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중앙 도서관의 심연, 아니 정확히는 그 심연의 가장 밑바닥, 지하실 아래 또 다른 지하실에 준호는 살았다. 곰팡이 냄새와 잊힌 종이들의 퀴퀴한 향이 뒤섞인 그곳은 그의 성채이자 무덤이었다. 그는 고문서 담당 사서였다. 남들이 꺼리는, 빛 한 점 제대로 들지 않는 구석에서 수백 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해독 불가능해 보이는 필체들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숨결과 같았다.
어느 눅진한 여름날이었다. 준호는 폐기 예정이던 ‘이단 종교학부’ 소유의 유물 상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학과 자체가 오래 전에 통폐합되면서 남겨진 유물들은 도서관의 잊힌 창고에 처박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쌓여있던 낡은 나무 상자 하나가 준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먼지에 덮여 아무런 표시도 없었고, 다른 상자들과는 달리 미세하게 한기가 느껴졌다.
“또 뭐 이상한 저주 문서라도 나온 건가.”
그는 중얼거리며 상자의 잠금쇠를 따개로 부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자, 안에서는 기묘한 향이 피어올랐다. 말라비틀어진 정체불명의 허브들과 함께, 그 안에는 검고 매끄러운 돌 조각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흡사 흑요석 같았으나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고 모든 것을 흡수하는 듯한 기이한 질감이었다. 돌들은 모두 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표면에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괴한 문자들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준호는 숨을 멈췄다. 이런 것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른 돌들보다 훨씬 작고 완벽한 구형을 이루고 있는 단 하나의 검은 돌이었다. 마치 수억 년 동안 끊임없이 마모된 듯한, 닿을 수 없는 부드러움을 가진 그 돌은 상자 안에서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듯했다.
준호는 홀린 듯 돌들을 꺼내어 탁자에 늘어놓았다. 손끝에 닿는 차가움은 단순한 물리적인 냉기가 아니었다. 심장을 꿰뚫는 듯한, 영혼을 얼리는 듯한 차가움이었다. 그는 밤을 새워 돌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의 모든 고문서, 모든 언어학 자료를 뒤졌지만, 그 어떤 문명에서도 저런 형태의 문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며칠 밤낮을 새며 돌에 새겨진 문양을 응시하던 준호의 눈은 피로에 짓눌려 충혈되어 있었다. 하지만 피로감보다 더 강렬한 것은 그의 뇌리를 지배하는 이상한 환각이었다. 문자들이 때로는 살아 움직이는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듯했고, 때로는 무한히 확장되는 비유클리드적인 공간의 지도처럼 보였다.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거대하고 음습한 심연의 풍경이었다. 별들은 비틀리고, 하늘은 보라색과 녹색의 불가능한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 불멸의 시간이 흐르는 듯한 거대한 도시가 보였고, 그 도시를 떠도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들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들의 움직임은 물리 법칙을 조롱하듯 느릿하면서도 맹렬했고, 그들의 존재 자체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 또한 조금씩 뒤틀려 있었다. 도서관의 벽이 미세하게 들숨과 날숨을 쉬는 듯했고, 책상 위의 연필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복도의 그림자가 때로는 너무 길게 늘어져 존재하지 않는 형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피로와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횟수가 잦아질수록 준호는 확신했다. 돌,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문자들이 그의 시야와 인식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는 가장 작고 둥근 돌, 심장을 얼리는 차가움을 가진 그 돌을 ‘핵(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머지 문자가 새겨진 돌들은 ‘열쇠(鍵)’였다. 열쇠들을 특정 배열로 늘어놓고 핵을 중앙에 두자, 공간의 왜곡은 더욱 극명해졌다. 책장 사이의 통로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천장은 아득한 심연으로 변모하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보여… 보이는군.”
준호는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건조했다. 거울 속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고, 뺨은 수척해져 있었다. 그는 잠과 음식을 잊은 지 오래였다. 오직 이 불가사의한 힘의 원리를 파헤치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는 깨달았다. 이 힘은 물리적인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식의 마법’이었다. 이 돌들은 인간의 뇌가 무심코 걸어두었던 현실의 장막을 찢어버리는 도구였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던 것, 느껴지지만 인지할 수 없던 것들을 감각하게 만드는 고대의 통로였다. 그 통로 너머에는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태고의 존재들이,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그들이 숨 쉬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준호는 홀린 듯 상자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허브들을 태워 향을 피웠다. 지하실은 매캐하고 몽환적인 연기로 가득 찼다. 그는 가장 복잡하고 기이한 문자가 새겨진 돌 일곱 개를 원형으로 배치하고, 핵을 정확히 그 중앙에 놓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탁자 위, 검은 돌들이 미약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대들이여… 존재여… 모습을 드러내라.”
그는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고대의 언어와 닮았지만 그 어떤 언어와도 다른 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었다. 돌들이 그의 혀를 지배하며 뱉어낸 외침이었다.
탁자 위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뜨거운 공기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아니, 거대한 무언가가 투명한 막을 찢고 이리로 넘어오려 발버둥 치는 듯했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색채들이 공간을 물들였다. 비릿하면서도 쇠 냄새가 섞인 역겨운 향이 연기와 함께 그의 폐부를 찔렀다.
준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심연의 구렁텅이로 더 깊이 빨려 들어갈 듯 몸을 기울였다. 그의 눈은 이미 인간의 지평선을 넘어선 것을 보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를 정의할 수 없었다. 별들의 먼지 같기도 했고, 무한한 촉수들의 덩어리 같기도 했다. 동시에 수천 개의 눈이 번뜩이는 심연의 군주 같기도 했다. 그 존재는 그저 ‘있었다’. 영원히, 처음부터, 모든 것의 끝까지. 인간의 감각으로는 한순간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그의 눈앞에서 현실의 얇은 장막을 뚫고 엿보이고 있었다.
준호의 뇌리에 그들의 의지가 번개처럼 꽂혔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원하는 것이 없었고, 동시에 그를 원했다. 그것은 지배나 파괴가 아니었다. 단순한 ‘인식’이었다. 그저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그 인식은 인간의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뇌는 폭발할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현실은 의미를 잃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틀렸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김준호라고 인식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 그 거대한 존재들의 ‘창문’이었다. 그들을 투영하는 거울이었고, 그들의 존재가 잠시 머물다 가는 ‘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도서관 직원이 지하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를 받고 내려왔을 때,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억지로 문을 부수고 들어간 지하실은 끔찍한 광경을 드러냈다. 책들은 엉망진창으로 흩어져 있었고, 탁자 위의 돌들은 산산조각 나 있었다. 한가운데 놓여있던 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준호의 흔적이었다. 그의 안경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가장 깊은 벽면,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곳에, 깨진 유리조각으로 긁어낸 듯한 기이한 문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준호가 밤새워 연구하던 돌에 새겨진 문자의 파편과 같았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거대한 의미를 내포하는 듯했다.
벽에 새겨진 그 문자는 마치 준호의 마지막 숨결처럼, 도서관 지하실의 음습한 공기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자를 본 도서관 직원의 머릿속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비현실적인 풍경들이 꿈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은 텅 빈 지하실을 오랫동안 맴돌았다. 세상은 여전히 평화로웠지만, 도서관 지하실의 차가운 벽면에 새겨진 고대의 흔적은, 인간의 인지 너머에 존재하는 심연의 문이 잠시 열렸었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