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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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무너진 도시의 그림자**

희뿌연 먼지 낀 햇살이 무너진 빌딩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녹슨 철골의 뼈대와 삭아버린 콘크리트 잔해 위로 위태롭게 드리웠다. 지훈은 망토처럼 두른 낡은 천을 고쳐 매며 삐걱거리는 철문을 열었다. 한때는 화려했을 백화점의 유리문은 박살 나고 텅 빈 채, 바람이 불 때마다 귀신처럼 음산한 소리를 냈다.

“하… 오늘은 제발 뭐라도.”

메마른 목소리가 공허한 공간에 흡수되었다. 그의 눈은 핏줄이 서 있었고, 깡마른 볼은 푹 꺼져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식사는 고사하고 물 한 모금도 찾지 못했다. 등에 짊어진 낡은 배낭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조심스럽게 내부로 발을 디뎠다. 한때 명품으로 가득했을 진열대는 산산조각 난 채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마네킹들은 팔다리가 부러진 기괴한 형상으로 서 있거나 쓰러져 있었다. 곰팡이 냄새와 썩은 내, 그리고 퀴퀴한 먼지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지훈은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훑었다. 유리 파편, 찢어진 옷가지, 정체 모를 얼룩들… 아무것도 그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없었다.

지하 식료품 코너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이미 오래전에 멈춰 있었다. 굳어버린 계단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딛고 내려갔다. 삑, 삑. 그의 등 뒤에서 나는 낡은 신발의 마찰음만이 이 거대한 무덤 속 유일한 소리였다. 지하층은 더욱 어두컴컴했다. 천장의 전등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생명을 다했을 터. 손전등을 꺼내 조심스럽게 앞을 비췄다.

“젠장, 여기도 똑같군.”

캔이며 병들이 나뒹구는 진열대는 이미 약탈당한 지 오래였다. 곰팡이 핀 봉투, 말라비틀어진 과일 껍질…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빈 배가 쓰리게 조여 왔다. 그는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이 거대한 폐허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정말 남아 있기는 한 건가.

그때였다.

삭막한 정적을 깨고, 저 멀리서 무언가 ‘쿵’ 하고 무겁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의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전등을 끄고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심장이 귀청이 찢어질 듯 뛰었다. 쿵, 쿵, 쿵. 자신의 심장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은 없었다.

저 소리는… 짐승의 소리 같았다. 아니, 짐승이라기엔 너무 육중하고… 규칙적인 움직임이었다. 혹시, 또 다른 생존자? 아니면… 그 녀석들?

그는 허리춤에 찬 낡은 사냥칼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철컥, 하는 작은 금속성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지훈은 칼을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다. 빛바랜 칼날이 미약한 어둠 속에서도 번뜩이는 듯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쿵, 쿵, 쿵.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거대하고 일그러진 형체. 사람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려움에 온몸이 굳어가는 것을 애써 눌러 참았다.

손전등을 다시 켤까. 아니, 위험해. 먼저 들키면 끝이다.

그림자가 복도 끝에서 꺾어져 들어왔다. 낮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놈은 느릿느릿 걸어왔지만, 그 걸음걸이에서조차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축 늘어진 피부,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덩치, 그리고 붉게 빛나는 눈동자. ‘추적자’였다. 햇빛을 싫어해 지하 깊숙한 곳이나 폐건물 속을 떠도는 변이체. 주로 혼자 다니지만, 한번 먹잇감을 발견하면 끈질기게 쫓아오는 최악의 사냥꾼.

추적자는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맴돌았다. 육중한 몸을 뒤뚱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잔해들을 발로 툭툭 차는 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지훈이 숨어 있는 벽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놈의 썩은 내 나는 숨결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들키지 마… 제발….’

지훈은 눈을 감고 빌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놈의 붉은 눈이 잠시 자신이 숨어 있는 그림자를 스치는 듯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에 쥔 칼의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그때, 추적자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더니, 짐승처럼 날카로운 콧소리를 냈다. 녀석의 시선이 정확히 지훈이 숨어 있는 벽 뒤편으로 향했다.

