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1화. 망가진 세상, 낯선 세상**

숨이 턱 막히는 빌딩 숲, 강하준은 낡은 도복 소매로 땀을 훔쳐냈다. 지하 격투기 체육관의 퀴퀴한 땀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샌드백을 향해 허공에 발길질을 몇 번 날렸지만, 어쩐지 오늘은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았다.

“하준아, 오늘은 영 힘이 없네? 어제 과음이라도 했어?”

관장님의 우스갯소리에 하준은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과음? 아니,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며칠째 잠을 설쳤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끔찍한 악몽이 밤마다 찾아왔다. 세상이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는 꿈. 그리고 그 꿈의 끝에는 항상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찾아라. 천하의 명운을 건 그 무대를.

무대? 도대체 무슨 무대? 하준은 픽 웃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땀내 나는 지하 체육관의 링이 전부였다. 천하의 명운이라니, 그저 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명운이라도 찾았으면 싶었다.

“아이고, 내가 무슨 소리를. 관장님, 오늘은 이만 쉬겠습니다.”

“그래, 피곤한 것 같으니 일찍 들어가 쉬어. 다음 주 대회 준비해야지.”

대회. 작은 규모의 지역 종합격투기 대회. 하준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체육관을 나섰다. 탁한 지하 공기를 벗어나자마자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빌딩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저녁놀은 그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오히려 붉게 물든 하늘이 꿈속의 파괴된 풍경과 겹쳐 보여 심장이 더 조여 왔다.

‘젠장, 정말 미쳐버린 건가.’

하준은 터덜터덜 골목길을 걸었다. 낡은 원룸으로 가는 익숙한 길. 항상 지나다니던 그 골목 어귀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실수로 흘린 듯, 바닥에 굴러다니는 오래된 목각 인형. 손때 묻은 나무 인형은 기이하게도 하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는 무심코 발길을 멈춰 인형을 주웠다.

차가운 나무의 질감이 손바닥에 닿았다. 먼지가 앉은 인형은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섬세하게 조각된 옷자락, 무언가를 쥐고 있는 듯한 손. 그리고 인형의 얼굴에는 기묘하게도 눈이 없었다. 텅 비어 있는 눈자리.

그 순간, 인형의 텅 빈 눈자리가 섬광처럼 빛났다.

“크아악!”

하준은 비명을 지르며 인형을 떨어뜨렸다. 동시에 온몸의 신경이 불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뇌 속을 헤집는 듯한 격렬한 두통과 함께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빌딩들이 녹아내리고, 아스팔트 바닥이 펄펄 끓는 용암처럼 붉게 변했다. 하늘은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소용돌이가 되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회전했다.

“이… 이게 뭐야!”

환각인가? 아니, 이건 현실이었다.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무릎부터 무너져 내린 하준은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대신, 축축하고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것은 매연과 땀 냄새가 아닌, 풀 내음과 흙냄새였다.

모든 감각이 뒤섞이고,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하준은 전혀 다른 풍경 속에 서 있었다.

높게 솟은 빌딩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산과 울창한 숲. 발밑에는 이름 모를 들풀들이 가득했고, 멀리서는 맑은 시냇물 소리가 졸졸 흘렀다. 공기는 더없이 청량했고, 코를 깊게 들이쉬자 싱그러운 풀 내음이 폐 속까지 가득 찼다.

“이게… 대체….”

꿈인가? 볼을 꼬집었다. 아팠다. 너무나 생생하게 아팠다. 하준은 당황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몸은 여전히 땀에 젖은 도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은 도저히 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 멀리서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하준은 저도 모르게 몸을 수풀 속에 숨겼다. 현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이곳에서 낯선 인기척은 곧 위험을 의미했다. 잠시 후, 수풀 사이로 보이는 길 위로 몇 명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평범한 등산객이나 농부가 아니었다. 허리에 긴 칼을 차고, 굳건한 표정을 한 남자들. 옷차림 또한 하준이 영화에서나 보던, 고풍스러운 무사들의 복장이었다. 그들의 대화가 희미하게 귓가에 스며들었다.

