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의 사다리
차가운 바람이 오래된 저택의 으스스한 공기를 흔들었다. 덧문이 굳게 닫힌 창문 너머로 희미한 달빛이 묵직한 구름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새어 들어올 뿐, 박 회장의 서재는 완벽한 밀실이었다. 굳이 조명을 켜지 않아도 바닥에 흩뿌려진 조각들이 보였다. 아니, 조각이라기엔 너무나 명확한 그림자들. 서재 중앙, 최고급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 엎드려 있는 박 회장의 싸늘한 시신. 그리고 그 곁에 꽂힌, 섬뜩할 만큼 반짝이는 은빛 레터 오프너.
“…사건은 이랬습니다.”
강경감의 목소리는 평소의 쩌렁쩌렁함 대신, 묘한 낭패감으로 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두툼한 서류철을 들고 이한의 옆에 바싹 다가섰다. 이한은 강경감의 말에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시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체와 서재를 오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운 엑스레이 같았다. 어떤 작은 비정상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마치 세상의 모든 퍼즐 조각을 맞춰본 사람처럼.
“발견 당시 문은 안에서 걸쇠로 완벽하게 잠겨 있었습니다. 창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에서 잠금쇠가 내려져 있었고,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3층이라 뛰어내릴 수도, 타고 올라올 수도 없는 높이입니다. 굴뚝은 너무 좁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밀실입니다.”
강경감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말하는 ‘완벽함’은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빠뜨리는 절망적인 완벽함이었다. 경찰은 몇 시간째 서재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발자국, 지문, 외부 침입 흔적, 하다못해 작은 먼지 하나라도. 모든 것이 피해자의 것이거나, 평소 서재를 관리하는 집사의 것이었다.
“피해자는 등에 한 번 찔렸고, 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은 어젯밤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서재를 마지막으로 나간 사람은 윤 비서입니다. 아홉 시 반경, 그 이후로는 아무도 서재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박 회장은 아홉 시 반에 비서를 돌려보낸 후, 직접 문을 잠갔다고 합니다.”
이한은 시체 주변을 맴돌다 무릎을 굽혀 앉았다. 레터 오프너의 은빛 손잡이에는 희미한 혈흔이 묻어 있었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레터 오프너를 만져보려다 멈칫했다. 아니, 그의 시선은 레터 오프너를 지나쳐 회장의 와이셔츠 소매 끝에 맺힌, 아주 미세한 섬유 조각에 머물렀다. 그것은 회장의 옷과는 다른, 짙은 남색이었다.
“용의자는?” 이한이 툭 던지듯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낮았다.
“현재까지는 윤 비서, 김 집사, 그리고 박 회장의 조카인 박지현 씨. 이 세 명입니다. 모두 회장님 유산 문제로 얽혀있습니다.”
잠시 후, 세 명의 용의자가 서재 문 밖에서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이한은 그들을 차례로 응시했다.
“윤 비서님.” 이한의 시선이 먼저 윤 비서에게 향했다. 그녀는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스커트 차림이었다. 단정했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젯밤 9시 반, 회장님께서 서재 문을 잠그시는 것을 직접 확인하셨다고요.”
“네. 늘 그래오셨습니다. 퇴근 전 제가 드릴 말씀이 있으면 서재에서 나갈 때 제가 보는 앞에서 직접 문을 걸어 잠그셨죠. 외부인이 침입할 것을 염려하셔서.” 윤 비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회장님께 무슨 불만이 있었습니까?”
윤 비서의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불만요? 글쎄요. 유산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면 실망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살해 동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한은 피식 웃었다. “충분히 될 수 있죠. 다음, 김 집사님.”
김 집사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50년 가까이 이 저택에서 일해 온 그는 박 회장에게 가장 충직한 사람이었다. “집사님은 어젯밤 내내 저택에 계셨습니까?”
“그럼요. 저택 경비를 늘 확인하고, 회장님께서 밤늦게 찾으실 수도 있기에 늘 대기하고 있습니다.” 김 집사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서재 주변에서 수상한 소리나 인기척을 듣진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워낙 회장님 서재는 방음이 잘 돼서요. 문이 닫히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바깥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제 방은 저택의 동쪽 끝이라 서재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지현 씨. 그는 앳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회장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좋을 리가요. 제가 상속자가 되는 것을 못마땅해하셨습니다. 회장님은 늘 제 사촌 형을 더 편애하셨죠. 그가 사업 능력이 없는데도요.” 박지현은 솔직하게 드러냈다. “어젯밤이요? 저는 친구들과 시내 바에 있었습니다. 알리바이도 확실합니다.”
세 명의 증언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이한은 그들의 말보다는, 그들이 서 있는 자세, 눈빛, 옷차림, 그리고 서재 안에 남아있는 모든 흔적에 더 집중했다. 그는 서재의 구석구석을 다시 한번 훑었다. 특히 벽면을 따라 이어진 웅장한 책장, 그 옆에 자리한 오래된 벽난로, 그리고 벽난로 왼편, 낡은 패널로 가려진 듯한 작은 문에 그의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강경감님.” 이한이 나지막이 불렀다.
“예, 탐정님.” 강경감은 바짝 긴장했다. 이한이 무엇인가를 발견했음을 직감했다.
