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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 14: 심해의 등불

“함장님, 목표까지 2.7 광시(光時) 남았습니다. 에너지 패턴은 여전히 불규칙하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강 지혁 부함장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침착함 대신 미묘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아스트라호의 브릿지, 푸른빛 홀로그램이 우주 저편의 미지 물질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숫자들이 춤추고, 알 수 없는 그래프들이 끊임없이 요동쳤다.

선우 리아 함장은 컵에 담긴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끝에 감돌았지만, 흔들림 없는 눈빛은 전방의 메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의할 수 없다라… 흥미롭군요. 서진, 외부 스캔 결과는?”

박 서진 기술 책임자가 터치패드를 빠르게 조작했다.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이 파란 홀로그램 빛에 비쳐 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물질 구성 파악 불가. 어떤 스펙트럼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원소 주기율표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 같습니다. 하지만… 주변 공간의 중력 렌즈 현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마치 저 자체가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왜곡하는 동시에, 미약한… 아니, 특정 주파수의 진동을 내보내고 있어요.”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진동?” 최 도윤 의료 책임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늘 인류의 안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인물이었다. “생체 신호로 오인될 만한 주파수인가요? 혹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 미칠 가능성은…?”

“아뇨,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너무 미약해서… 마치 우주 자체의 배경 노이즈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분명히 ‘그것’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서진의 답변은 그 어떤 설명보다 기묘한 불확실성을 담고 있었다.

리야 함장은 심호흡을 했다. 그녀의 시선은 홀로그램 속 희미한 점에 꽂혀 있었다. “접근 속도 유지. 탐사팀은 준비 완료했나?”

“네, 함장님! 김 한결 대원, 탐사 로브에 탑승 대기 중입니다!” 지혁이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절제되어 있었지만,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한결은 브릿지 아래쪽 탐사 도크에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데뷔 이래 첫 심우주 탐사 임무. 그것도 ‘미지의 유물’이라니. 전신을 감싸는 탐사 로브의 단단한 감촉이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동료 대원 ‘이 지민’과 함께 마지막 장비 점검을 마쳤다. “지민 씨, 산소 게이지 확인!”

“완료! 한결 씨,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우리 팀은 뭘 발견하든 늘 살아남았잖아요?” 지민이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녀의 눈빛에는 익숙한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아니, 이건 좀 다르죠. ‘정의할 수 없는 존재’라니…” 한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로브의 헬멧 안에서 그의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듯했다.

그때, 함장의 차분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왔다. “탐사팀, 현재 목표까지 1광분(光分). 시각 확인 가능 거리 진입. 메인 스크린 개방.”

아스트라호의 전면 스크린이 거대한 우주의 장막을 걷어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고 희미한 점이 나타났다. 마치 우주가 스스로 빛을 토해낸 듯,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결정 같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결정의 날카로움과는 달랐다. 육면체도, 구도 아니었다. 어떤 정의도 불가능한, 비대칭적이면서도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동시에, 내부에서부터 미약하게 푸른빛과 보랏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수억 년 전의 별빛이 그 안에 갇혀 천천히 숨 쉬는 것 같았다. 그 몽환적인 빛은 주변의 먼지와 가스에 반사되어 오색찬란한 아우라를 만들었다.

“세상에…” 서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무심코 손을 뻗어 스크린을 만질 듯했다.

브릿지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 심우주까지, 인류의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와서 발견한 이 광경은 공포보다는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거대한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게… 대체 뭘까요?” 지혁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그 신비로운 물체에 홀린 듯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분석적인 시선조차도 경이로움에 압도된 듯했다.

함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녀의 오랜 경험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존재였다. “어떤 에너지 반응도, 움직임도 없습니다. 마치… 그냥 그곳에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때, 서진이 다시 한번 외쳤다. 그녀의 손가락이 터치패드를 빠르게 오갔다. “함장님! 미약한 진동 주파수가… 감지되고 있어요. 선율 같아요! 아주 복잡하고, 부드러운… 마치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스크린 속, 그 검은 결정체는 변함없이 고요했다. 하지만 함장 리아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광막한 우주에서, 이토록 불가사의한 존재가 이렇게나 평화롭게 그 자리에 있다니. 그 모습은 마치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의 등불 같았다.

“탐사팀, 출격 준비. 섣부른 접촉은 금지합니다. 원거리 스캔 및 시각 정보 수집에 집중하세요.” 함장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평온한 통제력을 되찾았다. “아스트라, 전방 미지 유물에 200미터까지 근접. 모든 시스템 항시 대기.”

한결은 탐사 로브의 조종간을 꽉 쥐었다. 로브의 창 너머로 보이는 ‘그것’은 거대한 우주의 캔버스에 찍힌 한 점의 물감 같기도, 태초의 신비가 응축된 보석 같기도 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세포가 새로운 깨달음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동료 지민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결 씨, 떨고 있어요? 아니면 설레서 그래요?”

“둘 다요, 지민 씨. 이건… 이건 우리가 꿈꿔왔던 미지의 존재가 맞아요.” 그의 목소리는 경이로움에 젖어 있었다.

그때였다. 검은 결정체의 심연에서, 아주 미세하게, 한 줄기 빛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뒤섞인 그 광채는 한순간 아스트라호의 모든 창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아스트라호의 모든 시스템이 일순간 정지했다. 스크린이 꺼지고, 브릿지는 비상등의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기계음은 멎었고, 정적이 찾아왔다.

“이게 무슨…! 시스템 다운?! 함장님, 비상 전력 시스템도 반응이 없습니다!” 서진의 다급한 외침이 적막을 깨트렸다.

함장 리아는 차가운 침묵 속에서 메인 패널을 내려다보았다. 우주선은 이제 미지의 존재 앞에, 무방비 상태로 정지해 있었다. 그녀의 귀에는 아까 서진이 말했던,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던 그 미약한 진동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동은, 이제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