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심연의 메아리

아르고스 호가 정지 위성처럼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수천 광년을 가로지르는 긴 항해는 승무원들에게 무한한 권태와 끝없는 고독을 안겨주었다. 은하의 가장자리,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임무는 영광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만큼 가혹했다. 함교는 낮은 기계음과 산소 공급 장치의 규칙적인 순환음만 울릴 뿐, 고요했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오디오 로그 기록음만이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전부였다.

함장 권태호는 함교 중앙의 홀로그램 콘솔 앞에 기대어 무심하게 창밖의 별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굳게 다문 입술과 미간의 깊은 주름은 기나긴 항해의 피로를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눈은 허공을 꿰뚫는 듯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지쳐 있었다. 모든 것이 매뉴얼대로 흘러가는 우주 생활은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무의미한 반복으로 다가왔다.

그때였다. 조종석에 앉아 있던 항해사 이선우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함장님, 이상 신호 감지.”

권태호의 무감한 시선이 일순 날카롭게 변했다. 그는 미세하게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무슨 일인가, 선우?”

“아니요, 저도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우리 항로 0.003광년 전방에… 정체불명의 물질이 감지됩니다. 일반적인 천체는 아닙니다. 은하 외곽의 미개척 항로에서요?”

메인 스크린에 미약한 빛을 내는 좌표가 깜빡였다. 과학 총괄 책임자인 한유진은 이미 자신의 자리에서 홀로그램 패드를 조작하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평소의 차분함을 잃고 호기심과 흥분으로 반짝였다.

“질량은 엄청납니다. 블랙홀 수준은 아니지만, 행성 하나와 맞먹는 수준이에요. 그런데… 중력파가 거의 감지되지 않습니다. 파동도 불규칙하고요. 마치… 저 존재 자체가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 같습니다.”

기관실에서 정비 중이던 박지혁 기관사가 무선으로 연결되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항상 그렇듯 피곤함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하, 또 무슨 고장입니까, 함장님? 이번엔 엔진 부품이 튀어나오진 않았겠죠? 여기는 지금 난장판이라구요.”

“고장은 아니다, 지혁. 정체불명의 물체를 발견했다. 중력 감쇄 엔진을 준비해라. 접근한다.”

권태호의 말에 선우가 놀란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접근한다구요? 함장님, 데이터가 너무 부족합니다. 혹시 모를 위험이…”

“데이터가 부족하니 직접 확인해야지. 탐사선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 아닌가. 최고 속도로 접근한다. 단, 안전거리 1만 킬로미터 유지. 방어막은 최대로 올려.”

권태호의 명령은 단호했다. 지루했던 항해에 드디어 한 줄기 빛이, 혹은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아르고스 호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 후, 홀로그램 스크린을 가득 채운 이미지가 함교의 모든 이들을 침묵시켰다.

그것은 시커먼 심연에 박힌 또 다른 심연 같았다.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듯한 비정상적인 어둠. 거대한 사각기둥 여러 개가 아무런 규칙 없이 뒤엉켜 공중에 떠 있었다. 빛은 그것에 닿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거나, 아니면 흡수되어 사라졌다. 육안으로는 마치 우주의 균열이 형상화된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인류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인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형태였다.

“맙소사… 이건 대체…”

선우의 입에서 넋 나간 탄식이 흘러나왔다. 박지혁의 무선 목소리도 경외감과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함장님, 이건… 우리 함선보다 훨씬 커요. 아니, 차원이 다릅니다. 이딴 게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리가 없어요. 게다가… 방사능은 없습니다. 어떤 에너지 반응도 없구요. 완전한 무(無)입니다.”

한유진은 스크린에 손을 뻗어 허공을 더듬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광기에 가까운 열망으로 번뜩였다.

“이상하지 않아요? 저렇게 거대한 게 어째서 지금까지 탐지되지 않았을까요?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 우주 자체가 숨기고 있던 비밀처럼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깃들어 있었다. 권태호는 굳은 표정으로 그 거대한 검은 물체를 응시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무언가, 아주 오래되고 섬뜩한 예감이 그의 등골을 타고 올랐다.

“스캔은? 물질 구성 성분이나, 내부 구조는 파악 가능한가?”

