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카디아 마법학교, 지하에서 꽃피운 스캔들
### 1화. 오렌지색 폭발과 수상한 지하실
“한설아! 또! 또 오렌지색이다!”
교수님의 우렁찬 호통이 마법 연성 실습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실습실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가, 이내 낄낄거리는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 나는 그 비웃음의 한가운데서 주먹만 한 오렌지색 슬라임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이번엔 정말 연금술의 황금 비율을 지켰다고 생각했는데….”
황금 비율은 개뿔. 슬라임은 내 손에서 촉촉하고 끈적한 오렌지색 점액을 흘리며 심지어 작게 ‘뿌우!’ 하고 방귀까지 뀌었다. 저 녀석, 명백히 날 비웃고 있었다.
“생각만으로는 안 돼, 한설아! 벌써 세 번짼데, 이 정도면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고의적인 방해야!” 헤이든 교수님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내 머리통을 오렌지색 슬라임으로 만들어버릴 기세였다.
나는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그것도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정규 마법 연성반에서 유일하게 특차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이었다. 그 말인즉슨, 뼈대 있는 마법사 가문의 자제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나는 유일한 ‘흙수저’이자 ‘낙하산’이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쩌다 한 번씩, 기적처럼 성공적인 마법을 연성할 때면 교수님조차 깜짝 놀랄 만큼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쩌다 한 번’을 제외하면, 내 마법은 늘 기상천외한 방향으로 폭주하곤 했다. 지금처럼 귀여운 오렌지색 슬라임으로 끝나는 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지난번에는 멀쩡한 마법 지팡이를 닭꼬치로 바꿔버려서 학장님께 불려 가기도 했다.
“한설아, 너는 정말… 하아. 오늘 방과 후, 학원 지하 서고에서 ‘초보 마법사를 위한 마나 제어 백과사전’을 필사하고 와라. 한 글자라도 빠트리면 내일 아침밥 대신 오렌지색 슬라임을 먹여줄 테니.”
교수님의 선고에 주변 학생들이 다시 낄낄거렸다. 학원 지하 서고라면, ‘죽은 자들의 도서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쾨쾨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데다, 몇 겹의 강력한 봉인 마법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일반 학생은 얼씬도 못 하는 곳. 나 같은 말썽꾸러기나 가는 곳이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오렌지색 슬라임을 소중히 안고 실습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걷자마자 옆에서 걸어오던 친구, 미나가 내 팔을 툭 쳤다.
“야, 설아. 또 슬라임이냐? 너 진짜 슬라임 마스터가 되겠다고 작정한 거야?” 미나는 웃음을 꾹 참는 얼굴로 말했다.
“시끄러워! 이번엔 진짜 잘 될 줄 알았단 말이야!”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슬라임을 미나에게 보여줬다. 슬라임은 또다시 ‘뿌우’ 하고 소리를 냈다. “봐, 얘가 날 놀려!”
미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귀여워라! 얘 혹시 이름 있냐?”
“이름은 무슨. 이 녀석 때문에 오늘도 지하 서고로 끌려가게 생겼는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휴, 벌써부터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아.”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은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하 서고는 가장 오래되고 음습한 공간으로 악명 높았다. 온갖 고문서와 금서들이 잠들어 있는 곳. 학원 역사상 단 한 번도 일반 학생들에게 개방된 적이 없었다. 내가 특차 전형생이라서 이렇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 거였다. 뭐, 다 자업자득이지만.
방과 후, 나는 꾸역꾸역 지하 서고 입구에 섰다. 낡은 철문에는 여러 개의 봉인 마법진이 빛나고 있었다. 헤이든 교수님이 건네준 특별 허가증을 마법진에 대자, 봉인이 천천히 풀리며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흐읍!”
예상했던 대로,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인 습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나는 코를 막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촛불 몇 개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서고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웠다. 책장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고, 거미줄이 여기저기 쳐져 있었다.
나는 교수님이 지정해 준 책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초보 마법사를 위한 마나 제어 백과사전’. 하필 이런 음침한 곳에 쳐박혀 있다니.
책 사이를 헤매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서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발견했다.
“…응? 저게 뭐지?”
