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었다. 도시의 소음은 복도에서부터 침범해 들어오려는 듯 끊임없이 웅웅거렸지만, 철제 방화문이 닫히는 순간 묵직한 정적이 덮쳐왔다. 늘 그랬듯이, 이 정적은 퇴근 후 도현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1304호. 그의 작은 안식처.

“하아….”

넥타이를 풀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자 천장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분명 아침에는 가지런했던 천장의 등이 아주 미세하게 틀어져 있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피곤하면 별게 다 이상해 보인다. 리모컨을 찾아 TV를 켰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눈만 감았다. 그저 조용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 졸았을까. 식탁에서 ‘덜그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돌려 주방 쪽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인가?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환풍기 소리였나? 아니, 환풍기는 꺼져 있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이번에는 거실 장식장 쪽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명백히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도현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걸음은 장식장을 향했다. 오래된 고서들이 꽂힌 낡은 장식장. 그 위에 놓인 작은 도자기 인형이 미묘하게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줬던, 왠지 모르게 기묘한 기운을 풍기던 인형이었다. 도현은 인형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어딘가 스산한 한기를 느꼈다. 늦여름,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인데도 등골이 오싹했다.

“젠장, 에어컨이라도 켰어야 했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물을 꺼내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물컵을 내려놓는 순간, 식탁 위 과일 접시에 놓여있던 사과 하나가 또르르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도현은 눈을 비볐다. 분명 접시 한가운데 놓여 있던 사과였다. 착각인가? 아니, 착각일 리가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접시에 다시 올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주위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였다. 숨소리조차 크게 들리는 듯했다.

이때, 그의 등 뒤에서 작은 칼이 ‘딸강’ 하고 소리를 내며 식탁에 떨어졌다. 방금까지 도마 옆 칼꽂이에 꽂혀있던 과도였다. 칼날이 햇빛에 반사되어 섬뜩하게 빛났다. 도현은 순간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누구… 누구야!”

그의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적막만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 적막은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도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침입자라면 벌써 모습을 드러냈을 터. 그렇다면 이건…

그때, 거실 쪽에서 ‘콰앙!’ 하는 굉음이 울렸다. 마치 거대한 철퇴라도 휘두른 듯한 소리였다. 도현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주방 식칼을 움켜쥐었다. 손잡이가 땀으로 축축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발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아까 그 장식장이 넘어져 있었다. 책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진열되어 있던 도자기들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 가운데, 아까 도현이 놓아두었던 그 기묘한 도자기 인형만 멀쩡하게 서 있었다. 아니, 서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정면을 노려보고 있는 듯, 도현을 향해 서 있었다. 그 안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

“이게… 대체….”

도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어떤 의지, 어떤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벽에 걸려있던 액자들마저 기울어지거나 떨어져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도현의 어릴 적 사진이 담긴 액자였다. 그 사진 속에서 앳된 도현은 할아버지와 함께 무언가를 수련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그의 손짓은 분명 어딘가 ‘기(氣)’를 다루는 것 같은 기묘한 형태였다.

문득, 도현의 머릿속에 할아버지의 옛말이 떠올랐다.
‘세상 만물은 기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기가 흐트러지면 세상도 혼탁해지고, 사람도 병들며, 때로는… 흉물이 되기도 하지.’
당시에는 그저 늙은이의 넋두리로 흘려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 기괴한 현상 속에서 그 말이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거실 창문이 ‘덜컹’ 하고 크게 흔들렸다. 밖은 고층 아파트 단지의 불빛으로 번쩍였지만, 그 창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힘이 창문을 박살 내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형체가 없었다. 그저 차갑고 끈적한, 거대한 기운의 덩어리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이 분노에 차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 같았다.

‘기… 기가…?’

도현의 머릿속에서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제어하면….’

그는 눈을 감았다. 공포 속에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본능을 자극했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기운, 공기 중을 휘젓는 보이지 않는 파동. 마치 예전 할아버지와 함께 산속에서 명상하며 느꼈던 그 아득한 감각과 비슷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강렬한 압박감.

그리고 그는 보았다. 아니, 느꼈다. 그 흉폭한 기운의 중심에서 뻗어 나오는, 마치 검날처럼 날카로운 기세가 자신을 향해 쇄도해오는 것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안 돼…!’

그 순간, 도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존재조차 몰랐던 힘이 격류처럼 솟아올랐다. 그의 손에서 식칼이 떨어졌다. 대신, 그의 두 손은 저절로 허공에서 마주 보게 되었고, 손바닥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흉흉한 기운이 그 빛에 반응하듯 일순간 움찔했다.

“크아악!”

도현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몸 안의 모든 것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알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기운은 무언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무언가*였다. 억울하게 죽어 맺힌 한(恨)이, 혹은 강력한 내공을 쌓았던 자의 잔재가, 분노와 함께 응축되어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기운은 도현을 향해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거실의 모든 물건들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보이지 않는 주먹에 얻어맞은 듯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마치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도현은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방금까지 자신을 위협하던 기운을 밀어내는 것을 느꼈다. 충돌!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들이 거실 한가운데에서 격렬하게 부딪혔다.

“이… 이건….”

할아버지가 말했던 ‘내공’인가? 잊고 살았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그의 뿌리에서 뻗어 나오는 힘이었다. 그 힘은 마치 오랜 시간 잠자고 있던 맹수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그때, 그의 등 뒤, 침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의 어둠 속에서,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지금까지의 모든 현상들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도현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수 없었다. 그의 모든 신경은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흉폭한 기운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 너머에 도사린, 진짜 ‘무언가’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그림자처럼 그의 아파트 전체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도현의 손에서 일렁이던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공포에 질려 있지 않았다. 그의 안에 잠재되어 있던, 오래된 무인의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살벌한 한기가 도현의 뺨을 스쳤다.

다음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오래되고, 잔혹하며, 원망으로 가득 찬 울부짖음.

“나의… 영역을… 감히… 침범하는 자…!”

그와 동시에, 침실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도현의 등 뒤를 향해 덮쳐왔다. 도현은 온몸의 기력을 끌어모아 마지막 저항을 준비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 모든 기괴한 현상과,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야 했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했다.

아파트 1304호. 고요했던 그의 안식처는, 이제 고대 무공의 잔재와 미지의 원한이 뒤섞인 생지옥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