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장: 균열 아래의 어둠

“강민, 또 딴생각해? 이번 달에 벌써 세 번째야!”

교수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하긴, 마법 역사 시험 시간에 창밖의 잿빛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으니 할 말은 없었다. 황폐해진 도시의 잔해가 멀리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저곳이 우리가 ‘재앙’이라 부르는 사건 이후 버려진 세계의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그 절반이 파괴된 세계에서, 그나마 안전하다는 ‘아르카나 마법학원’이라는 거대한 껍데기 안에 갇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의례적인 대답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창문 밖을 향했다. 아르카나 학원. 세상의 마지막 보루이자, 살아남은 마법사들의 피난처. 겉으로는 고귀하고 웅장한 아치형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지만, 그 거대한 벽 안에서도 숨 쉬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도망치듯 복도를 가로질렀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유진의 따가운 시선은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곧, 어깨를 붙잡는 익숙한 손길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강민! 너 정말 미쳤어? 또 성적 떨어뜨릴 일 있어? 이러다 퇴학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유진은 꽉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다그쳤다. 그녀는 언제나 현실적이고, 이 학원 시스템에 완벽하게 순응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그녀의 걱정은 잔소리로 변질되곤 했다.

“퇴학당하면 어때. 어차피 이 안이나 밖이나 별반 다를 것 없잖아.”

내 비아냥거림에 유진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밖에 나가면 뭐가 있다고? 굶주린 괴물들과 싸구려 주술사들뿐이야. 적어도 여기서는 배를 곯을 일은 없잖아!”

그녀의 말이 맞았다. 바깥은 지옥이었다. 하지만 지옥 같은 바깥을 막아준다는 이 학원의 평화가 때로는 더 지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특히, 이 학원의 지하에는 절대 접근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구역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럼 넌 안 궁금해? 이 학원 지하에 뭐가 있는지. 왜 그렇게 철저하게 막아뒀는지.” 내가 유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유진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도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타고난 신중함이 그 호기심을 억누르고 있었다.

“금단은 이유가 있어서 금단이야. 괜히 건드려봤자 좋은 꼴 못 봐. 게다가, 얼마 전에 리온 선배 알지? 그 선배가 지하 구역 쪽에 얼쩡거리다가 사라졌잖아. 행방불명 처리됐다고.”

리온 선배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재능 있고 전도유망한 선배였는데,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학원 측에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원을 떠났다’고 공지했지만, 그 말을 믿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지하 구역의 소문과 함께, 리온 선배의 실종은 학생들 사이에 묘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하지만 그 공포감은 내게 호기심이라는 다른 불씨를 지폈다. 금단의 구역? 사라진 선배? 완벽하게 통제된 듯 보이는 학원의 표면 아래에는 분명 뭔가 불길한 것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그날 밤, 나는 밤늦게까지 학원 도서관 구석에서 옛 건축 도면들을 뒤적였다. 오래된 마법 지침서 사이에 끼워져 있던, 거의 잊힌 듯한 도면 한 장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학원의 초기 설계도였다. 현재의 학원과는 미묘하게 다른 구조, 그리고 현재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듯한, 지하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붉은색 점선 구역이 보였다.

‘여긴… 대체 어디지?’

지도에 찍힌 좌표는 학원 북서쪽, 오래된 서고의 가장 깊은 곳, 보통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낡은 자재 창고 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유진은 내 계획을 듣고 경악했다.

“미쳤어? 정말 미쳤어! 거기에 뭐가 있을 줄 알고 가겠다는 거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궁금하잖아. 게다가, 이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야.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유진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했다. 결국, 유진은 한숨을 쉬며 내 손에 작은 마법 렌턴을 쥐여주었다. 그녀는 늘 이렇게 내 무모한 계획을 반대하면서도, 결국에는 나를 따라나섰다. 물론, 안전을 위한 갖가지 도구들을 챙긴 채로 말이다.

“절대 혼자 다니지 않겠다는 약속 지켜. 그리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치는 거야. 알았지?”

“응, 응! 잔소리는 그만 하고, 가자!”

낡은 자재 창고는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했다. 천장에서는 간간이 물방울이 떨어져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는 마법 렌턴의 푸른빛에 의지해 창고 깊숙이 들어갔다. 잔뜩 녹슨 선반들과 쌓여있는 폐기된 마법 장비들 사이를 헤치며,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찾아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벽, 그리고 그 위에 겹겹이 발라진 낡은 회벽만이 보일 뿐이었다.