누군가 몰래 들어와 촛불을 켜 놓은 건가? 아니면 혹시… 유령?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호기심이 더 커졌다. 지하 서고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을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빛을 따라 걸어갔다. 발소리가 텅 빈 서고에 메아리쳤다. 빛은 서고의 가장 안쪽, 낡은 책장으로 가려진 듯한 작은 문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은 겉보기에도 다른 문들과는 달랐다. 낡은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표면에는 섬세하고 복잡한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들은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금지된 구역… 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러나 나는 이미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은 단순한 촛불이 아니었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섞인 몽환적인 빛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에 귀를 대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직하고 오래된 나무의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주 미약하지만, 문 안쪽에서 미지근한 기운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숨 쉬는 듯한.
문득, 내 손이 멋대로 문고리를 잡았다. 낡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 망설일 틈도 없이, 나는 문고리를 돌렸다.
**끼이이이익—!**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문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 안쪽은 어둠 속이었고, 아까 봤던 몽환적인 푸른빛과 보랏빛이 더욱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 이건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수십, 수백 개의 심장이 동시에 뛰는 듯한 쿵, 쿵, 쿵 하는 진동이었다.
나는 숨을 헙 들이켰다. 발을 한 발짝 내딛으려던 찰나였다.
“거기 멈춰.”
낮게 깔린,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목에 닿은 듯한 섬뜩함이었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칠흑 같은 밤을 담은 듯한 검은 머리카락, 차가운 달빛을 닮은 은빛 눈동자. 완벽하게 재단된 학원 교복은 그의 늘씬한 몸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조각 같은 외모, 압도적인 분위기, 그리고… 내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싸늘한 시선.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최고 엘리트이자, 마법사 명문가 류 가문의 외아들, 류제하.
저번에 닭꼬치 사건으로 학장실에 불려 갔을 때, 학장님 옆에 서 있던 그였다. 당시에는 그저 ‘와, 잘생겼다…’ 하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는데, 이렇게 단둘이 만나게 되니 그 잘생김이 오히려 공포로 다가왔다.
류제하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의 발소리는 지독히도 조용했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한설아. 네 이름이 한설아였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차가웠다. 눈빛은 얼음처럼 투명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분노가 서려 있는 듯했다.
나는 입을 달싹거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그가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나를 집어삼켰다.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네 발로 기어들어 왔지?”
그의 시선은 내 뒤편, 활짝 열린 문 안쪽의 어둠을 향했다. 문 안에서는 여전히 기묘한 빛과 진동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그게, 교수님께서 지하 서고에서 필사를 하라고 하셔서… 길을 찾다가… 문이 빛나길래….” 나는 두서없이 변명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되는 변명이었다. 누가 지하 서고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문을 보고 “어? 여기 길이 있었네?” 하고 따라 들어간단 말인가.
류제하의 한쪽 눈썹이 싸늘하게 치켜 올라갔다. “빛이 난다고? 그래서 열었어?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몰랐나?”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넌 그곳에 발 한 발짝이라도 들이면 안 되는 존재다.” 그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경고가 실렸다. “두 번은 경고하지 않아.”
그는 내 팔목을 거칠게 잡고는, 나를 문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았다. 그의 손길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마비되는 듯한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류제하는 나를 문 반대편으로 밀쳐낸 후,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허공에 복잡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쿵, 쿵 하던 진동도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굳게 닫힌 문은 다시 여러 겹의 봉인 마법진으로 뒤덮였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력해 보이는 마법이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그러나 여전히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다시는 이 문에 접근하지 마라. 만약 어기면, 그때는 학원 규칙이 아닌 내 방식대로 처리할 테니까.” 그의 눈빛은 경고 그 이상이었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의 경고가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서고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동시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묘한 끌림이 느껴졌다.
도대체 그 문 안에는 무엇이 있기에, 류제하 같은 최고 엘리트 마법사가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그리고 그 ‘내 방식’이라는 건 또 뭘까?
나는 봉인된 문을 다시 바라봤다. 문은 이제 아무런 빛도 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몽환적인 푸른빛과 보랏빛, 그리고 쿵, 쿵 울리던 미지의 진동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반드시 알아낼 것이다. 이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지하에 숨겨진, 그 끔찍하고도 금지된 비밀을. 그리고 어쩌면… 그 비밀의 한가운데, 류제하 그 자신이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