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슨 심장의 고동
철컥, 철컥. 낡은 증기 압력계의 바늘이 불안하게 떨리는 소리가 좁은 은신처를 채웠다. 강준은 습관처럼 눈을 떴다. 눅진한 습기와 퀴퀴한 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낡은 강철 벙커를 개조한 이곳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동시에 끝없는 고통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콜록, 콜록…….”
작은 기침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강준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옆 칸에 놓인 낡은 침대에서 어린 유나가 웅크린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여덟 살. 황폐해진 세상에서 여덟 해를 살아낸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유나, 괜찮아?”
강준이 손을 뻗어 유나의 이마를 짚었다. 미열이 느껴졌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강준의 얼굴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천장에 매달린 비상등의 붉은 불빛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공기 정화기의 증기압이 현저히 낮아진 탓이었다.
“삼촌… 숨이… 텁텁해….”
새벽 공기는 이미 독으로 가득했다. ‘대붕괴’ 이후, 대기는 독성 증기와 산성비로 뒤덮였다.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던 것은 낡은 공기 정화기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정화기는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강준은 손전등을 들어 정화기의 옆면을 비췄다. 삐걱거리는 톱니바퀴와 녹슨 강철 파이프가 얽힌 복잡한 기계는 위태롭게 삐걱거리고 있었다. 증기 압력계는 임계점 아래로 곤두박질친 지 오래였다.
“젠장, 밸브가 또 나갔군.”
나지막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제 간신히 수리했던 안전 밸브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고장 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 강준의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다.
“유나, 삼촌 금방 갔다 올게. 걱정 말고 여기 있어.”
강준은 서둘러 낡은 가죽 코트와 닳아빠진 고글, 그리고 어깨에 메는 공구 가방을 챙겼다. 차가운 금속 냄새와 먼지 섞인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의 심장은 불안하게 뛰었다. 밖에 나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유나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기계 지옥에라도 뛰어들 터였다.
“응… 삼촌… 조심해…”
유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강준은 그녀의 작은 손을 꽉 쥐어주고는 망설임 없이 은신처의 육중한 강철 문을 열었다.
쉬이이익- 둔탁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바깥세상의 잿빛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 도시는 거대한 녹슨 고철 덩어리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한때 번성했던 ‘증기 도시’는 이제 ‘폐허의 심장’이라 불렸다. 거대한 시계탑은 멈춘 지 오래였고, 복잡하게 얽힌 증기 파이프라인은 여기저기 터져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산성비에 부식된 건물들은 뼈대만 남아 마치 유령처럼 서 있었다.
강준은 고글을 고쳐 쓰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진 그의 부츠가 녹슨 철골 위를 밟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발밑에는 부서진 기어 조각들과 삭아버린 전선들이 널려 있었다.
목표는 명확했다. 과거 도시의 공기 정화 시스템을 담당했던 거대한 증기 발전소의 잔해. 그곳이라면 아직 쓸만한 고압 안전 밸브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동시에 도시를 배회하는 고철 수집 로봇들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저런….”
강준의 눈에 거대한 녹슨 철판으로 된 표지판이 들어왔다. ‘출입 금지. 유독 가스 위험.’ 경고 문구는 산성비에 지워져 희미했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명확했다. 표지판 너머, 거대한 공장 건물 잔해가 아침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였다. 과거 수천 개의 톱니바퀴가 쉼 없이 돌아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죽은 거인의 무덤과 같았다.
강준은 폐허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앙상하게 드러난 철골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냈다. 어디선가 삐빅, 삐비비빅, 기계음이 들려왔다. 강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수그려 부서진 강철 파이프 뒤로 숨었다.
녹슨 바퀴를 달고 움직이는 작은 정비 로봇 한 대가 삐걱거리며 지나갔다. 헤드라이트처럼 박힌 단안(單眼)에서 붉은 빛이 섬뜩하게 주위를 스캔했다. 강준은 숨을 죽였다. 저런 작은 로봇이라도 발견되면, 곧이어 더 크고 위험한 ‘청소 로봇’들이 몰려올 터였다.
