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우주를 집어삼키는 심연의 가장자리. 인류의 탐사선 ‘아레스-7호’는 그 검푸른 미지의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빛조차 길을 잃는 곳에서, 시간은 의미를 잃고, 존재는 고독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했다.
함장 권지혁 대위는 함교의 주 스크린에 펼쳐진 성간 먼지 구름을 응시했다. 수백 년 전 지구가 버려진 이후, 인류는 무수한 별들을 찾아 헤맸지만, 언제나 답은 같았다. 공허. 이따금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문명의 잔해를 발견하곤 했지만, 생명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레스-7호의 임무 역시 그 끝없는 허무함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불과했다.
“함장님, 통신 부서입니다. 장거리 스캔에서 특이 시그널이 감지되었습니다.”
김민준 병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권 대위는 몸을 돌려 그의 자리로 향했다.
“특이 시그널? 어떤 종류지?”
“판독 불능입니다. 인공물 같기도 한데, 이전에 기록된 어떤 에너지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자연 현상일 가능성은 0.01% 미만입니다.”
그의 보고에 함교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술렁였다. 인공물. 그것도 이 심연 한가운데서.
“이 박사에게 연락해. 즉시 함교로 올라오라고 해.”
잠시 후, 헝클어진 머리에 잠이 덜 깬 듯한 이수현 박사가 함교에 들어섰다. 그녀는 과학부 수석 연구원으로, 아레스-7호의 유일한 ‘비상식적인 현상’ 전문가였다.
“함장님, 무슨 일입니까? 제 연구를 방해한다면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권 대위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점멸하는 붉은 점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판독 불능의 인공물. 이 지역에선 처음이야.”
이 박사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그녀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에너지 패턴은? 크기는? 형상은?”
김 병장이 데이터를 띄웠다. “크기는… 대략 직경 30미터 정도입니다. 형상은 아직 불분명합니다. 주변의 암흑 물질 때문에 정확한 관측이 어렵습니다.”
“진로 변경, 접근. 최대한 안전 거리를 유지하면서 스캔해.” 권 대위가 명령했다.
수 시간이 흘러, 아레스-7호는 미지의 인공물 앞에 멈춰 섰다. 주 스크린에 그 실체가 드러나자, 함교에는 침묵이 흘렀다.
완벽했다. 너무나 완벽해서 비현실적이었다. 지름 30미터의 검고 매끄러운 구(球). 마치 거대한 흑요석을 깎아 만든 듯, 어떠한 문양도, 연결 부위도, 이음새도 없었다. 표면은 빛을 완전히 흡수하여, 마치 그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젠장… 이런 건 처음 봐.”
박진우 중사, 수석 엔지니어의 낮은 탄성이었다.
이 박사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완벽한 구형…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해. 인공물, 틀림없어. 하지만 어떤 문명도 이런 기술은… 이건 차원이 달라.”
권 대위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에너지 시그널은 여전히 없나?”
“네, 함장님. 완전히 비활성화 상태입니다. 어떤 형태의 에너지 방출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김 병장이 보고했다.
“내부에 물질 반응은?”
“불확실합니다. 스캔 파동이 표면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듯합니다.”
이 박사가 스크린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함장님, 저걸 회수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어, 이 박사. 저게 뭔지 알 수 없잖나.” 권 대위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위험이 없다면 발전도 없습니다. 저건…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 헤매던!”
결국 이 박사의 끈질긴 설득과 인류의 탐험 정신이라는 미명 아래, 권 대위는 회수를 허락했다. 물론, 최고 수준의 안전 수칙과 격리 절차를 전제로.
거대한 로봇 팔이 어둠 속으로 뻗어나갔다. 조심스럽게 미지의 구를 붙잡고, 아레스-7호의 거대한 카고 베이 안으로 끌어들였다. 격리실은 두꺼운 특수 합금과 에너지 필드로 둘러싸여 있었다. 구가 함선 내부로 들어오는 순간, 미세한 진동과 함께 함선 전체에 정전기가 흐르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심장이 한 번 멎었다가 다시 뛰는 것 같았다.
격리실 안, 검은 구는 모든 빛을 삼키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박사는 연신 스캔 데이터를 확인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판독 불능’이었다. 박 중사는 구의 표면에 온갖 장비를 갖다 대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레이저도, 드릴도, 심지어 극저온 분쇄기도 소용없었다. 구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었다.
“이건… 정말 미친 겁니다.” 박 중사가 중얼거렸다. “어떤 물질도 저렇게 완벽하게 저항할 수는 없어요.”
수일이 지났다. 이 박사는 밤낮으로 유물에 매달렸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눈 밑은 거뭇했다. 하지만 피로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활기 넘쳐 보였다. 단지,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섬뜩할 정도로 광기 어리게 변해가고 있었다.
“박사님, 좀 쉬셔야 합니다. 며칠째 식사도 제대로 안 하셨잖습니까.” 김 병장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 박사는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쉴 수 없어… 저건… 저건 단순한 물질이 아니야. 무언가… 부르고 있어.”
김 병장은 오싹함을 느꼈다. 그 ‘무언가’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밤, 김 병장은 정기 순찰을 돌고 있었다. 카고 베이 근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귓속에서는 윙윙거리는 이명이 울렸다. 그리고… 환청.
“…들어라… 나의 목소리를…”
낮고 웅웅거리는 목소리. 마치 수천 개의 영혼이 한꺼번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다. 김 병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다음 날부터 함선 내부에 이상 징후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일부 승무원들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악몽에 시달리거나,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일도 늘었다. 박 중사는 함선 시스템의 미세한 오류를 발견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함장님, 동력 효율이 0.05% 감소했습니다. 아주 미미한 수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전력 누출도 없고요.”
“유물이 들어온 이후부터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건가?” 권 대위가 물었다.
“정확히 일치합니다. 마치… 함선이 무언가에 에너지를 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병장은 날마다 더 선명해지는 환청에 시달렸다. 이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다가와라… 우리를 맞이하라…”
그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다시 순찰 중, 카고 베이의 격리실을 지나던 그는 멈춰 섰다.
이 박사가 격리실 안에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그녀는 투명한 보호벽 너머로 검은 구에 손을 얹고 있었다. 분명 금지된 행위였다.
“박사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김 병장이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격리실 내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 박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더 이상 이수현 박사의 눈이 아니었다. 동공은 풀려 있었고, 핏발이 곤두서 있었다. 입꼬리는 기묘하게 위로 뒤틀려 있었고, 마치 기괴한 가면을 쓴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김 병장에게 닿는 순간, 김 병장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리고…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간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 그러나 단순한 고통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굶주린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경고음이 울렸다.
<생명 유지 장치 이상! 격리실 산소 농도 급변!>
김 병장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다, 간신히 비상 버튼을 눌렀다.
격리실 문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닫혔다.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변동하는 듯, 두꺼운 강화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본 것은, 유리를 긁는 이 박사의 손이었다. 그녀의 손톱은 섬뜩할 정도로 길게 자라나 있었고, 유리를 긁는 소리는 뇌를 찢는 듯했다.
그리고, 검은 유물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그 빛이 이 박사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눈은 이제 완전히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입에서는 거품이 터져 나왔고, 목에서는 뼈가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때, 함선 전체에 진동이 울렸다. 격리실의 강화 유리가 결국 ‘파창’ 하고 완전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함선 내부의 모든 비상등이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김 병장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뒤에서는 이 박사의 끔찍한 울부짖음과 함께, 무언가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레스-7호는 이제 더 이상 외로운 탐사선이 아니었다.
심연의 불청객을 맞아들인, 지옥의 함선이 될 참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