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아르카나 마법 학원, 본관 로비는 한때 수백 명의 엘리트 마법사 지망생들로 북적였다. 웅장한 아치형 천장 아래, 마법진이 새겨진 대리석 바닥은 늘 은은한 마력으로 빛났고, 젊은 마법사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메아리쳤었다. 지금은? 파괴와 죽음, 그리고 끈적이는 침묵만이 지배할 뿐이었다.

축 늘어진 붉은 벨벳 커튼은 반쯤 찢겨 너덜거렸고, 샹들리에의 조각들은 바닥에 흩어져 잔인한 보석처럼 반짝였다. 굳어버린 핏자국과 먼지, 그리고 감염자들의 잔해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흉측한 생명체가 되어버린 존재들이었다.

“젠장, 또 이런 식이야.”

강하준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둠 마법을 주로 다루는 그의 지팡이는 끝부분에 검은 수정이 박혀 있었는데, 그 수정은 주변의 모든 빛을 삼키는 듯 어두운 광택을 뿜어냈다. 그의 잿빛 눈동자는 냉정하게 주변을 훑었지만,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그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노력 뒤에는 언제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생존자는 없어 보여, 하준아.”

서연아는 휙휙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녀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있었고, 손에는 늘 불의 마력이 서린 단검 두 자루를 쥐고 있었다. 발랄하고 낙천적인 성격은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그런 모습이 하준에게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럼 됐지 뭐. 보급품만 찾으면 돼.”

이현우는 마법 스크린을 띄워 학원 지도를 확인했다. 하준과 연아의 한 학년 선배인 그는 흰 가운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지만, 그 가운에는 여기저기 헤진 흔적이 역력했다. 힐링 마법 전문인 현우는 체력은 약했지만, 탁월한 분석력과 기억력을 지닌 팀의 브레인이었다. “교수님들이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비상 보급 창고가… 여기쯤이라고 했었어.”

그들이 로비에 들어선 것은, 폐쇄된 지 오래인 이 구역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비상 보급품을 찾기 위해서였다. 학원 지하에 마련된 임시 피난처의 식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외부로 나가는 길은 죽음보다 더 위험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로비 안쪽, 낡은 마법식 자물쇠로 잠겨있던 굳건한 철문이었다. 현우가 마법 해제를 시도하자, 녹슨 철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안은 예상대로 텅 비어 있었다. 이미 다른 생존자들이 다녀갔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감염자들의 습격에 무용지물이 되었을 터였다.

“역시나… 헛수고였네.” 연아가 실망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준은 말없이 주변을 응시했다. 벽면에 붙어 있던 낡은 게시판에 뭔가 찢겨 나간 종이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다가가 조각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바싹 마른 종이에는 잉크가 번진 필체로 알아보기 힘든 글씨가 쓰여 있었다.

현우가 그의 어깨 너머로 스크린을 띄워 글씨를 분석했다. “이건… 교수님 필체 같아. ‘비상시, 구 본관 지하 연구동 최심부로.’ 뭐? 구 본관 지하 연구동?”

하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지하 연구동? 거긴 아무도 못 들어가게 막아놨잖아. 게다가… 소문이 안 좋았지.”

“소문? 뭐가 어때서?” 연아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녀는 학원 입학 후 종말이 닥쳐버린 세대였기에, 학원의 깊은 역사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옛날에… 뭔가 위험한 실험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어. 마법을 이용한 금지된 연구를 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폐쇄된 지 백 년도 더 됐다던데. 공식적으론 ‘학술적 가치가 없어져 폐쇄’라고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지.” 하준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 소문은 학원생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것이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는 뭔가 섬뜩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막연한 공포.

“금지된 연구라…” 연아가 흥미롭게 중얼거렸다. “지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데, 금지된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어쩌면 거기에…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위험해.” 현우의 목소리는 불안감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교수님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지시치고는 너무… 불길해.”

하준은 잠시 고민했다. 보급품도 없고, 외부 세계는 지옥 그 자체. 지금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불길하든 뭐든, 지금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야. 교수님이 그곳을 언급했다면,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보급품이든… 아니면… 이 사태에 대한 해답이든.”

결국 그들은 구 본관 지하 연구동으로 향했다. 로비를 지나 낡은 비상구 계단을 내려가자, 공기 자체가 변했다. 차갑고 습한 냉기가 살갗을 파고들었고, 코끝을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철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계단 벽면 곳곳에는 오래된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들은 학원에서 가르치는 현대 마법과는 다른, 훨씬 고대의 느낌을 주었다.

