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힌 자들의 춤 (7화)
강세한은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윤정희의 시신 옆에 웅크렸다. 고풍스러운 서재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차가운 비명이 맴도는 것 같았다. 낡은 벽난로 위로는 먼지 앉은 조각상들이 기괴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 강 선생. 이제 슬슬 답을 내놓으실 때 아닌가? 분명히 안에서 걸어 잠긴 문, 쇠창살로 막힌 창문. 어느 구석 하나 침입의 흔적이 없는데, 이 양반은 어떻게 죽었으며, 살인범은 또 어디로 증발했냐고?”
최형사는 목을 뻣뻣이 세우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의 눈은 피로와 의문으로 번뜩였다. 그는 서재의 문고리를 다시 한번 잡아 돌려보았다. 잠겨 있었다. 분명히 안에서 걸린 빗장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문 옆의 낡은 나무 갈고리에는 붉은색 술이 달린 묵직한 열쇠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 완벽한 밀실.
강세한은 대답 대신, 시신의 굳은 손가락 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윤정희는 죽는 순간까지 무언가를 쥐려 했던 듯, 손가락이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듯한 책상 위, 잉크 자국으로 얼룩진 낡은 종이 한 장. 그 위에는 복잡한 기호들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었다.
“기묘하군.” 강세한의 낮은 중얼거림이 서재의 정적을 갈랐다.
“뭐가 기묘합니까? 다 죽어가는 사람이 남긴 낙서라도 됩니까?” 최형사가 비꼬듯 물었다.
강세한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시선을 옮겼다. 책상 위, 고서들 사이에 놓인 낡은 황동 나침반.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바늘이 없어야 할 자리에 정교하게 조각된 여덟 개의 이빨 같은 문양이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은 윤정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종이 위 기호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강세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살인범은 피해자를 살해한 뒤, 아주 가는 실이나 낚싯줄을 문고리에 묶어 문을 닫았을 겁니다. 그리고 열쇠를 갈고리에 건 채, 문틈으로 실을 빼내어 바깥에서 잡아당겨 잠갔겠죠. 남은 실은 깔끔하게 잘라내고 도주.”
최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안 됩니다! 그 좁은 틈으로 실을 빼낸다고 해도, 그렇게 팽팽하게 묶여 잠긴 문이 흔적도 없이…”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강세한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밀실 살인의 고전적인 트릭입니다. 문제는 이 방엔 그런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실을 묶었던 자국도, 잘라낸 흔적도. 피해자의 시신에서 밀어낸 힘의 저항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강세한은 나침반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낡은 황동 표면을 스치자, 싸늘한 한기가 손끝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는 나침반을 집어 들었다. 예상보다 묵직했다.
“이 방은… 잠겨 있었던 게 아닙니다.”
최형사의 미간이 구겨졌다. “방금 전까지 당신도 잠겨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물리적으로는 잠겨 있었겠죠.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은 단순히 물리적인 문과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강세한은 나침반을 들어 올렸다. “이건 단순한 나침반이 아닙니다. ‘방향석’이라고 불리는 고대 주술 도구입니다. 윤정희 씨는… ‘그림자 춤’이라는 잊힌 의식을 연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강세한의 말에 최형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림자 춤이요? 그거… 오래전에 사라진 미신 아닙니까? 영혼을 불러내고, 어둠의 존재를 부리는… 그런?”
“미신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윤정희 씨가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였고, 이 방을 ‘의식의 공간’으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강세한은 나침반의 여덟 개 이빨 문양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방향석은 그림자의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으거나 흩뿌리는 도구입니다. 이 방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가두거나, 혹은 불러내기 위한, 일종의 ‘봉인된 성역’이었던 거죠.”
서재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낡은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비치던 햇살마저 힘을 잃고 어둠에 잠식되는 듯했다.
“그럼… 살인범이 봉인을 풀고 들어왔다는 겁니까?” 최형사는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요.” 강세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살인범은… 애초에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들어올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 순간, 강세한의 손에 들린 방향석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황동 표면의 여덟 개 이빨 문양이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 그리고 정적을 찢는 듯한, 낡은 나무가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이익—!**
그 소리는 서재의 문이 안에서 잠겨 있을 때 나는, 나무 문틀이 뒤틀리는 마찰음이었다. 분명히 잠겨 있어야 할 문이었다.
강세한의 눈이 문을 향했다. “살인범은 밀실 트릭을 깬 게 아닙니다. 그들은 윤정희 씨가 만든 이 ‘봉인’을 역이용했습니다. 이 방은 외부의 침입자를 막아주는 방어막이었지만, 동시에 내부의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가 될 수도 있었던 거죠. 마치, 방패를 들고 있는 사람의 손을 비틀어, 방패로 자신을 때리게 만든 것처럼.”
방향석의 빛이 점차 강해졌다. 차가운 기운이 강세한의 손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는 희미하게 보이는, 고통에 일그러진 윤정희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확신했다. 그녀는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영혼의 절규 속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살인범은 윤정희 씨가 ‘그림자 춤’ 의식을 통해 불러내려던, 혹은 봉인하려던 존재를… 윤정희 씨 자신에게 겨누었습니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살인범이 이 방을 어떻게 빠져나갔는가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살인범은 이 방에 없었고, 살인은 ‘의식’ 그 자체를 역이용해서 일어난 겁니다.”
최형사의 얼굴은 완전히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문을 향해 한 발짝 물러섰다.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갇힌 겁니까? 그… 그게 아직 이 안에 있다는 겁니까?” 최형사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강세한은 방향석을 든 손을 굳게 쥐었다. 방향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이제 짙은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 동시에, 닫힌 서재의 문틈에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닫혀 있고 잠겨 있는 문인데, 마치 존재하지 않는 틈을 통해 무언가가 엿보는 듯했다.
“그렇지.” 강세한의 눈이 어둠이 깔린 서재의 구석을 훑었다. “우리가 갇혔군, 최형사. 이제 이 방은 우리를 위한 밀실이 됐어. 그리고… ‘그것’은 이 방에 있었고,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어.”
낡은 서재의 모든 그림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향석의 녹색 빛은 강세한의 얼굴을 섬뜩하게 물들였다. 뒤틀린 문틈에서는 낮게 긁히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어둠 속의 무언가가 그들에게 손짓하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