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의 균열
우주선 아스트라이아 호는 성간 물질의 아득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심우주 탐사선으로서 지구를 떠난 지 7년, 승무원들은 이미 익숙한 고독과 한계 없는 어둠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침묵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선내를 짓누르고 있었다. 함교의 메인 스크린은 검은색이었다. 모든 시선은 오직 한곳, 중앙 연구실의 실시간 피드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세 진동이 감지됩니다, 함장님. 주파수는… 이전에도 기록된 적 없는 패턴입니다.”
수석 과학 장교 이서연이 흥분과 긴장이 뒤섞인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녀의 눈은 반짝였지만, 그 빛은 지식에 대한 갈망인지 아니면 미지의 공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재질 분석은 아직 불가능해요. 스펙트럼이 완전히 비정상적입니다.”
이서연의 목소리 너머로, 강화 유리벽 너머에 보관된 ‘그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2미터 남짓한 높이의 검은색 오벨리스크.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듯했고, 어떠한 인공적인 흔적도, 자연적인 풍화의 흔적도 없었다. 마치 태초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혹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존재처럼. 이틀 전, 성간 물질 구름 속에서 발견된 이 유물은 아스트라이아 호의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함장 송지현은 굳게 닫힌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녀의 눈은 유물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시선은 이서연의 보고를 넘어선 불안감에 젖어 있었다.
“위험 수치는요? 봉쇄는 완벽한가?”
“에너지 유출은 없습니다. 다만… 미약한 중력장 변동이 감지되고 있어요. 지극히 미세해서 오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지만, 유물이 발견된 순간부터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서연은 다시 유물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녀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강화 유리에 닿았다.
그때, 함교 문이 열리며 보안 장교 강민준이 들어섰다. 그의 굳은 표정은 상황의 심각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함장님, 의료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준호 대원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
의료실 특수 격리 병동은 희미한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김준호 대원은 침대에 누워 힘없이 신음하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창백했고, 눈 밑은 거무스름했다. 탐사팀 소속이었던 그는 유물을 최초로 수거하는 데 참여했다. 접촉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다.
“두통, 오심, 그리고… 악몽을 꾼다고 합니다. 반복적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하고요.”
의료 장교 최혜원이 준호의 혈액 샘플을 분석하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말했다. 수치는 모두 정상이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상’이어서 더욱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악몽이요?” 지현이 물었다.
“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속삭임’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피로감인 줄 알았습니다만, 어젯밤부터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환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혜원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서렸다. “이건 바이러스도 아니고, 박테리아도 아니에요. 어떤 독극물에 의한 증상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던 준호의 몸이 갑자기 크게 경련했다.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핏발이 선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는가 싶더니, 이내 지현을 향해 고정됐다.
“…들려요…?” 준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탁했다. “그것이… 속삭이고 있어요….”
그의 손이 침대 시트를 찢어버릴 듯 움켜쥐었다. 손등의 푸른 혈관이 불거져 나왔다.
“뭘 속삭인다는 거죠, 김대원?” 혜원이 급히 진정제를 준비했다.
“…균열… 존재… 빈틈…”
준호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경련이 일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호의 눈동자가 평소와는 다른 빛을 띠기 시작했다. 옅은 붉은 기운이 스며드는 듯했다.
***
모든 주요 승무원들이 함장실에 모였다. 긴급 브리핑이었다.
“김준호 대원은 격리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증상은 점점 더 기이해지고 있어요.” 혜원이 보고서를 넘겼다. “정신과적 문제라면 우주 공간에서 간혹 발생하기도 하지만, 유물과의 접촉 이후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물을 당장 우주 공간으로 방출해야 합니다.” 강민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권총집으로 향했다. “잠재적 위협은 단호히 제거해야 합니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일입니다.”
“무슨 소리예요? 이건 인류가 발견한 것 중 가장 위대한 발견일 수도 있어요!” 이서연이 반발했다. 그녀의 얼굴은 열기로 상기되어 있었다. “미지의 문명, 미지의 물질… 이걸 연구하면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 모두가 미쳐버린다면 무슨 소용이죠? 저 김준호 대원처럼!” 민준이 으르렁거렸다.
“함장님, 유물의 봉쇄 필드에 미세한 균열이 감지됩니다.” 공학 장교 박성호가 끼어들었다. “에너지 유출은 아니지만, 필드 자체의 안정성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 안에서 필드를 밀어내는 것 같은 압력입니다.”
지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전과 탐사, 두 가지 상반된 목표가 충돌하고 있었다. 아스트라이아 호의 임무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지의 존재가 승무원들의 정신을 침범한다면?
“이서연 장교, 유물에 대한 추가 분석은 잠정 중단한다. 봉쇄 필드 강화에 최선을 다해라. 박성호 장교, 필드 불안정성의 원인을 파악하고 즉시 보고해라. 강민준 장교, 의료실 주변 경계를 강화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라.”
지현의 지시는 단호했다. 그녀는 모두의 눈을 한 명씩 응시했다. “아무도 유물에 직접 접근하지 마라. 명령이다.”
***
그날 밤, 아스트라이아 호는 죽은 듯 고요했다. 모든 승무원들은 불안감에 휩싸인 채 각자의 임무에 매달렸다.
강민준은 의료실 복도에 서서, 자신의 손에 들린 광선 소총의 냉기를 느꼈다. 김준호 대원의 병실 문은 이중으로 잠겨 있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오직 침묵. 하지만 그 침묵이 더욱 민준의 신경을 긁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즉시 총을 겨눴다. 그림자 속에서 최혜원이 나타났다.
“방금… 준호 대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고 오는 길입니다. 한동안은 잠잠할 거예요.” 혜원은 지친 듯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역력했다.
“확실한가?”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마치… 어떤 힘이 그를 계속 깨우려는 것 같아요.”
혜원이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 의료실 격리 병동 안에서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콰아앙!*
육중한 금속 문이 안쪽에서 찢어지는 소리였다.
민준과 혜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안 돼!” 혜원이 비명을 지르며 문을 향해 달려갔다.
민준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물러서!”
두 번째 충격과 함께 문이 완전히 변형됐다. 금속 외피가 종이처럼 찢겨 나가고,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김준호였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피부는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턱은 기괴하게 벌어져 있었고, 입안에서는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드러나 있었다. 손톱은 길고 검게 변형되어 있었으며, 옷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것은 인간의 온기가 아닌, 썩은 고기와 피비린내였다.
그는 사지가 뒤틀린 자세로 혜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거칠었다.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으아아악!” 혜원이 비명을 질렀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광선 소총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준호는 꿈틀거리는 몸으로 그 공격을 피하며, 혜원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민준의 심장이 발이 묶인 듯 뛰었다.
“멈춰, 김준호! 그 자리에서 멈춰라!” 그는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준호에게 닿지 않았다.
준호는 이미 혜원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혜원을 덮쳤다.
다음 순간, 혜원의 비명은 끔찍한 단말마로 변했다.
민준은 눈앞에서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얼어붙었다. 혜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준호의 모습은 악몽 그 자체였다. 피가 튀었다.
하지만 민준이 다시 총구를 겨누는 순간, 준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핏빛 눈동자가 민준을 향했다. 그 눈에는 살의와 함께, 어떤 텅 빈 공허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전율을 느꼈다. 준호의 눈이, 그 텅 빈 공허함이, 마치 유물의 검은 오벨리스크를 그대로 복사해 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스트라이아 호의 심연 속에서, 침묵의 균열이 마침내 벌어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