로봇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강준은 다시 움직였다. 내부는 더욱 끔찍했다. 거대한 증기 터빈은 산산조각 나 있었고, 수많은 파이프들은 누렇게 녹슬어 있었다. 바닥에는 셀 수 없는 잔해들이 쌓여 있었고, 그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야 했다. 발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추락할 것 같은 곳이었다.
강준은 공구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주위를 비췄다. 그의 눈이 낡은 기계 부품들 사이를 집요하게 훑었다. “밸브… 밸브….”
한참을 헤매던 강준의 눈에,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증기 보일러의 잔해가 들어왔다. 아직 부서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그것의 옆구리에, 작은 구리 합금 밸브가 붙어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딱 알맞았다.
“찾았다!”
강준은 희망에 부풀어 소리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밸브가 달려 있는 곳은 지상에서 족히 10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무너진 구조물과 낡은 사다리를 이용해 올라가야 했다.
조심스럽게, 한 발짝 한 발짝. 강준은 삐걱거리는 철골을 딛고 올라갔다. 발아래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쇳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삐끗하는 순간, 뼈도 못 추릴 것이었다.
마침내 밸브가 달린 보일러 잔해에 도착했을 때, 강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낡은 렌치를 꺼내 밸브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뻑뻑하게 녹슨 나사들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주어 렌치를 돌리는 순간, 끼이이익-!
강준이 디디고 서 있던 철골이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기울기 시작했다.
“젠장!”
강준은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보일러 잔해에 매달렸다. 그의 발아래로 철골 파편들이 굉음을 내며 추락했다. 쿵, 쿠구궁! 거대한 잔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폐허 전체를 울렸다.
강준은 매달린 채 이를 악물고 밸브를 마저 돌렸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마지막 나사가 풀리는 순간, 밸브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그의 손안으로 떨어졌다.
“하아… 하아….”
안전 밸브를 품에 안고 강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눈은 빛나고 있었다. 유나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바닥에서 둔탁한 진동이 느껴졌다. 쿠구구궁…! 아까 들었던 잔해 추락 소리보다 훨씬 크고 위압적인 소리였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땅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소리.
강준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방금 전의 소란이, 이 폐허의 진짜 주인들을 불러냈다는 것을.
서둘러 내려와 폐허의 입구를 향해 달렸다. 뒤에서는 금속이 긁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땅이 뒤집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대한 기계 괴물이 그를 쫓아오는 듯했다.
간신히 은신처의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강준은 온몸을 던져 안으로 뛰어들었다. 철컥! 육중한 문이 닫히고, 그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삼촌!”
유나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강준은 미소 지으려 노력하며 품속에서 구리 밸브를 꺼냈다.
“찾았다. 이제 괜찮아.”
강준은 서둘러 낡은 정화기 앞에 앉았다. 능숙한 손길로 부서진 밸브를 떼어내고 새것을 조립했다. 철컥, 철컥. 마지막 나사를 조이고 증기 압력 레버를 올렸다.
쉬이이이익-!
정화기가 깊은 숨을 쉬듯 증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멈췄던 톱니바퀴들이 다시 힘차게 돌아갔고, 압력계 바늘이 천천히 정상 범위로 올라갔다. 탁한 공기가 서서히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콜록… 콜록… 괜찮아졌어….”
유나가 기침을 멈추고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강준의 모든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강준은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밖을 내다봤다. 붉은 비상등 너머로, 잿빛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던 하루.
그의 손에는 낡은 구리 밸브에서 묻어난 녹물이 남아 있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그를 갉아먹고, 고통을 주었지만, 유나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그는 다시 고철과 증기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일은 또 무엇이 고장 날까. 다음 주에는 또 어떤 부품이 필요할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멈추는 그날까지, 강준의 심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녹슨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