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고요한 밤의 균열

밤은 깊어가는데, 이지아의 작은 작업실은 여전히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었지만, 연필은 허공에서 맴돌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류이안의 눈동자, 찰나의 순간 빛났던 그 푸른 별빛 같은 섬광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말도 안 돼… 진짜로?”

지아는 중얼거리며 제 볼을 꼬집었다.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어제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난데없이 추락하던 간판 파편을 순식간에 붙잡아 올리던 이안의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의 시간이 아주 잠깐 멈춘 듯한 기묘한 감각. 그건 꿈도, 환각도 아니었다.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안 씨가… 설마… 영화에 나오는 그런 존재란 말이야?”
그녀의 머릿속에는 뱀파이어, 늑대인간, 심지어는 이세계에서 넘어온 용사까지 온갖 상상 속 존재들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류이안의 고고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안은 그저 완벽하게 잘생기고, 살짝 차갑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제 본 그 모습은?

똑똑.

나직한 노크 소리에 지아는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누구… 세요?”
평소라면 친구들 아니면 택배 기사일 텐데, 이 시간에 누가?
문틈으로 보이는 그림자는 키가 컸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지아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그곳에는 류이안이 서 있었다. 늘 완벽하게 재단된 옷을 입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미묘한 불안감과 피로가 섞여 있었다.

“이안 씨? 이 밤에 무슨….”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지아 씨.”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고 조심스러웠다. 이안은 지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어제 일 때문에… 혹시 불편하셨나요?”

지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불편? 불편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의 우주가 통째로 뒤흔들리는 경험이었다.
“불편이라기보다는… 좀, 충격적이었달까요?” 지아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안 씨, 어제 제가 본 게… 뭔가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실 수 없어요?”

이안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의 짙은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지아는 처음 보았다.
“지아 씨가 본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의 인정에 지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럼… 이안 씨는… 대체….”
“저는… 당신이 아는 류이안이 아니에요.” 이안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도 담담하고 고통스러워서, 지아는 할 말을 잃었다. “이곳의 존재가 아닙니다.”

지아는 망설였다. 이런 말을 믿어야 할까? 하지만 어제의 광경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럼… 외계인인가요? 아니면… 혹시 요정? 도깨비?”
지아의 엉뚱한 상상력에 이안의 굳어있던 얼굴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음…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겠군요. 하지만 이안이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럼 제가 지금까지 알고 지낸 이안 씨는 다 가짜였다는 거예요?” 지아는 왠지 모를 서운함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지아 씨에게 다가갔던 류이안의 마음은… 진짜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나자, 지아의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저희는… 별의 후예라고 불립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세계와 함께 존재해왔지만, 인간들 눈에는 띄지 않도록 조용히 살아가죠. 저희의 규칙은… 인간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과 감정을 나누고 관계를 맺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금지. 그 단어가 지아의 귓가에 맴돌았다.
“금지… 왜요?”
“저희와 인간은 다른 존재입니다. 서로에게… 해가 될 수 있어요.”
“해가 된다니요? 이안 씨는 저를 항상 도와주고 지켜줬잖아요!” 지아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섞였다.

이안은 아무 말 없이 지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애틋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지아 씨와 함께 있을 때의 저는… 평범한 인간 남자 류이안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일로… 저는 제 존재를 드러냈고, 저희 종족의 규칙을 어겼습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먼 별을 보는 듯 아득했다.

그때였다. 창밖에서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한여름밤임에도 불구하고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순식간에 방안을 채웠다.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속 잎들이 바스락거리며 얼어붙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아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이안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미약한 생명의 에너지인가. 류이안.”
낮지만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히 지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지아는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공기 중에는 묘한 압력이 가득했다.
이안이 지아의 앞에 서서 그녀를 가렸다. 그의 몸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아셀.” 이안의 목소리에는 경고의 기색이 역력했다.
“규칙을 어겼군. 인간에게 정체를 드러내고, 감정까지 나누는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방 한가운데, 공간이 일렁이더니 투명하고 유려한 실루엣이 서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길고 은발의 머리칼,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 그리고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이안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훨씬 더 고고하고 차가웠다. 마치 별빛으로 빚어진 조각상 같았다.

지아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눈앞의 존재는 이안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여인이 바로 이안이 말한 ‘별의 후예’ 중 한 명이며, 그녀에게는 적대적이라는 것을.

“정말 실망스럽구나, 류이안. 그렇게 강하고 고귀한 별의 후예가 겨우 이런 미약한 존재에게 흔들리다니.”
아셀은 지아를 경멸하듯 훑어보았다. 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미약한 존재’라니!

“아셀, 함부로 지아 씨를 모욕하지 마라.” 이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의 푸른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모욕이라니.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너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대협정(大協定)이 위협받고 있다. 인간과의 섞임은 금지되어 있다. 우리의 순수함을 더럽히고, 이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다.”
아셀은 차가운 눈으로 이안을 응시했다.
“당장 인간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돌아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이 미약한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아셀의 말에 지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 한 점의 망설임도, 감정도 없었다. 마치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듯했다. 이안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셀! 감히…!”

아셀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지아의 머리맡에 놓인 물컵 안의 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투명한 얼음 조각이 되어 허공에 정지했다. 시간마저 얼어붙은 듯한 정적 속에서, 아셀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이것이 너의 결정을 촉진할 경고다, 류이안. 네 어리석음이 그녀의 목숨을 위협할 것이며, 너 자신마저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이끌 것이다.”

얼음 조각들이 다시 물로 돌아가지 않고, 파스스 부서지며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아셀은 마지막으로 지아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방안을 채웠던 한기도 서서히 물러갔지만, 그 자리를 훨씬 더 무거운 공포가 채웠다.

지아는 다리가 후들거려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안은 그녀를 감싸 안듯 지탱했다.
“지아 씨, 괜찮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지아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볼 수 없었다.
‘사라질 것이다.’ 그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이안의 세계에서 ‘금지된 사랑’은 정말로 목숨을 건 금기였던 것이다.

“이안 씨…” 지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내가 당신에게 해가 되는 존재였어?”
그녀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이안은 지아를 꽉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녀는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이 너무나도 차갑고 무정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사랑은, 과연 이 모든 위협을 이겨낼 수 있을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