“젠장, 여기 진짜 오래됐네.” 연아가 불꽃 마법으로 주변을 밝혔다. 불빛에 드러난 복도는 어둡고 낡았으며, 천장은 거미줄과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이 복도를 따라 걷던 중, 갑자기 현우의 마법 스크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하준아, 연아! 앞에… 뭔가 있어! 움직임이 빨라!”

경고와 동시에,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낡은 벽이 산산조각 나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일반적인 감염자와는 달랐다. 온몸의 피부가 녹아내린 듯 검붉게 변해 있었고, 오른팔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날카로운 뼈들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역겨운 악취를 풍기며 짐승 같은 포효를 내뱉는 괴물, ‘변이 감염자’였다.

“피해!” 하준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변이 감염자의 거대한 팔이 연아를 향해 붕권처럼 휘둘러졌다.

“하!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연아는 재빠르게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손에 든 단검에서 붉은 불꽃을 뿜어냈다. 불꽃은 괴물의 팔에 달라붙어 살을 태웠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하준은 놓치지 않았다. “어둠의 구속!” 검은 수정이 박힌 지팡이 끝에서 칠흑 같은 어둠의 촉수가 뻗어 나와 괴물의 몸을 휘감았다. 괴물은 몸부림쳤지만, 어둠의 속박은 단단했다.

“연아!” 하준의 신호에 연아는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 “염화벽력(炎火霹靂)!” 그녀의 두 단검에서 거대한 불꽃 폭풍이 터져 나와 괴물의 몸을 휩쓸었다. 괴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불꽃 속에서 점차 재로 변해갔다.

현우는 그들이 싸우는 동안 재빨리 방어 마법을 펼쳐 주변을 보호했다. “휴… 간신히 해치웠네. 일반 감염자와는 차원이 달라.”

불꽃이 사그라지자, 괴물이 튀어나왔던 벽 뒤로 또 다른 통로가 숨겨져 있는 것이 드러났다. 깨진 벽돌과 부서진 파편 너머, 어둡고 깊은 틈새가 그들을 유혹하는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하준은 망설임 없이 그 통로로 향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공기 자체가 더욱 확연하게 변했다. 철 비린내와 시큼한 약품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향이 코를 찔렀다. 발밑에서는 끈적한 액체가 밟히는 듯한 불쾌한 감촉이 느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복도. 복도 양쪽으로는 녹슨 철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감옥의 복도 같기도 하고, 거대한 실험실의 통로 같기도 했다. 하준은 지팡이 끝의 수정으로 문 중 하나를 가리켰다. “열어봐.”

현우가 마법으로 잠긴 문을 열자, 그 안에서 드러난 광경은 그들을 경악시켰다.
철장 안에는 수많은 해골로 변한 인간의 잔해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서 있었다. 그들의 해골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턱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거나, 머리 부분에 뿔 같은 기형적인 돌기가 자라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동안 끔찍한 고통 속에서 변이된 것처럼.

“이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연아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낙천적인 표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공포만이 가득했다.

현우는 얼굴이 창백해져 마법 스크린을 떨리는 손으로 조작했다. “이 기록… 이 마법… 젠장, 이건 감염병이 아니라… 조작된 생체 병기였어. 학원에서… 마법으로 감염자를… ‘강화’시키려고 했던 거야…!”

그때, 가장 안쪽에 있던 거대한 철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쇠사슬이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깊은 심연. 마치 우주의 끝자락처럼 아득하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쿵- 쿵- 하는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한 심장이 느리게, 하지만 강력하게 박동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와 함께, 복도 바닥에 뒹굴던 해골들이 푸른빛에 반응하듯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죽음이 다시 깨어나는 것처럼.

하준은 지팡이를 단단히 잡았다. 잿빛 눈동자에는 냉철함 대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순수한 공포가 일렁였다. “젠장… 이건 그냥 좀비 아포칼립스가 아니었어. 학원 지하에… 이런 괴물이 잠들어 있었다니.”

푸른빛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형태를 아득히 초월한, 섬뜩하고 거대한 무언가. 그것은 거대한 고대의 마법진 위에 묶여 있는 듯했다.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줄기가 그것의 몸을 가로질러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도망쳐…!” 현우의 절규가 복도를 찢었다.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거대한 존재의 눈이, 푸른빛 속에서 번뜩이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돌아왔다. 마치 심연에서 깨어난 태초의 악이, 먹잇감을 응시하는 것처럼.

그 순간, 그들은 깨달았다. 진짜 지옥은, 학원 밖이 아니라… 바로 이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