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밀실: 유리벽 안의 그림자

강진우는 제법 오래된 머그잔에 담긴 식어버린 차를 홀짝였다. 찻잎은 바닥에 텁텁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찻잔에는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한 갈색 물때가 보기 좋게 끼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회색빛 도시에 머물러 있었지만, 사실 그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강진우 씨. 또 그렇게 멍하니 계세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강진우는 미동도 없이 고개만 살짝 돌렸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는, 검은색 정장을 칼같이 차려입은 이수현 경위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피로와 함께 인내심의 한계가 역력했다.

“멍하니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읽는 중입니다.” 강진우는 건조하게 대꾸했다. 그의 안경 너머 눈은 피로해 보였지만, 동시에 형형하게 빛났다.

“그럼 뭘 읽으셨는데요? 지난주에 사라진 고양이 실종 사건의 범인이 길고양이 연합이라는 사실이라도 알아내셨습니까?” 이수현은 한숨을 쉬었다. “제발, 좀 진지하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강진우의 얼굴에서 평소의 나른함이 사라지고, 미세하게 굳어진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뒤편,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공간을 향해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일렁임이었다.

“방금 뭔가 지나갔는데.” 강진우는 중얼거렸다.

“뭐가요? 바람? 제 기척?”

“아니요, 아주… 작고, 씁쓸한 흔적 같은 거.” 강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마, 당신이 가져온 소식과 연관이 있을 겁니다.”

이수현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역시, 사람 이상하게 만드는 데는 도가 트셨어요. 그래서, 본론으로 들어가죠. 이번 사건은… 솔직히 저도 답이 안 나옵니다.”

그녀는 품에서 서류철을 꺼내 책상 위에 던지듯 놓았다. 강진우는 느릿하게 서류철을 열었다. 맨 위에는 ‘서영훈 사망 사건’이라는 표제와 함께 한 남자의 얼굴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잘생겼지만 어딘가 그늘진 인상이었다.

“서영훈. 신흥 미술 시장의 거물이라고 불리던 사람입니다. 정확히는 미술품 재판매로 막대한 부를 쌓았죠. 워낙 은둔형이라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어젯밤, 자신의 펜트하우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이수현이 설명을 이어갔다.

“죽음의 원인은?” 강진우는 사진 속 서영훈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무언가 짙고 어두운 감정의 잔재가 느껴지는 듯했다.

“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아주 날카로운 칼로 심장을 한 번에 꿰뚫었더군요. 문제는… 발견 당시의 상황입니다.” 이수현의 목소리에 진한 당혹감이 묻어났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펜트하우스 내부의 모든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강철로 된 현관문은 물론이고, 비상구, 그리고… 서영훈 씨가 발견된 거실과 이어진 방들의 문까지, 전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죠.”

강진우는 서류철의 다음 장을 넘겼다. 현장 사진들이 나타났다. 호화로운 인테리어, 높은 층고, 그리고 그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 사진 한쪽 구석에는 굳게 닫힌 창문과 발코니 문이 보였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이었다.

“창문은 어땠습니까?”

“강화 유리로 된 이중창이고, 역시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심지어 발코니 쪽 창문은 특수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었죠. 게다가 그 펜트하우스는 40층에 달하는 고층 건물 최상층입니다. 외부에서 침입할 방법은 없습니다. 로프를 탄다고 해도, 창문을 깨지 않고 들어올 수는 없죠.” 이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희 과학수사팀이 새벽 내내 모든 곳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환기구부터 보일러실, 모든 벽을 두들겨 가면서 숨겨진 통로나 통로 같은 건 없는지 확인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밀실.” 강진우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눈동자에 미세한 빛이 번뜩였다.

“네, 완벽한 밀실입니다. 살인범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어떻게 그곳에 들어갔고, 어떻게 나온 거죠? 마치 유령이라도 다녀간 것처럼요.” 이수현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유령이라….” 강진우는 서류철을 덮었다. “가보시죠. 직접 보는 게 빠를 겁니다.”

***

서영훈의 펜트하우스는 강남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하는 거대한 건물 중 하나였다. 40층,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그의 거처는 도시의 불빛을 아래에 두르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여전히 경찰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0층에 도착하자마자, 강진우는 마치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공기 중에 희미하게 감도는, 날카로운 감정의 흔적들이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고통, 절망, 그리고… 깊은 분노. 일반인에게는 그저 무겁게 가라앉은 적막이었겠지만, 강진우에게는 마치 벽에 새겨진 비명처럼 선명했다.