“젠장…!”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복도 반대편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움직임을 감지한 추적자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를 향해 돌진했다. 쿵, 쿵, 쿵! 땅이 울렸다.

“흐읍, 하아…!”

폐가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뛰었다. 어둠 속에서 휘청이며 달렸다. 그의 뒤에서는 놈의 거친 숨소리와 거대한 발소리가 맹렬하게 추격해오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순간, 발이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콰당!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손전등이 멀리 날아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뼈가 아려오는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지훈의 위를 덮쳤다. 썩은 내 나는 입에서 뜨거운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놈의 손톱은 녹슨 칼날처럼 시퍼렇게 날 서 있었다. 놈이 지훈의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지훈은 마지막 힘을 짜내 허리춤에 있던 낡은 깡통을 놈의 얼굴을 향해 힘껏 던졌다.

챙강!

깡통이 놈의 얼굴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순간 추적자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놈은 울부짖으며 손톱으로 자신의 얼굴을 마구 긁었다. 눈이 잠시 멀었는지, 붉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흔들렸다.

그 짧은 틈.

지훈은 재빨리 몸을 굴려 진열대 뒤로 숨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칼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놈은 맹수처럼 포효하며 진열대 쪽으로 달려들었다. 진열대가 쿵! 하고 거칠게 흔들렸다.

‘이제, 죽는 건가….’

희망이 사라지는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때, 그의 눈에 진열대 아래, 부서진 틈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낡은 상자. 먼지로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아주 미약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훈은 홀린 듯 손을 뻗었다. 놈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손끝에 잡힌 낡은 상자를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다.

꾸드득, 뿌드득.

상자 안에서 무언가가 긁히는 소리. 그리고, 지훈의 손에 잡힌 것은… 녹색 빛을 내는 작은 약병이었다. ‘구급 약품’이라고 적힌 글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적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추적자가 진열대를 부수고 이쪽으로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육중한 몸이 진열대를 으스러뜨리는 소리가 귓가를 찢었다. 지훈은 약병을 품에 숨기고 다시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놈은 생각보다 빨랐다. 진열대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놈의 굵고 긴 팔이 순식간에 지훈의 발목을 낚아챘다.

“크악!”

지훈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처박혔다. 놈은 그를 질질 끌며 어둠 속으로 향했다. 지훈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힘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시야가 온통 빙글빙글 돌았다. 의식이 흐려져 갔다.

바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파지지직!

지훈의 발목을 잡고 있던 추적자의 팔이 허공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지훈은 발목이 풀린 틈을 타 몸을 재빨리 빼냈다.

“뭐… 뭐야?”

어둠 속에서 푸른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불꽃 뒤로, 차가운 금속성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길쭉한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는 형체.

“움직이지 마. 놈의 신경계는 아직 살아있어.”

낮고 거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놈의 팔은 아직도 파지지직 소리를 내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추적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방향을 바꿔 자신을 공격한 존재를 향해 포효했다.

어둠 속의 인물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막대기를 다시 한번 휘둘렀다.

파지지직! 콰직!

이번에는 놈의 머리였다.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추적자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거대한 몸뚱이가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완벽한 정적.

어둠 속의 인물은 천천히 지훈에게 다가왔다. 손에 들린 것은 손전등이 아닌, 무언가 전기가 흐르는 듯한 낡은 금속 막대기였다. 그의 그림자가 지훈에게 드리워졌다.

“괜찮아?”

가까이 다가온 그는 후드티를 깊게 눌러쓴 채였다.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미약한 걱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지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누구시죠?”

그는 아무 말 없이 지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지훈의 품에 있는 약병에 잠시 머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훈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한기를 느꼈다. 그가 자신을 구해준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위험이 다가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얼마나 잔인해졌는지를, 지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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