“벌써 대회가 시작된 지도 일주일이 지났건만, 아직 그 누구도 봉림파의 장문인을 꺾지 못하고 있소.”

“천하제일무림대회라… 그저 힘겨루기 싸움인 줄 알았더니, 이번엔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이라 하니 섬뜩할 지경이오.”

“운명? 허나 그 명분 또한 어찌 되었든, 강자가 천하를 쥐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가 아니겠소.”

하준의 귀에 ‘천하제일무림대회’, ‘천하의 운명’이라는 단어가 꽂혔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꿈속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 천하의 명운을 건 그 무대를 찾아라. – 설마,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된 것인가?

그는 두서없이 뒤통수를 때렸다.
“내가 미쳤나?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여기가… 여기가 무림이야?”

하준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숲을 응시했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위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그 위로 솟아오른 낡은 누각의 지붕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 자신이 살던 세상과는 완벽하게 단절된, 다른 시공간이었다.

그때,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까 지나간 무사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오는 발소리였다. 하준은 더욱 몸을 웅크렸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의 은신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여기까지군.”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하준은 숨을 멈췄다. 혹시 자신을 본 것인가?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조심스럽게 눈을 들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연한 비단옷을 입고, 등 뒤에는 길쭉한 검을 멘 여인. 얼굴은 앳되어 보였지만, 눈빛은 깊고 강인했다. 그녀의 손에는 하준이 떨어뜨렸던 그 목각 인형이 들려 있었다.

인형의 텅 빈 눈자리가, 다시 한번 섬광처럼 빛났다.

“크윽…!”

이번에는 하준이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미처 참지 못하고 뱉어냈다. 여인의 눈이 그의 은신처로 향했다.

“누구냐!”

날카로운 외침과 동시에 여인의 손에 들린 검이 번개처럼 뽑혔다. 차가운 칼날이 하준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막아섰다. 오랜 기간 익힌 격투술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챙! 하는 맑은 금속음과 함께 검이 튕겨나갔다. 여인은 눈을 크게 떴다. 하준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은 검날에 베여 붉은 피가 흘러나왔지만, 이상하게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통증은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선명한 감각이 있었다. 마치 그 검날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 칼날의 기운을 막아낸 듯한 기묘한 감각.

여인은 금세 냉정을 되찾고 검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정체가 무엇이냐.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런 곳에 숨어든 것을 보니 필시 이 대회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로구나!”

하준은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아팠는데,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자신의 몸이 움직인 방식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마치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몸속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던 움직임이 터져 나온 듯했다.

천하제일무림대회. 운명을 건 싸움.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발현된 기이한 무력.
그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저… 여기가 대체… 몇 년도입니까?”

여인은 코웃음을 쳤다.
“무슨 헛소리냐! 당대 건왕 7년이다! 네놈, 정말 수상하구나!”

건왕 7년. 하준은 입을 쩍 벌렸다. 현대의 연도가 아니었다. 자신이 정말로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사실이, 비로소 그의 뇌리에 박혔다. 이 망가진 세상에서, 그는 어쩌면 정말로 천하의 명운이 걸린 무대에 서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준의 눈빛이 변했다. 혼란과 당황함 대신, 일말의 결의가 서렸다.
“건왕 7년이라… 좋습니다. 수상하다면, 제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무림 대회, 저도 한번 참여해 보죠.”

여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네놈이? 천하제일무림대회에?”

하준은 피 묻은 손으로 턱을 한번 쓸어 올렸다.
“네. 제가 바로… 오늘부터 이 무림 대회의 새로운 참가자입니다.”

비록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하준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낯선 세상에서, 이 대회가 그 모든 미스터리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자신의 망가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타올랐다.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 대회. 그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강하준이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