“아직도 이런 기운이 남아 있군요.” 강진우는 중얼거렸다.

“뭐가요? 이 서늘한 공기 말씀이세요? 에어컨을 끄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이수현은 몸을 움츠렸다.

“아뇨. 죽음의 잔향이요.” 강진우는 이미 수사팀이 해제한 현관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섰다.

펜트하우스는 거대한 미술 갤러리를 연상시켰다. 높은 벽에는 현대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값비싼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모든 것이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생기가 없었다. 부유하지만 고독한 삶을 짐작게 하는 공간이었다.

강진우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세한 먼지 한 톨, 벽에 걸린 그림의 위치, 천장의 조명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덧씌워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읽어내려 애썼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걸음을 멈췄다. 넓은 거실 중앙, 하얀색 카펫 위에 검붉은 얼룩이 선명했다. 그 옆에는 사람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는데, 서영훈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자리였다.

“시신은 이미 부검실로 옮겼습니다.” 이수현이 설명했다. “사인은 명백한 칼에 의한 심장 관통입니다. 시각은 어젯밤 10시에서 11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강진우는 피 묻은 카펫 위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손이 허공을 스쳤다. 마치 차가운 공기의 흐름을 잡으려는 듯.
“여기군요… 강렬한 의지가 묶여 있네요.” 그는 눈을 감았다.

이수현은 그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워낙 기이한 사건이라 이젠 그가 뭘 하든 그러려니 하게 된 모양이었다.

강진우는 눈을 뜨고 방 전체를 다시 한번 훑어봤다. 통유리로 된 창문 너머로는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옆의 발코니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잠금쇠가 육안으로도 튼튼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방들로 통하는 문들 또한 모두 잠긴 상태였다.

“모든 잠금장치는 외부에서 강제로 해제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안에서 걸어 잠근 그대로였어요.” 이수현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

“살해 도구는 발견되지 않았죠?” 강진우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칼도 사라졌어요. 이건 더 미스터리입니다. 칼을 들고 어떻게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을 빠져나갔다는 건지….” 이수현은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강진우는 창문가로 다가가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 창문, 특수 유리입니까?”

“네, 방탄 기능까지 있는 강화 유리입니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깨지지도 않아요.”

강진우는 잠금쇠를 유심히 살폈다.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조작도 가해지지 않은 듯했다.
그는 다시 거실 중앙으로 돌아와 서영훈의 시신이 발견된 자리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높은 천장을 향했다.

“천장에도 특이점은 없었습니까?”

“네, 환기구는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습니다. 다른 구멍 같은 것도 없었고요.” 이수현이 답했다.

“그럼….” 강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범인은 이곳에 없었습니다.”

이수현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시신은 밀실 안에서 발견됐고….”

“살인은 이곳에서 일어났지만, 살인범은 이곳에 없었습니다.” 강진우는 말을 이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물리적인 형태를 가진 살인범은 없었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유령이라도 범인이라는 말인가요?” 이수현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령은 아니죠. 하지만, 이 밀실은… 속임수입니다.” 강진우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것처럼. 그의 눈빛은 어느새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속임수라는 거죠? 모든 게 굳게 닫혀 있었는데!”

“모든 것이 굳게 닫혀 있었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밖으로 ‘나가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강진우는 카펫 위의 핏자국을 내려다봤다. “이 살인은, 완벽한 밀실을 만들기 위한 연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극을 위해, 아주 독특한 ‘도구’가 사용되었죠.”

그는 고개를 들어 이수현을 바라봤다. “이 펜트하우스의 도면을 다시 한번 보여주시죠. 특히, 이 거실의 구조와 관련된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영훈 씨가 즐겨 마시던 술이나 음료가 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수현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지만, 강진우의 날카로운 눈빛과 확신에 찬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유령’과 ‘속임수’라는 단어가 맴돌고 있었다. 강진우가 또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 완벽한 밀실을 깨부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사건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확인해 볼게요.”

이수현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강진우는 다시 거실 한가운데를 응시했다. 그의 시야에는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강렬한 절망과 후회, 그리고 미처 사라지지 않은 살의의 파편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들이 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유리벽 너머의 그림자’의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