 그는 혼자만의 세계에 잠겨 있는 듯했다.

“팀장님, 피해자는 최윤호 부장입니다. 사망 시각은 자정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사인은 칼에 의한 과다출혈. 특이점은… 현관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젊은 형사의 보고에도 민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이미 범인이 남긴 보이지 않는 족적을 쫓고 있었다. 밀실 살인? 그는 코웃음을 쳤다. 이 세상에 완벽한 밀실은 없다. 오직 완벽한 트릭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심연을 파고들면, 아무리 복잡한 사건도 결국 손바닥 안의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기 마련이다. 그는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재배열하기 시작했다. 이성이 지배하는 그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논리로 설명 가능했다. 그래, 모든 것이.

바로 그때였다.

삐익ㅡ! 굉음과 함께 번쩍이는 헤드라이트가 빗속을 찢었다.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 거대한 질량. 거대한 트럭이 미끄러운 노면 위에서 제동을 잃고 빗속을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 순간, 민준은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밀쳤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뼈를 으깨는 듯한 충격과 함께 찾아온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의식은 찰나에 흩어졌다.

***

“으음…”

나른한 잠에서 깨어난 민준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낯선 이질감에 몸을 뒤척였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 익숙한 비누 냄새 대신 은은한 라벤더 향이 코끝을 스쳤다.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화려한 문양이 수놓아진 캐노피, 부드러운 크림색 커튼. 여긴… 어디지?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키자 익숙지 않은 무게감의 옷이 몸을 감쌌다. 얇고 고급스러운 실크 잠옷.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손을 뻗어보니, 자신의 투박했던 손과는 전혀 다른, 섬세하고 희고 긴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혼란이 밀려왔다.

‘내가… 죽었나?’

트럭에 치이는 순간까지는 선명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없었다. 죽음 다음이 이런 고급스러운 방에서 깨어나는 것이었던가?

침대에서 내려와 방 안을 둘러봤다. 넓고 화려한 방이었다. 앤티크 가구, 벽난로, 큼지막한 책상 위에는 깃펜과 양피지가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거울은 또 어떠한가. 전신 거울 속에는 자신이 아닌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날카롭고 깊은 눈매, 오뚝한 콧날. 고아하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분위기가 감도는 귀족적인 얼굴.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거울 속 남자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인상을 썼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폭풍처럼 낯선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칼리안 폰 헬무트.’

자신이 아닌, 이 몸의 주인에 대한 정보였다. 제국의 명문 귀족 헬무트 가문의 차남. 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섬세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저택의 서재에서 보내던 책벌레. 사교계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인물. 마법과 검술 대신 역사와 철학에 심취해 있었다는 기억들.

혼란스러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세계 전생? 소설에서나 읽던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김민준이었던 나는 사라지고, 칼리안 폰 헬무트가 되어버린 것인가. 기가 막혔지만, 묘하게도 익숙한 상황이었다. 미지의 상황을 논리로 파고드는 것.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주무십니까?”

나긋한 여인의 목소리. 동시에 낯선 칼리안의 기억 속에서 ‘엘라라’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그의 전속 시녀였다.

“들어오십시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목소리는 묘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문이 열리고 엘라라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녀는 민준, 아니 칼리안의 안색을 살피더니 이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도련님, 큰일 났어요! 아리온 경께서… 돌아가셨어요!”

칼리안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아리온 경? 이 세계의 지명과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헬무트 영지의 북쪽에 위치한 바스틴 영지의 영주. 헬무트 가문과도 친분이 깊었던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돌아가셨다고요? 무슨 소리입니까?”

칼리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몸의 균형이 아직 익숙지 않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이미 수십 년 경력의 형사 김민준이 깨어나 있었다. 살인사건. 이세계에 떨어지자마자 그에게 주어진 것은 죽음의 미스터리였다.

엘라라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손수건을 쥐어짜며 말했다.

“어젯밤 서재에서 혼자 계시다가… 아침에 시종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아무도 들어간 흔적이 없다고 합니다. 경비대장님께서도 망연자실해하고 계십니다.”

밀실 살인. 그 단어가 칼리안의 뇌리에 박혔다. 이세계에서 처음 마주하는 사건이 하필이면 그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유형의 범죄라니. 김민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 몸으로도 할 일은 생겼군.

“안내해 주십시오.”

엘라라는 놀란 얼굴로 칼리안을 올려다봤다. 병약한 도련님이 이렇게 침착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헬무트 저택은 웅장했다. 복도를 지나면서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초상화들과 갑옷들을 스쳐 지나갔다. 저택 곳곳에서 들려오는 불안하고 웅성거리는 소리들은 이 불길한 사건이 저택 전체를 뒤덮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도착한 곳은 서재 앞이었다. 육중한 오크나무 문 앞에 제국 기사단의 갑옷을 입은 건장한 기사들이 서 있었다. 그들 사이로, 얼굴이 굳은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칼리안의 기억 속에서 그의 이름은 ‘카엘 경’. 헬무트 가문의 경비대장이자 충직한 가신이었다.

카엘 경은 칼리안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칼리안 도련님.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뵙게 되어 송구합니다.”

칼리안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이미 닫힌 서재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자세한 상황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카엘 경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리온 경께서 서재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 수 없으나, 치명적인 상흔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문은 바깥에서 열 수 없도록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유리는 깨진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침입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카엘 경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좌절감이 묻어 있었다.

“서재 안에는 아리온 경 혼자 계셨고, 외부와의 접촉도 없었습니다. 시종이 아침 일찍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어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경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한숨을 다시 쉬며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유령의 소행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유령이라…’ 칼리안은 피식 웃었다. 이 세계에서는 마법도 존재하고, 신화 속의 존재들도 언급되는 곳이지만, 김민준의 이성은 여전히 ‘현실’을 믿었다. 그의 세계에서 유령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인간의 잔인한 지성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칼리안은 카엘 경의 말을 듣고도 서재 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의 눈은 이미 겉으로 보이는 사실 너머를 보고 있었다.
“문을 여십시오.”

카엘 경과 기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칼리안을 바라봤다. 병약한 도련님이 이렇게 강경하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카엘 경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 한 명이 거대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서재의 문이 활짝 열렸다.

무거운 나무와 잉크 냄새가 섞인 퀴퀴한 공기가 확 밀려왔다. 방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벽면 가득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에는 육중한 나무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 아리온 경이 엎드려 있었다. 그의 등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선명하게 보였다. 붉은 피가 책상 위로 흥건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주변의 기사들과 시녀들이 끔찍하다는 듯 얼굴을 가렸다. 칼리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시선은 엎드려 있는 시신을 지나, 방 안의 모든 디테일을 훑었다. 잠겨 있었다는 문, 창문, 가구의 배치, 바닥의 먼지 한 톨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많은 가설이 세워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들을 맞추듯, 이질적인 조각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카엘 경이 고통스러운 듯 이마를 짚었다. “칼리안 도련님, 혹시 뭔가 찾으셨습니까? 아무리 봐도… 범인이 침입할 수 있는 경로는 없었습니다.”

칼리안은 시신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령이요? 아닙니다, 카엘 경.”

모두의 시선이 칼리안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다음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칼리안은 서재의 중앙에 서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웠다.
“이 방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정적. 서재 안의 모든 이들이 경악한 얼굴로 칼리안을 바라봤다. 완벽하게 잠겨 있지 않았다니? 그들은 모두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견고하게 봉쇄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칼리안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눈은 이미 진실의 단서를 찾아내고 있었다.

“밀실… 언제나 트릭은 존재하기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