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균열의 속삭임

눈부신 햇살이 고색창연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뚫고 들어와 고즈넉한 대강당의 낡은 나무 바닥 위로 오색찬란한 빛의 조각들을 흩뿌렸다. 웅장한 아치형 천장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형상화한 마법진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중심에서는 일곱 가지 원소를 상징하는 거대한 수정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르카나 마법 학원, 대륙에서 가장 오래되고 명망 높은 마법사 양성 기관이었다.

학생들은 가지각색의 로브를 걸치고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거나, 고서를 뒤적이며 마법 공식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들 모두의 눈빛에는 지식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야망이 넘실거렸다. 이 학원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은, 곧 대륙의 미래를 짊어질 엘리트 마법사로서의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이는 맨 뒷줄, 햇빛조차 잘 닿지 않는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짙은 남색 로브는 여느 학생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묘하게 달랐다. 여느 학생들처럼 반짝이는 야망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의구심과 호기심이 그 안에 서려 있었다. 그는 늘 주변의 작은 균열들을 감지하는 데 능했다. 다른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 예를 들면 오래된 벽에서 미묘하게 어긋난 돌멩이 하나, 혹은 완벽한 정적 속에서 문득 들려오는 희미한 진동 같은 것들 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마법 문양학’ 강의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늙은 교수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학생들 위로 마법 문양의 역사와 변천사를 읊조렸고, 공기는 졸음과 먼지로 가득했다. 그러나 카이의 귀에는 교수의 나른한 목소리보다 더 선명한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아주 희미하지만, 규칙적인 진동이 그의 발밑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착각이려니 했다. 학원 지하에는 여러 연구실과 마력 저장소가 있었으니, 기계음이나 마법 반응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진동은 달랐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이 박동은,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불쾌한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카이는 무의식적으로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진동은 여전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그 진동을 느끼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모두들 졸거나, 딴짓을 하거나, 간혹 노트를 필기하는 척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진동은 그의 피부를 타고 신경줄을 자극했다. 그는 마치 누군가 자신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깊은 곳에서… 더 깊은 곳에서…**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카이는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 발밑의 진동에 집중했다. 진동은 강의 내내 계속되었고, 심지어 학생들이 빠져나간 지금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방을 챙겨들고 천천히 대강당을 나섰다.

진동의 근원을 찾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그는 학원 건물 배치도를 떠올렸다. 대강당의 지하에는 거대한 자료실과 고문헌 보관소가 있었다. 그곳은 학원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역 중 하나로, 일부는 폐쇄되어 접근조차 불가능한 곳이었다.

카이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이끌렸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그 진동이 그를 부르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무언가가,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것처럼.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서늘해졌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이따금씩 복도를 밝히는 마법 램프는 깜빡이며 불안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카이는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갔다. 진동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가 도착한 곳은 ‘제 7 고문헌 보관소’라는 팻말이 걸린 육중한 철문 앞이었다. 문은 거대한 자물쇠와 봉인 마법으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학원 내에서도 이곳은 ‘금지된 지식의 창고’라고 불리며 학생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었다.

**쿵… 쿵… 쿵…**

진동은 이제 문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해져 왔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박동하고 있었다. 카이는 손을 들어 철문에 대보았다. 차가운 금속 너머로, 기분 나쁜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웅얼거림이 그의 귀를 간질였다.

“이런 곳에… 뭐가 있는 거지?”

카이는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철문에 새겨진 복잡한 봉인 마법 문양을 훑었다. 강력한 마력이 봉인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미묘한 불균형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힘을 억누르기 위해 억지로 짜 맞춰진 퍼즐 같았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냐!”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카이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늙은 학원 관리인, 켈렌이 램프를 들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주름졌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는 카이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는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이다. 당장 돌아가지 못할까!”

켈렌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카이의 시선은 켈렌의 손에 들린 램프에서, 그의 어깨 뒤편으로 드리워진 길고 불안한 그림자로 향했다. 그림자는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켈렌 본인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의해 이끌리는 것처럼.

“관리인님, 이 문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카이가 말했다. “그리고… 진동도요.”

켈렌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램프를 든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무슨 헛소리냐. 이곳은 그저 오래된 고문헌들을 보관하는 곳일 뿐. 아무것도 없다. 너의 피곤한 귀가 착각한 것이겠지. 어서 올라가거라.”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거칠었다. 카이는 켈렌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동자에는 명백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이 노인은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학원에서도 가장 깊고 어두운 비밀과 연결되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저는 명확히 들었습니다.” 카이가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쿵… 쿵… 쿵…**

진동은 더욱 강렬해졌다. 켈렌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갑자기 카이를 향해 소리쳤다.

“이곳에 얼씬거리지 마라! 절대… 절대 이 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의 외침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선, 필사적인 비명에 가까웠다. 켈렌은 램프를 든 채 황급히 몸을 돌려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의 그림자가 희미한 마법 램프 불빛 속으로 스러져가는 동안에도, 카이는 여전히 철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다시 철문으로 향했다. 켈렌의 경고는 오히려 카이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이 육중한 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학원 전체를 지탱하는 명예와 영광 아래에 숨겨진, 차가운 심장처럼 박동하는 이 금기된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카이는 다시 손을 들어 철문에 댔다. 그의 손끝에 전해지는 진동은 이제 명확한 형태를 띠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문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울렸다.

그때, 철문의 봉인 마법 문양 한가운데에서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겨났다. 빛 한 줄기조차 새어 나오지 않는, 마치 어둠 그 자체로 이루어진 듯한 균열이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얼음장 같은 냉기와 함께 섬뜩한 속삭임이 새어 나왔다.

**”…어서 와… 우리의 새로운… 피…”**

카이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문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학원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금기의 일부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