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 11시 47분.
수진은 찌뿌둥한 어깨를 돌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희미하게 번지는 복도등은 언제나 그랬듯 차가웠고, 그녀의 그림자는 문턱을 넘어 거실 한가운데까지 길게 늘어섰다. 탁한 공기 속에서 하루의 피로가 비로소 제 무게를 드러내는 시간. 익숙한 도시의 소음조차 이 시간만큼은 아파트 벽면에 부딪혀 고요한 절규처럼 들렸다.

“하아….”

작은 한숨과 함께 스위치를 눌렀지만, 형광등은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찰나의 깜빡임 후 이내 어둠 속에 갇혔다.

“뭐야, 또 나갔어?”

지난달에 갈았는데. 수진은 혀를 차며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좁은 거실은 빛에 따라 움찔거리는 그림자를 토해냈고, 그 그림자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벽면을 기어 다녔다. 폰 불빛에 의지해 비틀거리며 침실로 향했다.

“오늘은 진짜 그냥 잘래….”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침실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낡은 마루바닥에서 ‘삐걱’ 하는 소리가 울렸다. 거실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수진은 순간 멈칫했다. 누가 들어왔나? 하는 생각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방범창은 굳게 닫혀 있었다. 늦은 시간, 피곤에 지친 착각이리라. 수진은 애써 생각을 지우고 침실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벗어둔 옷가지들이 보였다. 어제 분명히 세탁 바구니에 넣었던 것 같은데, 왜 여기 있지? 피곤한 탓에 기억이 뒤섞인 걸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옷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손끝에 닿는 섬뜩한 한기. 훅, 하고 끼쳐오는 싸늘한 기운에 몸서리가 쳐졌다. 보일러를 약하게 틀어뒀는데도 방안은 으스스하게 추웠다. 에어컨을 켰던가? 아니, 그럴 리 없었다. 한겨울이었다.

“추워….”

옷을 바구니에 던져 넣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차가운 이불이 뺨에 닿았다. 이상했다. 이불은 분명 실내에 있었는데, 마치 바깥에 내놓았던 것처럼 싸늘했다. 신경이 곤두서는 불쾌감에 몸을 뒤척였다. 이대로 잠들 수 있을까.

**

새벽 3시 12분.
잠결에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에 수진은 눈을 번쩍 떴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혹은 흐느끼는 듯한 희미한 소리.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또렷해지는 소리는 꿈이 아니었다.

‘흐윽… 흐윽….’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울음을 참는 듯한, 혹은 숨넘어가기 직전의 노인이 내뱉는 듯한 기이한 소리. 소름이 쫙 돋았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 눈을 부릅떴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했다.

‘쉬이… 흐읍….’

소리는 침대 발치에서부터 시작되어 머리맡으로 기어 올라오는 듯했다. 수진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눈을 감았다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소리는 그녀의 귓가를 맴돌며 뼈 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누구… 누구세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침대 옆 협탁에 놓여있던 작은 유리 화병이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산산조각 난 유리 파편들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났다.
수진은 숨도 쉬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가 봐도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화병은 협탁 가장 안쪽에 놓여 있었고, 그녀의 잠버릇이 아무리 험해도 손에 닿을 거리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대신 섬뜩한 존재감이 침실을 가득 채웠다. 마치 누군가 숨죽여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 그녀의 살갗을 스치는 싸늘한 기운이 등골을 훑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몇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떨던 수진은 용기를 내어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불빛이 침실을 비췄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화병이 깨진 것은 분명했지만, 침실 안에 그녀 외에 다른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맨발에 차가운 유리 파편이 닿을까 조심하며 거실로 향했다. 혹시나 거실에 누군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거실은 침실보다 훨씬 추웠다. 손전등 빛이 닿는 곳마다 희미한 그림자들이 흔들렸다. 벽에 걸린 액자들이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아침에는 분명히 똑바로 걸려 있었는데.
그녀의 시선이 거실 창문으로 향했다. 창밖은 어두웠고, 도시는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창문에 김이 서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창문에 대고 숨을 크게 내쉬기라도 한 것처럼, 동그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수진은 소름이 끼쳐 뒷걸음질 쳤다. 실내 온도가 이렇게 낮은데, 창문에 김이 서릴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저렇게 특정 형태로.

그녀가 창문에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폰 불빛을 비추었다.
창문에 서린 김 위에, 손가락으로 쓰인 듯한 글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나…’

그녀는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걸까? 아니었다. 분명히 ‘나’라는 글자였다.
그때, 뒤에서 ‘쾅!’ 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수진은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부엌이었다. 싱크대 위에 놓여있던 접시들이 산산조각 나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깨진 접시들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액체가 흥건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핏자국처럼, 섬뜩하게.

“아악!”

수진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거실 천장의 형광등이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켜졌다.
환하게 밝아진 거실. 하지만 그 밝음은 오히려 공포를 증폭시켰다.
싱크대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액체는 바닥을 타고 거실 한가운데까지 번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 위로, 그녀가 어제 입고 벗어둔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아까 침대 위에 있던 그 옷이었다.

문득, 수진의 발밑에 뭔가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것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화병 조각들 사이로, 검고 축축한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길게 늘어진 그것은, 마치 머리카락 같았다.
아니, 머리카락이었다.
아주 긴, 검은 머리카락 다발이 화병 조각들 위를 기어가는 듯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수진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깨진 접시들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난 검붉은 액체 위에 흩뿌려진 흰색 조각들이었다.
마치… 사람의 이빨 조각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춥다….’

귓가에, 바로 귓가에 차가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수진은 온몸의 피가 식는 듯한 감각에 온몸이 마비되었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그녀는 눈을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켜진 형광등은 다시 ‘지직-‘ 거리며 깜빡였다.
그리고 그 불빛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그림자가 보였다.
수진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림자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듯했다.

“누… 누구세요….”

그녀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은 그녀를 향해 뻗어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손가락 끝에서, 검붉은 액체 한 방울이 뚝,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진은 눈을 감았다.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손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그녀를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것처럼, 강한 힘으로.

‘…나와 함께….’

다시 한번,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수진은 이를 악물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112를 누르려는 순간.
갑자기, 아파트 전체의 전기가 나간 듯, 모든 불빛이 꺼졌다.
주변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창밖의 도시 불빛조차 침묵한 듯, 완벽한 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수진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온기가.
누군가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듯했다.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찾았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존재가 희미하게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가까이서.
마치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이제는… 같이 갈 시간이야….’

수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마치 거대한 존재에게 먹히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사슬에 묶인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아파트의 고요는 이제 더 이상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어둠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이, 지금 그녀의 바로 뒤에서 뛰고 있었다.
아주 차갑고, 아주 느리게.
그녀의 모든 감각이 비명을 지르며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이곳은 더 이상 그녀의 집이 아니었다.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