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굳어 있었다. 공기는 끈적하고 무거웠다. 수천, 아니 수만 년의 세월이 겹겹이 쌓여 압축된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흙과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금속성의 비릿함이 뒤섞인 악취였다. 강진우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손전등을 휘둘렀다. 그의 손전등이 만들어내는 노란빛 원만이 이 거대한 지하 미궁 속에서 유일한 시야의 전부였다.
“진우 씨, 이쪽 벽면을 좀 봐요.”
뒤따라오던 서윤아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윤아는 고고학 박사이자 고문자 해독 전문가였다. 그녀의 손전등 불빛이 닿은 벽면은 기괴한 문양들로 가득했다.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무언가의 뼈대를 형상화한 듯한 그림 같기도 한 그것들은 도저히 현존하는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태였다.
진우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새로운 건가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패턴인데.”
“네. 훨씬 더 오래된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까지 탐사했던 ‘심연의 목구멍’ 유적과는 차원이 다른… 뭐라고 해야 할까요, 더 원시적이고… 그리고 더 불길한 느낌이 들어요.” 윤아는 손가락으로 벽면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칠흑 같은 암석 위에 새겨진 문양들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최근에야 발견된, 기존 유적의 가장 깊숙한 지하 통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온 곳이었다. 인적이 닿지 않던 공간이 열리자마자 진우는 특유의 촉으로 이곳에 엄청난 비밀이 잠들어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의 직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이 문양들… 마치 무언가를 감시하거나, 아니면 무언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주술 같아요.” 진우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윤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정확해요. 이건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문자가 아니에요. 일종의 경고, 혹은 속박의 표식으로 보입니다. 고대 문명에서는 종종 불길한 존재들을 봉인하기 위해 이런 주술적 기호를 사용했죠. 그런데… 무엇을 봉인하려 했을까요?”
그때, 진우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무한한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꼈다. 무언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끔찍한 감각.
“잠깐만요. 이 근처… 뭔가 이상해요.” 진우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저도 그래요.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지고… 이명처럼 뭔가 들리는 것 같아요.” 윤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은 단순한 이명이 아니었다.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속에서 외치는 듯한 목소리들이 뒤섞여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언어를 알 수 없는, 하지만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비명들이 멀리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했다.
“계속 나아가죠.” 진우는 결심한 듯 손전등을 앞으로 비췄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어요. 이 문양들이 뭘 감추려 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해요.”
몇 미터를 더 나아갔을까. 통로는 갑자기 넓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검은 돌덩이가 우뚝 솟아 있었다. 단순히 돌덩이라고 하기엔 형태가 너무나도 인공적이었다. 매끄럽고 어두운 표면은 빛을 거의 흡수했고, 보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에… 이건…” 윤아의 입에서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 검은 돌의 표면에는 앞서 본 벽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훨씬 더 복잡하고 기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떤 문양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내장을 형상화한 듯했고, 어떤 것은 광활한 우주를 집어삼키는 심연의 입처럼 보였다. 그 문양들은 진우와 윤아의 손전등 빛을 받아 기이하게 빛나는 듯했다.
“이게… 뭐죠? 제단인가요? 아니면 봉인석?”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검은 돌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기 직전, 윤아가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
“안 돼요, 진우 씨!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그녀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검은 돌에서 섬뜩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쿵, 쿵, 쿵… 심장이 뛰는 소리 같기도 하고, 거대한 생명체가 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주변의 어둠이 진동하는 듯했고, 아까 들리던 알 수 없는 비명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이제는 그 소리가 그들의 귓속을 파고드는 듯했다.
진우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검은 돌의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며 그의 의식을 잠식해 들어오는 환영이 보였다. 마치 수천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 그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윤아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무슨 짓을 한 거죠? 이 돌…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들의 눈앞에서, 검은 돌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가장 크고 복잡한 문양이 마치 물결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양의 한가운데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어둠은 마치 연기처럼 피어오르더니, 서서히 형체를 갖춰갔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그림자였지만, 동시에 무한한 무게감을 가진 존재였다.
“도망쳐야 해요!” 윤아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진우는 발이 땅에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오직 그 어둠의 형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수한 속삭임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것은 언어라기보다는 감정의 흐름이었다. 굶주림, 고통, 그리고 끝없는 갈망. 그 모든 것이 진우의 뇌리를 강타했다.
*‘…왔구나… 마침내… 깨어나다니….’*
그 목소리는 진우의 의식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짧은 순간, 그는 보았다. 어둠 너머, 무한한 시공간의 틈새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그 존재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인간의 이성은 한계를 넘어섰다.
진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어둠의 형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광장은 다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검은 돌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어두운 빛을 내뿜으며 굳건히 서 있었다.
윤아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진우 씨… 방금… 대체 뭐가…”
진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검은 돌을 노려봤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의 입술에서, 끔찍하고도 명확한 한 문장이 흘러나왔다.
“봉인된 게 아니었어… 저건… 문이야.”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등 뒤에서, 닫혀있던 거대한 돌문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흘러나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더욱 깊고, 더욱 차가운, 진짜 심연의 어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