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검은 제국: 첫 번째 비늘

삭풍이 휘몰아치는 겨울의 끝자락, 제국 수도의 변방은 언제나처럼 잿빛 공기로 질척였다. 높은 담벼락과 촘촘한 감시탑이 빽빽하게 늘어선 귀족 지구와는 달리, 평민들의 구역은 허물어져 가는 낡은 목조 건물과 비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그 미로의 한가운데, 햇빛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음습한 골목 끝에 강하가 서 있었다.

축축한 회색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콧구멍을 찌르는 퀴퀴한 냄새는 더 이상 역겹지도 않았다. 피와 썩어가는 살, 그리고 알 수 없는 향료가 뒤섞인, 이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강하는 낡은 모직 코트의 깃을 바싹 세우고, 시린 손으로 품속의 작은 천 조각을 매만졌다. 마른 약초 몇 가닥이 전부인, 미라의 열기를 잠시나마 식혀줄 수 있다는 희망의 조각이었다.

“미라….”

작게 읊조린 이름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강하의 여동생, 미라는 열세 살.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작고 여렸던 아이는 석 달 전부터 ‘검은 비늘’이라는 저주 같은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등에 거뭇한 반점이 생기는가 싶더니, 이제는 온몸에 흉측한 검은 비늘이 돋아나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비늘이 돋은 곳은 썩은 고기처럼 검붉게 변했고, 아이는 고열과 함께 알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제국의 의원들은 검은 비늘을 ‘하층민의 질병’이라 부르며 역병 취급했다. 그들은 감염을 막기 위해 환자들을 격리하고, 심하면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은 오직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의 병에는 값비싼 약재와 기적적인 술법을 아끼지 않았지만, 평민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만도 못했다.

강하의 집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낡은 여인숙의 가장 안쪽 방이었다. 삐걱이는 문을 열자, 시큼한 약초 냄새와 뜨거운 한숨이 그를 맞았다. 방 한가운데 놓인 초라한 침상에는 미라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누워 있었다. 작은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이마에 손을 대자 불덩이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오빠….”

미라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겨우 눈을 뜬 아이의 시선이 강하의 손에 들린 약초를 향했다. 기대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강하는 애써 미소 지으며 약초를 작은 그릇에 넣고 물을 부었다. 불을 피울 형편이 안 되어 찬물에 담그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는 마치 이것이 특효약인 양 정성스럽게 저었다.

“괜찮아, 미라. 오빠가 약 구해왔어. 이거 마시면 열 좀 내릴 거야.”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수십 번도 더 들은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오빠의 마음에라도 기대고 싶은 듯했다. 강하는 미라의 손을 잡았다. 검은 비늘이 돋아 딱딱해진 손등은 차갑고 거칠었다. 한때는 부드럽고 따뜻했던 작은 손이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문 열어라! 흑룡 제국 위생 감찰관이다! 문 열어!”

강하는 몸을 굳혔다. 위생 감찰관. 그 이름만으로도 평민들에게는 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검은 비늘이 창궐한 지역을 돌며 환자들을 찾아내고, 격리하고, 심하면 즉결 처분하는 권한까지 가진 자들.

“젠장….”

강하는 미라를 돌아봤다. 아이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강하는 서둘러 약초 그릇을 치우고, 미라의 몸을 이불로 최대한 가렸다. 희망 없는 행동이었지만, 잠시라도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쾅! 쾅! 쾅!

문이 부서져라 두드려졌다. 이내 육중한 발길질 소리와 함께 낡은 문이 삐걱거리며 안으로 쓰러졌다. 세 명의 사내가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검은 비늘 갑옷을 입고 허리춤에 칼을 찬 감찰관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차갑고 무정했다.

“누구냐?”

가장 앞에 선 사내가 굵은 목소리로 강하를 노려봤다. 그의 얼굴에는 흉터가 길게 나 있었고, 날카로운 눈매는 상대를 꿰뚫어 볼 듯했다.

“이… 이곳은 제 누이와 제가 사는 집입니다.” 강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누이? 흐음.” 감찰관의 시선이 침상 쪽으로 향했다. “병자가 있나 보군. 저 시큼한 냄새는 약초 냄새가 아니더냐?”

