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CHAPTER 12. 침묵의 증명**

고작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현수, 그는 지금 제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마치 낯선 타인의 공간에 침입한 듯한 이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젯밤, 아니 며칠 밤 내내 잠을 설치며 겪었던 일들이 꿈이었기를 바랐지만, 창밖으로 비쳐드는 햇살은 무심히 모든 것이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혹시 모를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 가볍게 올려둔 동전 몇 개와 작은 종이 조각이 그대로였다. 어제 새벽, 문득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을 때, 분명히 굳게 닫혀 있던 베란다 창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려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창문 잠금장치는 멀쩡했다. 그저 오래된 아파트의 흔한 유격이겠거니, 바람이 세게 불었겠거니 애써 합리화했다. 하지만 심장은 쉬지 않고 불길하게 울렸다.

“젠장…”

작게 욕설을 읊조리며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카페인의 쓴맛이 혀끝을 마비시켰다. 며칠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위가 쓰렸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사소한 물건이 제자리를 벗어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물건이 눈앞에서 움직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식기 건조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그가 가장 아끼는 머그컵. 어제 밤 분명히 깨끗이 씻어 건조대에 뒤집어 놓았던 그 컵이… 싱크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것도 물이 가득 담긴 채로, 마치 누군가 방금 사용하고 내려놓은 것처럼.

“말도 안 돼…”

그는 천천히 컵을 들어 올렸다. 차가운 물의 감촉이 손가락 끝을 타고 올라왔다. 분명히 어젯밤에는 건조대에 있었다. 현수 자신의 손으로 직접 놓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집안을 둘러봤다. 닫혀있는 현관문, 잠겨있는 모든 창문. 이 아파트엔 자신밖에 없었다. 그의 시선이 허공을 헤매다 이내 초점을 잃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고 웹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것은 자신의 불안정한 심장 소리와 외부의 희미한 소음뿐이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아주 짧게, 그의 귀에만 들리는 듯한 소리가 있었다.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아니면 낡은 목재가 천천히 긁히는 듯한 소리.

‘환청일 거야. 스트레스 때문에.’

애써 생각했지만, 그의 눈은 자꾸만 거실 한쪽 벽에 꽂혔다. 그곳에는 어제 읽다 만 소설책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분명히 페이지를 접어두고 덮어놓았는데,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책은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그가 읽던 페이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대충 중간쯤 되는 페이지가.

현수는 천천히 책으로 다가갔다. 펼쳐진 페이지를 응시했다. 무의미한 활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책을 다시 덮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딸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지만 또렷했다. 현수는 몸을 굳혔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주방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 씨발.”

현수는 마른세수를 했다. 정말 미쳐가는 걸까. 어쩌면 심각한 정신병에 걸린 건 아닐까. 그는 잠시 핸드폰을 들어 정신과 상담이라도 예약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문득 예전의 기사를 떠올렸다. 오래된 건물에서 종종 발생하는 ‘유령 건물’ 현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건물의 노후화나 지반 침하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이나 진동이 마치 영적인 현상처럼 느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래, 아마도 우리 아파트도…

현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래, 증거가 필요해.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해.
그는 서랍을 뒤져 작은 탁상시계를 꺼냈다. 시계는 100g도 채 되지 않는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이었다. 현수는 그 시계를 거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좌식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테이블을 향하도록 세워두었다. 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봐라. 아무것도 안 움직일 거야. 분명히.”

현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녹화를 시작한 채로 침실로 들어갔다. 잠시나마 이 기괴한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침실 문을 닫았다. 좁은 침실 안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서늘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현수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골랐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침묵 속에서 그의 귀는 온갖 미세한 소리에 집중했다. 외부 소음, 그리고… 혹시라도 들릴지 모르는, 집 안의 ‘다른’ 소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요함만이 그를 감쌌다. 오히려 그 고요함이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괜찮아. 아무것도 없을 거야.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뿐이야.’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녹화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현수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스마트폰의 녹화를 멈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초조한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초반 몇 분은 그가 침실로 들어가는 모습. 그 후로는 텅 빈 거실의 정지된 화면. 시계는 그대로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10분, 20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현수는 조금씩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 역시 내가 헛것을 본 거였어. 피곤해서 그랬던 거야.

영상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탁자 위 시계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화면 전체가 찰나의 순간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전기가 불안정해서 카메라가 순간적으로 흔들린 것처럼. 그리고 바로 다음 프레임, 시계는 더 이상 탁자 위에 없었다. 대신, 탁자 아래 바닥, 정확히 탁자의 정중앙 바닥에 놓여 있었다.

“흡!”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다시 재생, 다시 멈춤. 아무리 느리게 재생하고 멈춰 봐도, 시계가 움직이는 중간 과정은 없었다. 탁자 위에 있던 시계가, 마치 시간을 건너뛴 듯, 다음 순간에는 바닥에 놓여 있었다. 영상은 그 사이의 움직임을 전혀 담지 못했다. 마치 그 부분이 통째로 잘려나간 것처럼.

현수는 손이 떨렸다. 스마트폰을 쥔 손에 힘이 빠져 영상이 그대로 꺼져 버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탁자 아래에, 그 작은 플라스틱 시계가 정말로 놓여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등골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솟구쳤다.
‘찰칵.’

어디선가 뚜렷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디지털 카메라 셔터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가 난 곳은 다름 아닌 그의 침실이었다. 현수의 눈동자가 커졌다. 침실 문은 분명히 닫아놓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미세하게, 한 뼘 정도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검은 그림자가 언뜻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현수는 천천히, 마치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침실 문으로 향했다.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순간, 손이 닿기도 전에 문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완전히 열렸다.

침실 안은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듯했다.
그가 아침에 정성껏 개어놓았던 이불은 바닥에 팽개쳐져 있었고, 옷장 문은 활짝 열린 채 안의 옷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서랍장 위에 놓여 있던 액자 사진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굳게 닫아두었던 창문은 활짝 열린 채 차가운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커튼은 미친 듯이 휘날렸다.

그리고 침대 위, 그의 베개 한가운데 놓여 있던 것은… 그가 가장 아끼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인 손목시계였다. 유리알은 산산조각 나 있었고, 시곗줄은 끊어져 너덜거렸다. 정교했던 시계 내부의 부속들은 모두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잔뜩 화가 난 채로, 그것을 집어 던지고 짓밟은 것처럼.

현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것은 단순한 물건의 이동이 아니었다. 이건… 악의였다. 명백한 파괴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산산조각 난 어머니의 시계, 그리고 활짝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바로 그 커튼 뒤편, 아주 잠깐이지만, 뭔가 불분명한 형체가 어른거리는 듯한 착시를 느꼈다.

“으아아악!”

현수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갈라지고, 찢어졌다. 그것은 더 이상 비명이 아니었다. 필사적으로 내뱉는 숨소리에 가까웠다. 그의 시야는 흐려지고, 세상은 점멸하듯 깜빡였다.

그는 더 이상 이 아파트에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그리고 그 침묵은, 현수의 모든 이성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