“전혀요. 모든 스캔이… 튕겨져 나옵니다. 어떤 파장도 통과하지 못해요. 마치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비어있지만, 모든 것을 채우고 있는 느낌입니다.”

유진의 말이 이어질수록 함교의 공기는 점점 더 무겁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박지혁의 무선이 다시 울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 대신 공포가 서려 있었다.

“함장님… 내 머릿속이… 웅웅거리는 것 같습니다. 귓속에서… 긁는 소리가 들려요. 기계음은 아닌데…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지혁, 진정해. 환청일 거야. 우주 피로 증상일 수도 있으니…”

“환청이 아닙니다! 함장님도 안 들리십니까? 저 시커먼 덩어리에서… 뭔가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 머릿속으로, 끈적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침투하는 것 같아요!”

박지혁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함교의 모든 이들이 동시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권태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박히는 듯한 통증이 울렸다. 마치 수천 개의 영혼이 동시에 절규하는 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끔찍한 소리가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눈앞의 검은 물체가 잠시 일렁이는 듯한 착시 현상도 일어났다.

“함장님! 방어막이… 방어막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저 물질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파가 방출되고 있어요!”

선우가 비명을 질렀다. 메인 스크린에 거대한 물체의 어둠 속에서 푸른빛의 섬광이 번쩍이는 모습이 잡혔다. 그것은 에너지파라기보다는, 마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울리는 빛의 파동 같았다. 그 빛이 번쩍일 때마다 아르고스 호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안 돼! 이 정도 거리에서 방어막이 뚫릴 리 없어!”

권태호는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자리에서 뛰쳐나가 홀로그램 패드를 조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방어막의 수치는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다.

“유진! 저 물체의 분석 데이터, 재빨리 보고해라! 대체 저게 뭔가!”

유진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알 수 없는 광기에 잠식된 듯, 동공이 풀려 있었다.

“함장님… 이것은… 구조물이 아닙니다…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저 에너지는… 진동합니다… 우리가 접근하면…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스크린 속의 거대한 검은 물체가, 마치 잠에서 깨어난 거인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표면에, 마치 물감 자국처럼 불가능한 기하학적 무늬가 번지기 시작했다. 선, 면, 입체의 기본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기괴한 패턴.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형태였다. 뒤이어, 거대한 구조물의 한 부분이 아주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입을 벌리는 것처럼.

“안쪽이… 보입니다!”

선우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어둠이 아니었다. 무수한 별들이 뒤섞인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별이 아닌… 무언가 알 수 없는 빛의 잔상들이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마치 모든 차원을 응축해 놓은 듯한 환각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거대한 눈처럼 보이기도, 혹은 차원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듯한 찢어진 입처럼 보이기도 하는 ‘무언가’가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아르고스 호 전체를 뒤흔드는 강력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함장님! 방어막이… 방어막이 뚫렸습니다! 알 수 없는 에너지파예요!”

선우가 비명을 질렀다. 메인 스크린에 경고음이 붉게 번쩍였다. 권태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충격파의 근원지. 막 열린 구조물의 틈새에서, 심연보다 더 깊은 심연의 ‘무언가’가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십, 수백 개의 굵고 검은 촉수 같은 것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아르고스 호를 향해 뻗어 나오고 있었다.

권태호는 몸을 굳혔다. 그의 머릿속에 ‘우리는 이미 죽었다’는 절망적인 문장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전 함선, 비상 경보! 충돌 회피 기동! 당장!”

그의 명령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함교에 울려 퍼졌다. 이미 늦었다. 가장 먼저 뻗어 나온 촉수 하나가, 아르고스 호의 단단한 외벽을 종잇장처럼 꿰뚫고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금속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는 소리가 함교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촉수 끝에 매달린, 마치 우주 공간 자체를 농축해 놓은 듯한 시커먼 구체가, 마치 독사의 눈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한유진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은 이미 광기에 사로잡힌 듯, 알 수 없는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비명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의 지성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목격한 자의 절규였다.

촉수가 아르고스 호의 내부로 파고들며, 배의 심장부를 향해 육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을 모두 삼키는 듯한 어둠의 물결이 함선 내부로 밀려들어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인류는 드디어, 망각된 심연의 주인을 깨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