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고요한 샘물 찻집의 오후는 언제나 고즈넉했다.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에서 막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들이 햇살을 받아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찻집 주인 미루가 직접 구운 스콘 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평소 같으면 손님들로 북적였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도한만이 창가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녹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도한 씨, 또 저기 압화 액자 속 무늬를 분석하고 있어요?”

찻잔을 새로 놓아주며 미루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도한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작게 중얼거렸다.

“저 나비는 원래 이 마을에서 자라지 않아. 아마 다른 지방에서 왔을 거야. 그리고 이 꽃잎… 자연 건조된 게 아니라, 특정 온도에서 압착 건조된 흔적이 선명해. 꽃잎의 섬유질이 미세하게 뭉쳐 있지. 이건 아마도….”

“알았어요, 알았어. 탐정놀이는 잠시 접어두고, 이 따뜻한 차 한 잔 마셔요. 머리 쓰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쉬어줘야죠.”

미루는 싱긋 웃으며 도한의 앞에 새로 내온 차를 놓았다. 도한은 그제야 시선을 돌려 찻잔을 바라봤다.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진 백자 찻잔에서 올라오는 맑은 수증기가 햇빛에 일렁이며 춤을 추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했다.

“고마워, 미루 씨. 역시 미루 씨의 차는 언제 마셔도 마음이 편안해져.”

그의 말에 미루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그때였다. 찻집 문이 갑자기 요란하게 열리며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그는 이 마을 파출소의 박 경위였다. 평소에도 어딘가 어리숙한 구석이 있는 그는 오늘따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도… 도한 씨! 큰일 났어요! 큰일이 났다구요!”

박 경위는 테이블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기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미루는 놀란 눈으로 그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박 경위님, 무슨 일이세요? 그렇게 놀라셨다니…”

“은영 할머니가… 은영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박 경위의 말에 미루의 손에 들린 물컵이 흔들렸다. 도한은 미동도 없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은영 할머니요? 그분이라면 이 마을에서 가장 연세 많으시고, 인자하시기로 소문난 분이신데… 갑자기 왜요?”

미루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박 경위는 겨우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그게… 사망 원인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밀실이에요, 밀실! 할머니의 서재에서 발견되었는데,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창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었어요. 아무도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완벽한 밀실이었다구요!”

도한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언제나 한없이 고요하던 그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는 것을 미루는 여러 번 보아왔다. 그의 눈이 번뜩이는 순간, 세상의 모든 복잡한 퍼즐이 그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밀실 살인이라…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러 가야겠네요.”

도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루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한 씨, 조심해요. 은영 할머니 같은 분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도한은 미루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 경위를 따라 찻집을 나섰다.

***

은영 할머니의 집은 마을 어귀, 작은 언덕 위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래된 목조 가옥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지만, 정성스레 가꾼 정원 덕분에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지금은 집 전체에 무겁고 암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기입니다, 도한 씨. 서재는 저기 별채 건물이에요.”

박 경위는 집 본채 옆에 딸린 작은 별채를 가리켰다. 경계를 알리는 폴리스 라인 안쪽에서 다른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한은 별채로 향하는 길에 놓인 흙길을 유심히 살폈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바닥은 마른 낙엽들로 덮여 있었다. 특별한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별채 서재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안에서 나는 흙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인 묘한 향이 도한의 코를 스쳤다.

“할머니는 이 방에서 혼자 주무시곤 하셨어요. 서재이자 침실이었죠.”

안내하는 박 경위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당혹감이 묻어났다. 도한은 천천히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생각보다 어수선하지 않았다. 벽을 가득 채운 책장, 앤티크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방 한가운데 작은 러그 위에 은영 할머니가 고요히 누워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목덜미에는 작은 바늘 자국처럼 보이는 흔적이 선명했다.

“사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독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발견 당시 이미 숨을 거두신 상태였고요. 그런데 이 방의 구조가 문제입니다.”

박 경위가 방 안을 가리켰다. 도한은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할머니의 안경을 집어 들었다. 그제야 그의 시선이 방 전체를 훑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서재였다. 그러나 도한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단서가 되었다. 책장의 먼지 한 톨, 창문의 미세한 틈새, 그리고 문턱의 마모된 정도까지.

“이 문은 안에서 걸쇠로 걸려 있었어요. 창문도 안에서 잠금장치가 굳게 채워져 있었구요. 창살까지 박혀 있어서 외부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방문과 창문 어디에도 파손 흔적은 없었죠. 누가 어떻게 방에 들어와 할머니를 죽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단 말입니까?”