“젠장, 헛수고였잖아. 지도가 틀렸거나…” 유진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손바닥을 벽에 대고 미세한 마나 흐름을 감지했다. 일반적인 돌벽과는 다른, 묘한 울림이 느껴졌다. 벽의 특정 지점에 손을 대자, 희미한 마법진의 잔영이 느껴졌다.

“여기야!”

나는 허리에 찬 마법 단검을 꺼내 벽을 긁었다. 낡은 회벽이 후드득 떨어져 나가자,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금속제 문이 드러났다. 흑철로 만들어진 듯한 거대한 문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기하학적 무늬가 박혀 있었다. 문양 사이에서는 희미한 마나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유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건… 우리가 배운 적 없는 마법문자야. 강민, 돌아가자. 뭔가 너무 위험해 보여.”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어.”

나는 문양의 마나 흐름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학원에서 배운 기본적인 해제 마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마치 오래된 자물쇠를 푸는 것처럼, 마나를 특정 패턴으로 주입하고 돌려야 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한참을 씨름하자, 마침내 끽- 하고 녹슨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렸다.

어둠, 그리고 냉기가 훅 끼쳐 나왔다. 곰팡이 냄새와는 또 다른, 흙먼지와 비릿한 쇠 냄새가 섞인 기이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마법 렌턴의 빛이 닿지 않는 심연.

“젠장… 이건 그냥 지하 통로가 아니잖아.”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섰다. 문 뒤에는 좁고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계단 양옆으로는 손잡이처럼 튀어나온 조각들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의 해골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한참을 내려가자 계단은 평평한 통로로 이어졌다. 통로는 좁고 천장이 낮았다. 벽면은 마치 누군가 손으로 파낸 듯 울퉁불퉁했고, 바닥에는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렌턴 불빛이 어둠을 걷어낼 때마다, 벽에는 희미한 형상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무의미한 낙서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어떤 것은 절규하는 듯 보였고, 어떤 것은 알 수 없는 기호들과 뒤섞여 있었다.

“이거… 벽화인가?” 유진이 속삭였다. “아니, 벽화라기엔 너무… 지워진 것처럼 보이는데.”

그때, 내 발끝에 무언가 밟혔다. 쨍그랑! 렌턴을 비추자, 바닥에 굴러다니는 낡은 금속 조각이 보였다. 어딘가 익숙한 모양새. 자세히 보니, 학원 학생들이 착용하는 마법 팔찌의 일부분이었다.

“이건… 리온 선배 팔찌랑 같은 거 아니야?” 유진이 놀란 듯 말했다.

섬뜩한 기시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리온 선배가 이곳에 왔었다는 명확한 증거.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곳에서 사라진.

우리는 더욱 깊이 들어갔다. 통로가 끝나자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기묘한 형태의 구조물들이었다.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와 고대의 제단이 뒤섞인 듯한 모습. 검은 돌로 된 기둥들이 사방에 솟아 있었고, 기둥 사이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관들이 놓여 있었다. 관들은 모두 철사 같은 것으로 칭칭 감겨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철사가 아니라, 검고 끈적이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웅웅거리는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심장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듣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소리.

“이, 이건 대체…” 유진이 숨을 들이켰다.

렌턴의 불빛이 가장 큰 관 하나에 닿았다. 관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크고, 표면에는 섬뜩한 붉은색 문양들이 뱀처럼 휘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관 안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듯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웅-!**

학원 전체를 뒤흔들 듯한 거대한 진동이 땅 밑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관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붉은 문양들이 갑자기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던 진동은 고통에 찬 비명처럼 변했고, 거대한 관을 칭칭 감고 있던 검은 끈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리고, 관의 표면을 감싸고 있던 검은 끈들 사이의 틈새로, 섬광처럼 번뜩이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드러났다. 붉고, 노랗고, 때로는 비정상적인 푸른빛을 띠는 그 눈동자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도망… 쳐!” 유진이 비명을 지르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몸이 굳어버린 채 그 눈동자들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고통, 분노, 그리고 무한한 증오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증오는, 지금 우리를 향해 있었다.

관 전체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묶여 있던 검은 끈들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그 틈새로 끈적한 검붉은 액체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심연에서 기어 나오는 악몽처럼.

이것이, 아르카나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금기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금기를 깨워버린 것 같았다.

**콰아앙!**

내 등 뒤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유진은 비명을 지르며 나를 끌고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를 쫓는 섬뜩한 시선과, 땅을 뒤흔드는 진동이 우리의 도주를 재촉했다.

이제 우리는 단지 이곳에 갇힌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곳에 봉인된 무언가를 깨워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리를 찾아 나설 터였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학원의 모든 평화가 거짓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 금기가, 학원을 지탱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것을.
우리가 그 존재를 봉인해 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존재에게 우리가 봉인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