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제목: 그림자들의 속삭임**
**씬 1**
**장면 배경:** 해 질 녘, 고층 아파트의 한 유닛. 거실은 온갖 잡동사니와 생존 도구들로 어지럽다. 창밖으로는 잿빛 노을 아래 흉물스럽게 서 있는 텅 빈 고층 빌딩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파트 내부는 전기가 불안정해 조명이 시도 때도 없이 깜빡인다.
**컷 1**
**컷 내용:** 지후(30대 초반, 깡마른 체격, 며칠간 면도를 못한 듯 수염이 덥수룩하다)가 낡은 캔을 따서 냄비에 붓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옅은 경계심이 드리워져 있다. 희미한 불빛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지후 (독백):**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 벌써 해가 지네. 하루가… 또 저물어가는군. 시체 같은 하루가.
**컷 2**
**컷 내용:** 지후의 손이 캔을 든 채로 멈춘다. 거실 한쪽, 낡은 스탠드 조명이 작게 ‘파팟!’ 소리를 내며 깜빡인다. 그 소리가 희미하지만 이 고요한 공간에서는 유난히 날카롭게 귀를 긁는다.
**SFX:** 파팟! (전등 깜빡이는 소리)
**컷 3**
**컷 내용:** 지후가 고개를 살짝 돌려 스탠드 조명을 쳐다본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불안정한 조명 탓인지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춤을 추는 듯하다.
**지후 (독백):** (젠장, 또 시작이군. 전기가 모자란 건가… 발전기를 너무 굴렸나.)
**컷 4**
**컷 내용:** 지후가 다시 냄비에 시선을 고정한다. 조명은 이내 정상으로 돌아온 듯 잠잠하다. 냄비에서 희미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는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려는 듯 보인다.
**지후 (독백):** (아무것도 아니야. 낡은 건물에, 낡은 발전기에… 그냥 흔한 일이야.)
**씬 2**
**장면 배경:** 지후의 침실. 간소한 침대와 작은 선반에 몇 안 되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방 한쪽 벽에는 세계 지도가 찢겨 붙어 있고, 그 위에 빨간색 펜으로 알 수 없는 표식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컷 5**
**컷 내용:** 지후가 침대에 앉아 낡은 무전기를 조작하고 있다. 그의 얼굴은 침울하다. 무전기 옆에는 닳아빠진 건전지 몇 개가 널려 있다.
**지후:** …수신. 여기는 블랙 나이트. 응답 바란다. 들리는가? 오버.
**SFX:** (지직… 치이이익…) (무전기 노이즈)
**컷 6**
**컷 내용:** 무전기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다. 끊이지 않는 노이즈만이 텅 빈 침실을 채운다. 지후가 한숨을 쉬며 무전기를 내려놓는다. 그때, 선반 위에 놓여 있던 낡은 사진 액자가 ‘딸칵’ 소리를 내며 살짝 기울어진다.
**SFX:** 딸칵.
**컷 7**
**컷 내용:** 지후가 고개를 들어 액자를 본다. 사진 속에는 앳된 미나의 모습이 환하게 웃고 있다. 액자는 아슬아슬하게 선반 끝에 걸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다.
**지후:** 어?
**컷 8**
**컷 내용:** 지후가 손을 뻗어 액자를 똑바로 세운다. 그는 창문 쪽을 흘끗 본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의 표정에 미묘한 의문이 스친다.
**지후 (독백):** (뭐지? 바람도 없는데. 내가 제대로 안 놓았나? 하도 정신이 없으니…)
**씬 3**
**장면 배경:** 밤이 깊어진 거실. 희미한 달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후는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캔에서 꺼낸 정체불명의 고기 덩어리들이 냄비 안에서 끓고 있다.
**컷 9**
**컷 내용:** 지후가 캔 음식을 먹고 있다. 적막한 실내에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건조하게 울린다. 그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움직인다.
**SFX:** (짤그랑, 짤그랑…)
**컷 10**
**컷 내용:** 갑자기 주방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후의 숟가락질이 멈춘다. 음식물이 그의 입가에 묻어 있다.
**SFX:** 쿵!
**지후:** …?
**컷 11**
**컷 내용:** 지후가 천천히 주방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의 눈빛에 경계심이 또렷하다. 피로했던 눈은 한순간에 날카로워진다.
**지후 (독백):** (이번엔 또 뭐야…? 생쥐인가…?)
**컷 12**
**컷 내용:** 주방 선반 위, 비어있던 냄비가 바닥에 떨어져 뒤집혀 있다. 그 옆에는 방금 지후가 식사를 하며 사용한 숟가락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냄비는 마치 누군가 발로 찬 것처럼, 식탁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SFX:** (없음. 정적.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고요함.)
**컷 13**
**컷 내용:** 지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의 손은 허리춤에 찬 낡은 총에 닿아 있다. 식탁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쾅’ 소리를 낸다.
