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독립적인 단편 소설

**공허의 메아리**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우주, 그 칠흑 같은 심연 속을 ‘아스트라’ 호는 고독하게 항해하고 있었다. 강태민 함장은 지루함마저 느껴지는 정적 속에서 함교의 메인 스크린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이 점점이 박힌 화면은 늘 그랬듯 장엄했고, 동시에 압도적인 공허감을 안겨주었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지점, 성간의 경계를 탐사하는 임무는 영광스러웠지만, 동시에 끝없는 인내를 요구했다.

“함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단조로운 침묵을 깬 것은 항해사 박선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콘솔을 조작하고 있었다. 태민은 몸을 돌려 선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무슨 일이지?”

“지금까지 감지된 적 없는, 미지의 에너지 신호입니다. 아주 약하지만, 명백히 인위적인 패턴을 보입니다.”

“인위적이라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과학 장교 이지훈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늘 책과 데이터에 파묻혀 살던 그의 얼굴에 호기심이 만연했다.

“위치 확인해.” 태민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긴장감이 실렸다.

선아는 능숙하게 손을 놀렸다. 메인 스크린에 희미한 점 하나가 나타났다. 우주를 떠다니는 하나의 티끌처럼 보였지만, 그 점이 내뿜는 에너지는 이성적인 존재의 개입을 암시하고 있었다.

“거리는 약 0.5천만 킬로미터. 속도 변화 없습니다. 회전이나 자전도 감지되지 않아요.”

“기관장, 현우 씨. 최대 속도로 접근 허가한다.”

“젠장, 또 일이 터지는군.” 함교 뒤편에서 커피 머그잔을 내려놓던 기관장 최현우가 중얼거렸다. 그는 늘 투덜거렸지만, 임무에는 누구보다 충실한 베테랑이었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워프 코어 준비하겠습니다.”

아스트라 호는 조용히 속도를 높였다. 0.5천만 킬로미터는 심우주에서 눈 깜짝할 거리에 불과했다. 이윽고, 메인 스크린 가득 의문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대체 뭐야?” 선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태민은 스크린에 나타난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육각형도, 원형도 아니었다. 완벽하게 검고 매끄러운 다면체, 마치 빛을 모두 흡수해버린 듯한 어둠의 결정체였다. 크기는 아스트라 호의 절반에 육박하는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표면에는 어떠한 이음새나 문양도 없었고, 오직 완벽한 균형만이 존재했다.

“이론상으로 불가능한 물질입니다.” 지훈은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마치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빛났다. “저 정도 밀도와 완벽한 기하학적 구조를 자연적으로 형성하기란… 게다가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어요. 주변의 모든 파장들을.”

“경계를 늦추지 마. 현우 씨, 방어막 최대 출력으로 올려.” 태민은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미지의 존재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법이었다.

아스트라 호는 유물로부터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정지했다. 스크린 너머의 검은 다면체는 여전히 말없이 우주 공간에 떠 있었다. 존재 자체가 주변의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키는 듯한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스캔 계속 돌리고 있습니다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훈이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내부에 어떤 구조도, 생체 신호도, 심지어 원소 구성조차 분석되지 않아요. 그냥… 순수한 ‘없음’ 같아요.”

“없음이라니.” 현우가 팔짱을 끼며 비웃듯이 말했다. “그럼 저 거대한 덩어리가 그냥 ‘없음’이란 말이야? 함장님, 괜히 건드렸다가 골치 아파지는 거 아닙니까? 우주에 이상한 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이건 달라, 현우 씨.” 태민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인류가 본 어떤 것과도 달라. 인위적이지만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도 완벽한 미지의 존재야. 반드시 분석해야 해.”

“알겠습니다. 하라면 해야죠.” 현우는 다시 투덜거렸다.

지훈은 탐사선을 띄우자고 제안했다. 소형 무인 탐사선이 아스트라 호의 격납고에서 발사되어 검은 다면체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탐사선이 다면체에 닿으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탐사선이 다면체에 닿는 대신, 마치 물속으로 사라지듯 표면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스크린에 포착되었다. 아무런 충격도, 폭발도 없었다. 그저 허공으로 사라지듯, 흔적도 없이.

“맙소사….” 선아의 입에서 얕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전파도, 영상 신호도 끊겼습니다.” 지훈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정확히 다면체의 표면에 닿자마자 사라졌어요!”

태민은 망설였다. 명백한 위험 신호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호기심이 그의 심장을 두드렸다. 인류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어쩌면, 우주의 궁극적인 비밀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

“이지훈 과학 장교, 근접 탐사를 허가한다. 단, 함선과 생명 유지 장치는 그대로 유지한 채. 직접 접촉은 금지한다.” 태민은 신중하게 명령했다. “현우 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함선 비상 탈출 준비 해놔.”

“함장님!” 현우가 반발하려 했지만, 태민의 단호한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지훈은 들뜬 표정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소형 스캐너와 샘플 채취용 팔이 달린 특수 수트를 착용했다. 에어록을 통해 우주 공간으로 나선 지훈의 모습이 메인 스크린에 잡혔다. 그의 눈빛은 두려움보다 탐구심으로 가득했다.

