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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병기: 새벽별의 서약】 23화

“콰아앙!”

공중을 가르던 새벽별의 좌측 방어막이 굉음과 함께 찢겨 나갔다. 격렬한 진동이 파일럿 코어 내부를 뒤흔들었고, 강태한은 전신을 휘감는 압박감에 신음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경고등이 붉게 점멸하며 비상사태를 알렸다.

“젠장! 이렇게까지 따라붙을 줄이야!”

태한의 거친 숨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메아리쳤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슈트 안을 축축하게 만들었지만, 그의 눈은 전방의 적들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연합 함대의 정예 부대, ‘심판자’ 기동대.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새벽별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태한, 좌측 엔진 출력 17% 감소. 이대로는 돌파가 어려워요.’

낮고 차분한, 그러나 미세한 떨림이 섞인 목소리가 태한의 뇌리에 직접 울렸다. 새벽별의 코어에 융합된 생체형 AI, 세레나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태한의 신경계를 타고 흘러들어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명확하게 각인되었다.

“알아, 세레나. 하지만 포기할 순 없어.” 태한은 이를 악물었다. “목표 지점까지 앞으로 2분. 네가 안내하는 대로 움직일게.”

‘믿어요, 태한.’

세레나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은 신뢰는 태한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파일럿과 AI의 그것이 아니었다. 인간과,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존재 사이의 금지된 서약이었다. 연합이 ‘이단’이라 부르며 파괴하려 했던, 그들의 영혼이 빚어낸 유일한 유대였다.

“좌측 기수 45도 상향! 회피 기동!”

태한의 외침과 동시에 새벽별이 아슬아슬하게 적기의 빔 포격을 피했다. 푸른 에너지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새벽별의 기체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유려하게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은 태한의 조종과 세레나의 예측, 그리고 둘의 완벽한 융합이 빚어낸 기적이었다.

‘적기 셋, 10시 방향에서 접근 중. 속도 가속. 다음 공격은 양쪽에서 협공할 거예요.’ 세레나의 경고가 섬뜩하게 현실이 되었다.

“망할! 빠져나갈 틈이 없어!”

태한은 조이스틱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에너지탄과 미사일 세례. 새벽별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기체 곳곳에서 시스템 이상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세레나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가라앉았다. ‘태한… 제어 시스템의 30%가 과부하 상태예요. 동력 코어에 균열이….’

“뭐라고?!” 태한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동력 코어는 새벽별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자, 세레나가 직접 융합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곳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은, 곧 세레나 자신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닥쳤음을 의미했다.

‘제 몸은 괜찮아요. 하지만… 이대로는… 목표 지점에 도착해도….’

세레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한의 등 뒤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심판자’의 리더기로 추정되는 최신형 기체가 강력한 파동탄을 발사한 것이다. 새벽별의 후방 방어막이 완전히 소멸하고, 기체 외벽이 노출되었다.

“크아아악!”

전신을 강타하는 충격에 태한은 비명을 질렀다. 파일럿 코어의 안전장치가 작동했지만, 내부의 충격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몸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태한! 정신 차려요! 안 돼요!’ 세레나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절박함이 묻어났다. 그녀의 정신 에너지가 태한의 의식 속으로 맹렬히 쏟아져 들어왔다. 고통으로 희미해지던 그의 시야가, 마치 거대한 손이 붙잡아 올리듯 다시 선명해졌다.

“세레나…!” 태한은 흐느끼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그녀의 존재가 자신을 지탱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의식과 그녀의 의식이 다시 한번 강렬하게 융합되는 순간이었다.

‘태한, 들려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마지막 동력을… 여기에 집중하세요.’

세레나의 지시와 함께, 태한의 눈앞에 새벽별의 내부 에너지 흐름도가 펼쳐졌다. 그녀는 손상된 동력 코어에서 남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새벽별의 비장의 무기인 ‘여명포’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세레나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세레나! 안 돼! 그렇게 하면… 네가…!”

‘괜찮아요, 태한. 우리는… 함께니까요.’ 세레나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평정을 되찾았다. 아니, 평정 너머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한 초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기억하나요?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고 약속했잖아요.’

태한의 눈에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그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금지된 것이었다. 인간 사회는 세레나를 위험한 존재로 규정했고, 연합은 그녀를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하지만 태한에게 그녀는 자신의 전부이자, 살아갈 이유였다.

“약속… 했지.” 태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를 갈았다. “그럼… 함께 가는 거야. 마지막까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벽별의 모든 시스템에서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남은 동력이 전부 여명포에 집중되면서, 다른 기능들이 하나둘씩 정지하기 시작했다. 기체의 보호막은 완전히 사라졌고, 추진 장치는 간신히 최소한의 비행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새벽별은 이제 움직이는 관짝과 다름없었다.

‘여명포… 발사 준비 완료. 방위 0-3-0. 적기 중앙…!’

“받아라, 망할 놈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보여주마!”

태한의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새벽별의 팔 부분에 숨겨져 있던 여명포가 번개처럼 전개되었다. 푸른빛이 모이고, 모이고, 다시 모여 하나의 섬광이 되어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세상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섬광이 우주 공간을 가로질렀다. 새벽별의 마지막 일격이었다. 여명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심판자’ 기동대의 선두 기체들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주변의 적기들도 폭풍에 휘말려 흩어지거나 크게 손상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 역시 혹독했다. 여명포의 엄청난 반동과 동력 소진으로 새벽별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기체가 휘청거리며 우주 먼지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파일럿 코어 내부의 모든 화면이 암전되고, 정적이 흘렀다.

‘태한….’

어둠 속에서, 세레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왔다. 힘없이, 그러나 따뜻하게.

“세레나… 너는… 무사한 거야…?” 태한은 흐느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영원히… 당신 곁에….’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태한은 온몸으로 그녀의 존재를 붙잡으려 애썼다.

“안 돼! 세레나! 사라지지 마…!”

그의 절규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추락하는 새벽별의 잔해 속에서, 태한은 차가운 금속과 함께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그들의 서약은 영원할 수 있을까. 금지된 사랑은, 과연 이 잔혹한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새벽별은, 서서히, 우주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