**SFX:** 쾅!
**지후:** 누구야! 거기 누구 있어?! 나와!
**씬 4**
**장면 배경:** 어둠이 짙게 깔린 아파트 복도. 비상등마저 꺼져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묵직한 어둠이 지후를 짓누르는 듯하다.
**컷 14**
**컷 내용:** 지후가 총을 든 채 복도에 선다. 그의 눈은 주위를 바쁘게 훑고 있다. 땀방울이 그의 이마를 타고 흐른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린다.
**지후:** 나와! 숨지 말고! 내가 총을 들고 있다는 거 잊지 마라!
**SFX:** (정적. 지후의 거친 숨소리.)
**컷 15**
**컷 내용:** 복도 끝, 문이 닫혀 있던 베란다 문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열린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바닥에 얇은 선을 그린다.
**SFX:** 끼이이이익… (문 열리는 소리, 소름 끼치게 길고 느리다)
**컷 16**
**컷 내용:** 지후의 동공이 확장된다. 그는 총을 겨누며 베란다 쪽으로 뒷걸음질 친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지후:** …거기, 뭐 하는 거야! 당장 멈춰!
**컷 17**
**컷 내용:** 베란다 안쪽은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희미한 실루엣이 스쳐 지나간다. 아주 짧은 순간. 마치 누군가 숨는 것처럼.
**SFX:** (스윽…) (아주 희미한 움직이는 소리. 바람 소리 같기도, 옷자락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지후:** 누구냐고! 말해! 대체 누구야!
**컷 18**
**컷 내용:** 지후가 급히 후레쉬를 꺼내 베란다 쪽으로 비춘다. 강렬한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들어서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다. 아까 열렸던 문은 환상이었던 것처럼, 제자리에 꽉 닫혀 있다.
**지후 (독백):**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니, 분명히 열렸는데… 누군가 있었는데…!)
**씬 5**
**장면 배경:** 다시 거실. 지후는 식탁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다. 그의 얼굴은 극도로 창백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주방과 베란다를 오가고 있다.
**컷 19**
**컷 내용:** 지후가 컵을 내려놓는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물이 그의 입술에서 튀어 흐른다.
**지후 (독백):** (환청… 환각… 고립된 지 너무 오래돼서… 미쳐가는 건가. 미쳐가는 게 확실해.)
**컷 20**
**컷 내용:** 그의 시선이 벽에 걸린 낡은 달력에 닿는다. 달력의 날짜는 ‘D-365’라고 적혀있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에 붉은 펜으로 격렬하게 그어져 ‘D-366’으로 바뀌어 있다. 그는 매일 날짜를 수정했으나, 오늘은 자신이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후 (독백):**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직접 D-365를 D-366으로 바꿨는데… 언제였지? 분명히…)
**컷 21**
**컷 내용:** 갑자기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지후의 낡은 다이어리가 ‘툭’ 소리와 함께 저절로 펼쳐진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손으로 쓴 글씨가 빼곡하다. 평소 지후의 글씨와는 사뭇 다른, 비틀리고 불안한 필체다.
**SFX:** 툭! (다이어리 펼쳐지는 소리. 마치 종이 인간이 펴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
**컷 22**
**컷 내용:** 지후가 깜짝 놀라 다이어리를 바라본다. 그의 눈이 글씨를 따라 움직인다. 그의 얼굴에 공포가 서서히 물든다.
**다이어리 글씨 (클로즈업):**
“밤에 누군가 찾아왔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없었어. 이 빌어먹을 아파트에 나 혼자인데… 분명히.”
**컷 23**
**컷 내용:** 다이어리 페이지가 또 다시 ‘스르륵’ 소리를 내며 저절로 넘어간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넘긴 것처럼, 느리고 소름 끼치게.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난다.
**SFX:** 스르륵… (페이지 넘어가는 소리. 바람 없는 방에 종이 스치는 소리.)
**컷 24**
**컷 내용:** 지후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진다. 그의 눈은 새로운 페이지의 글씨에 고정되어 있다. 글씨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어지러워진다.
**다이어리 글씨 (클로즈업):**
“그는… 여기 있어. 내 안에. 나를 보러 왔어. 너도 보러 올 거야. 지후.”
**컷 25**
**컷 내용:** 글씨가 쓰여진 페이지 하단에, 누군가 손톱으로 긁은 듯한 선명한 붉은 자국이 길게 그어져 있다. 붉은 자국은 마치 피처럼 선명하고, 다이어리 종이를 찢어놓을 듯 깊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다이어리 글씨 (클로즈업):**
“…366일. 혼자였던 366일.”
**SFX:** (지후의 거친 숨소리. 숨 막히는 침묵.)
**컷 26**
**컷 내용:** 지후가 공포에 질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의 등 뒤로, 창밖의 달빛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희미한 아이의 형상이 지후를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지후의 그림자와 겹쳐지며, 마치 지후의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아이의 머리카락과 지후의 머리카락이 엉키는 듯한 시각적 연출.
**지후:** …미나?
**컷 27**
**컷 내용:** 그림자 속 아이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미소는 섬뜩하리만치 무표정하고 공허하다. 이 아파트에서, 지후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내레이션 (지후의 떨리는 목소리):** (이곳은… 지옥이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감옥. 그리고 이제… 그 지옥이, 나를 찾아온 것 같았다. 나의 모든 것과 함께…)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