이한은 벽난로 옆 패널 문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마치 벽의 일부인 양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한의 손가락은 패널의 미세한 틈새를 따라 스치며 멈췄다. 아주 희미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실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 근처 벽지에, 작은 긁힌 자국이 보였다. 마치 무언가 뾰족한 것이 스쳐 지나간 듯한 자국이었다.
“이게 뭔가요?” 이한이 물었다.
“아, 저건 오래된 서류용 소형 승강기 통로입니다. 옛날에 회장님께서 중요한 서류를 아래층 비서실로 보내시던 데 사용하셨죠.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요. 승강기 칸은 항상 3층 서재에 멈춰있습니다. 내부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잠금장치가 되어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외부에서는 움직일 수 없고, 승강기 칸이 문처럼 닫혀 있어서 완벽하게 봉쇄된 벽처럼 보이죠.” 강경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그럴까요?”
그는 장갑 낀 손으로 패널을 밀었다. 뻑뻑한 소리와 함께 패널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안에는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수직 통로가 드러났다. 통로 위아래로는 낡은 쇠사슬과 도르래가 보였다. 통로의 벽면을 이루는 나무에는 희미한 흙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특정 부분에 유난히 긁힌 자국과 함께 흙먼지가 닦여 나간 듯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통로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박혀 있었다.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작았지만, 이한의 예리한 시선은 놓치지 않았다.
“강경감님, 여기를 보시죠.” 이한이 손가락으로 흙먼지 닦인 자국을 가리켰다. “누군가 이 통로를 이용해 위아래로 움직였다는 증거입니다. 이 작은 승강기 칸은 내부에서 잠겨 있었죠?”
“예. 잠금쇠가 걸려 있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강경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통로를 들여다봤다.
“그럼 이 작은 자국들은요?” 이한은 통로 가장자리에 박힌 금속 조각을 가리켰다. “이건 승강기 고유의 부품이 아닙니다. 이 통로가 이처럼 완벽하게 봉쇄된 것처럼 보였던 이유, 그게 바로 트릭입니다.”
그는 숨을 고르지 않고 이어갔다. “범인은 이 서류용 승강기 통로를 이용했습니다. 이 좁은 통로를 통해 서재로 침입한 겁니다. 아마도 아래층 서비스 구역에서 승강기 칸을 아래로 내려보낸 후, 직접 이 통로를 타고 올라왔겠죠.”
강경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어떻게? 승강기 칸은 3층에 멈춰 있었고, 내부에서 잠겨 있었다고 하셨잖습니까!”
“바로 그게 핵심이죠.” 이한은 미소를 지었다. “범인은 회장님이 서재 문을 잠그고 혼자 있게 되자, 이 통로를 통해 침입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을 살해했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범인이 어떻게 이 밀실에서 벗어났느냐.”
이한은 통로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이 승강기 칸은 내부에 손잡이와 함께 외부에서도 칸을 아래로 내려보낼 수 있는 비상용 레버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마도 과거, 승강기 칸이 층 사이에 끼었을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겠죠. 이 레버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특정 도구를 사용하면 외부에서도 조작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범인이 회장님을 죽인 후, 이 비상용 레버를 조작해 승강기 칸을 아래로 내려보낸 겁니다. 그리고 자신은 통로를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겠죠. 그리고 다시 승강기 칸을 3층으로 올려보낸 후, 외부에서 조작할 수 있는 특수한 도구를 이용해 내부 잠금장치를 다시 걸어놓은 겁니다. 완벽하게 서재를 밀실로 위장하기 위해서요.”
이한의 말에 강경감과 수사팀원들은 경악했다. 그렇게 좁은 통로를 타고 오르내리고, 보이지 않는 잠금장치를 외부에서 조작하다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 통로의 흙먼지 흔적, 그리고 이 조각은 범인이 사용한 도구의 일부일 겁니다. 이 통로의 벽면 마찰 흔적을 보십시오. 이 통로를 오갈 만큼 날렵한 신체 조건을 가진 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승강기 통로의 구조를 완벽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 이 저택에 머물렀거나, 이 저택의 설계도까지 아는 사람이어야 가능합니다.”
이한은 마지막으로 시체 옆, 회장의 와이셔츠 소매 끝에 맺혀있던 작은 남색 섬유 조각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섬유 조각. 이것은 박 회장의 옷도, 윤 비서의 옷도, 김 집사의 옷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아까 본 박지현 씨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실밥과 색과 질감이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순간, 박지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그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이한은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듯,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최종 결론을 읊었다.
“천사의 사다리. 이 작고 낡은 통로가 바로, 완전무결한 밀실 살인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당신의 모든 알리바이를 무너뜨리는 증거입니다. 박지현 씨.”
서재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한의 날카로운 시선이 박지현을 꿰뚫자,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흔들림을 숨길 수 없었다. 그의 완벽한 알리바이가, 그의 야망과 함께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강경감은 서둘러 체포 명령을 내렸고, 수사팀원들은 박지현에게 달려들었다.
밀실은 더 이상 밀실이 아니었다. 이한의 눈에는, 모든 잠금장치가 사실은 열쇠였고, 모든 봉쇄된 공간은 숨겨진 통로에 불과했다. 그의 예리한 통찰력 앞에, 완벽해 보였던 범인의 트릭은 마치 한낱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박 회장의 죽음 뒤에 숨겨진 탐욕과 암투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