그는 망설임 없이 미라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강하가 그 앞을 막으려 했지만, 옆에 있던 다른 감찰관이 그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강하는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혔다.

“저리 비켜라, 미천한 것! 제국의 칙령을 거스르려 하느냐?”

가장 앞에 선 감찰관이 거침없이 이불을 걷어냈다. 미라의 작은 몸이 드러났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팔과 다리, 딱딱하게 굳어버린 피부. 아이는 고통에 신음하며 몸을 웅크렸다.

“젠장. 또 ‘검은 비늘’이군.” 감찰관이 혀를 찼다. “이 골목은 끝이 없구나. 제국의 신성한 땅을 더럽히는 역병자들.”

그는 역겨운 것을 보는 듯 미라를 내려다봤다. “열이 높군. 비늘도 깊어지고. 이 정도면 격리도 소용없겠어. 곧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강하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아닙니다!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약을 구하고 있습니다! 제발…!”

“약? 이 역병에는 약 따윈 없다.” 감찰관이 차갑게 일갈했다. “제국의 보건부에서 정한 바에 따라, 검은 비늘이 심화된 환자는… 소각 처분이다.”

“소각… 처분이라니요!” 강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제발! 제 하나뿐인 가족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는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하지만 감찰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시끄럽다! 징징거릴 시간에 나라에 충성이나 더 해라, 평민 놈아. 너희들의 고통은 곧 제국을 위한 희생이다. 이 역병으로 썩어가는 시체들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거름이 될 것이다. 끌어내라!”

두 명의 감찰관이 미라를 침상에서 들어 올렸다. 아이는 억눌린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강하는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 그들을 막으려 했다.

“손대지 마! 내 동생에게서 떨어져!”

그러나 감찰관들은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가볍게 강하를 제압하고는 발로 차 벽으로 밀쳐버렸다. 강하는 억센 팔에 붙잡혀 미라가 끌려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라는 강하를 향해 흐느끼며 손을 뻗었다.

“오빠…! 오빠…!”

“미라! 미라아아!”

강하의 절규가 좁은 방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미라의 작은 몸은 검은 비늘 갑옷의 감찰관들 사이에서 금세 사라져 버렸다. 문은 다시 닫혔고, 밖에서는 아이의 비명 소리와 함께 감찰관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강하는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몸을 웅크렸다. 그의 손이 닿았던 미라의 이불 조각에서 아직 남아있는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때, 발밑에서 무언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강하가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그것은 검은색 돌 조각이었다.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표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듯한, 마치 핏자국처럼 붉은 문양이었다.

문득, 어제 시장에서 들었던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제국은 저주받았다. 저 검은 비늘은 단순한 병이 아니여. 우리 피를 빨아먹는 흑룡의 저주라고. 허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자도 있지. 어둠 속에서 비늘을 벗겨내려는 자들이….”*

노인은 그때 이 돌 조각과 비슷한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은밀하게 대화하며 이 돌 조각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들은 새벽의 그림자 아래에서 춤춘다”고 속삭였다. 강하는 그때 그저 늙은이의 망상쯤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미라의 절규와 함께 사라진 희망은 강하의 마음속에 차가운 증오를 심었다. 제국은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가족의 목숨까지도.

강하는 손안의 검은 돌 조각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파고드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욱신거렸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심장 깊은 곳에서 차가운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절망에 젖어 있지 않았다. 증오와 함께 기이한 결의가 타올랐다. 어둠의 심장부를 꿰뚫으려는 그림자가 그의 눈동자 속에 희미하게 아로새겨졌다. 새벽의 그림자, 비늘을 벗겨내려는 자들. 미라의 마지막 눈빛이 강하의 뇌리에 박혔다. 그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찾아낼 거야. 반드시….”

강하는 중얼거렸다. 어금니를 꽉 깨물자, 턱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다. 낡은 방 안은 여전히 잿빛 공기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이제 미세한 파동이 일렁이고 있었다. 흑룡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첫 번째 비늘을 깨려는 작은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손안에 들린 검은 돌 조각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희미하게 고동치는 듯했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제국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거대한 악룡의 목을 조를 작고 날카로운 이빨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