“함장님, 유물 표면에서 미세한 떨림이 감지됩니다. 주파수 대역이… 불규칙해요.” 선아의 경고가 들렸다.

지훈은 다면체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그가 팔을 뻗어 스캐너를 작동시키려는 찰나, 검은 다면체의 표면에서 뱀처럼 꿈틀거리는 은색 무늬가 솟아올랐다. 마치 액체 금속이 흘러나오는 듯한 기이한 광경이었다.

“뭐야, 저건?” 현우가 소리쳤다.

은색 무늬는 빠르게 퍼져나가 다면체 전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이내, 다면체의 한 면이 마치 눈처럼 번쩍하고 빛났다. 그 빛은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지훈을 향해 쏘아졌다.

“지훈!” 태민이 다급하게 외쳤다.

섬광은 지훈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그는 잠시 허공에서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마치 처음 발사된 탐사선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젠장!” 태민이 주먹으로 콘솔을 내리쳤다. “연결 끊겼나? 지훈!”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함장님! 생체 신호, 통신, 모두 사라졌어요!” 선아의 목소리가 공포로 물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검은 다면체는 거대한 심장이 뛰는 것처럼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스트라 호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경고음이 굉음을 울렸고, 함교 내부의 조명들이 번뜩였다.

“함선 전체가 끌려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현우가 소리쳤다. 함선 외부 카메라에 잡힌 다면체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주변 공간을 왜곡시키며 아스트라 호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현우 씨, 엔진 역추진! 모든 출력!” 태민이 소리쳤다.

“안 됩니다! 이미 너무 늦었어요!”

엄청난 중력과 알 수 없는 에너지 파장이 아스트라 호를 짓눌렀다. 함선은 마치 찢겨 나가는 듯한 비명을 질렀고, 선체 곳곳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태민은 의자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콘솔을 붙잡았다. 시야가 일그러졌다. 빛과 어둠이 뒤섞여 혼돈의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이윽고 모든 것이 하얗게 타오르는 듯한 섬광과 함께, 함교는 침묵에 잠겼다.

* * *

“크윽….”

강태민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신음했다. 몸이 심하게 흔들리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푸른 하늘이었다. 선명하고 맑은, 단 한 점의 오염도 없는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안에 떠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달. 하나는 은빛으로 빛났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몸을 짓누르던 중력은 사라지고, 대신 부드러운 흙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흙과 풀의 향기가 코를 스쳤다. 마치 비 온 뒤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상쾌한 냄새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스트라 호는 간데없었다. 그들이 있던 곳은 울창한 숲 속이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아 있었고, 나뭇잎들은 지구에서 본 적 없는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었다. 푸른색, 붉은색, 심지어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잎사귀들까지.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선아! 현우! 지훈!” 태민은 다급하게 동료들의 이름을 불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박선아와 최현우가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둘 다 의식이 있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우주복 차림이었다. 방금 전까지 우주선 함교에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함장님… 여기가 대체….” 선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공포와 혼란이 가득했다.

“이거 꿈 아니지? 젠장, 내가 미쳐가는 건가?” 현우는 허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지훈은?” 태민은 지훈을 찾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그 검은 다면체의 섬광에 휩쓸려 사라졌던 지훈이었다. 그들은 모두 함께 넘어왔지만, 지훈만은 예외인 듯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마치 거대한 나무뿌리가 뒤엉켜 만들어진 단상 같았다. 주변에는 울창한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태민은 우주복 헬멧의 통신 장치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먹통이었다.

“맙소사….” 현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숲을 응시했다. “우리가… 대체 어디로 온 겁니까?”

“차분히 상황을 파악해야 해.” 태민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도 거세게 뛰고 있었다. 모든 상식을 거부하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아스트라 호는? 흔적도 없군.”

“말도 안 돼… 순간 이동이라고 해도… 함선이 통째로 사라질 리가 없잖아!” 선아가 절규하듯 외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바로 그때, 숲 속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짐승의 울음소리라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동시에 웅장한 소리였다. 마치 거대한 종이 울리는 듯한, 혹은 거대한 생명체가 숨 쉬는 듯한.

세 사람은 일제히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는 점차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키는 최소 3미터는 넘어 보였다. 몸은 나무껍질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고,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가장 기이한 것은 얼굴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깊은 어둠만이 존재했고, 대신 이마 중앙에서 빛나는 하나의 거대한 수정이 박혀 있었다. 수정은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숲을 비췄다.

그 거대한 존재는 말없이 그들을 응시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그들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압도적인 존재감만으로도 세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움직이지 마….” 태민은 겨우 입을 열어 속삭였다.

그 순간, 거대한 존재의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눈자리에서 푸른 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숲의 고요를 찢는 한 마디 말이, 그들의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졌다. 지구의 언어, 한국어였다.

*“여행자들이여… 환영한다.”*

그 말과 동시에, 태민의 눈앞이 다시 한번 하얗게 물들었다. 단순한 착각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또 다른 문이 열리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들이 알던 우주선과 과학, 이성이 통하던 세계는 이제 막을 내리고, 전혀 새로운 미지의 세계가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들은 심우주에서 발견한 유물에 의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세계로 전이되고 말았다.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