박 경위는 답답한 듯 벽을 짚었다. 도한은 대답 대신 문 가까이 다가섰다. 오래된 참나무로 만들어진 육중한 문은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문틀과 문 사이의 미세한 틈을 천천히 훑었다. 거의 보이지 않는, 아주 가는 실금 같은 틈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빗장으로 향했다. 투박한 철제 빗장은 안에서 단단히 걸려 있었다.

도한은 빗장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여보았다. 오래된 빗장은 약간 헐거웠고, 움직일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그는 문고리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문고리 아래쪽, 나무 부분에 아주 희미한 긁힘 자국이 있었다. 너무나 작아서 일반적인 시야로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였다.

“박 경위님, 할머니 주변에 낚싯줄 같은 가는 실이 있었습니까?”

도한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박 경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낚싯줄이요? 아니요, 그런 건 보지 못했습니다만… 할머니는 취미가 자수셨는데, 가끔 비단실 같은 건 쓰셨을 겁니다.”

“비단실이라… 그렇군요.”

도한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이미 퍼즐의 조각들을 맞춰나가고 있었다. 그는 서재 구석에 놓인 작은 화분에서 마른 대나무 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길이 10cm 정도의 가늘고 단단한 가지였다. 그는 그것을 손바닥 위에서 몇 번 굴려보더니, 이내 문으로 다가섰다.

“박 경위님, 이 문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도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박 경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말씀이신지…?”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왔다가, 할머니를 살해한 뒤, 다시 이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문이 안에서 잠긴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죠.”

도한은 손에 든 대나무 가지와 함께 주머니에서 가는 실타래를 꺼냈다. 그리고는 직접 시연을 시작했다.

“이 방의 빗장은 오래되어 약간 헐거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문과 문틀 사이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틈이 존재하죠. 범인은 이 방을 나갈 때, 먼저 빗장에 아주 가는 비단실을 묶었습니다.”

도한은 실을 빗장에 매듭지었다.

“그리고 문을 닫으면서 그 실의 한쪽 끝을 문틈 밖으로 빼냈겠죠. 문이 닫히면 빗장은 풀려 있을 겁니다. 그때 밖에서 이 실을 잡아당기면… 이렇게 빗장이 저절로 걸립니다.”

도한이 실을 당기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빗장이 안쪽으로 잠겼다. 박 경위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세상에…!”

“범인은 빗장이 걸리는 것을 확인한 후, 밖으로 뺀 실을 잘라냈을 겁니다. 그리고 문턱의 미세한 틈이나, 문 아래쪽 틈으로 실의 남은 부분을 빼내거나, 아예 끊어냈겠죠. 제가 발견한 문고리 아래의 작은 긁힘 자국은 아마 실이 빗장을 당기면서 생긴 흔적일 겁니다. 그리고 이 마른 대나무 가지는… 혹시 실이 틈에 끼거나, 빗장을 당기는 데 보조적인 힘이 필요했을 때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한은 모든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듯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모든 단어가 묵직하게 박 경위의 가슴에 와닿았다. 밀실의 완벽함은 한순간에 허상으로 바뀌었다.

“그럼… 할머니를 살해한 건 대체 누구입니까?”

박 경위의 질문에 도한은 씁쓸한 표정으로 할머니의 시신이 누워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할머니의 목덜미에 난 작은 자국, 그리고 독살… 아마 이 마을 사람 중 한 명일 겁니다. 할머니가 누구에게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가까운 사람. 그리고 비단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이제부터 박 경위님이 밝혀낼 차례입니다.”

도한의 설명에 박 경위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함께 새로운 책임감이 떠올랐다. 적어도 이제는 어디서부터 수사를 시작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이다.

도한은 다시 한번 할머니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퍼즐은 풀렸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남았다. 세상의 모든 사건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들이 얽히고설켜 이런 비극을 만든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별채를 나서며 도한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고 푸른 하늘에는 솜털 같은 구름 몇 조각이 유유히 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귓가에 미루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머리 쓰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쉬어줘야죠.’

그래, 이제는 고요한 샘물 찻집으로 돌아가 미루의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낼 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퍼즐을 풀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혼란 속에 평온을 되찾아줄 수는 있을 테니까. 오늘 밤, 은하수 마을의 별들은 조금 더 맑게 빛날 것이었다. 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진실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