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해질녘, 도시의 붉은 노을이 하늘을 채웠다. 낡은 전용차의 창밖으로 비치는 고층 건물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강하준은 찌뿌드드한 어깨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젠장, 또 ‘귀신 붙은 집’이라니.”

그가 중얼거렸다. 흥신소 ‘진실의 그림자’의 대표이자 유일한 탐정인 강하준은 요즘 이런 해괴한 의뢰만 들어오는 통에 진저리가 났다. 사라진 고양이 찾기나 불륜 현장 포착 같은 평범한 일 대신, 보이지 않는 존재의 짓이라 주장하는 기이한 사건들.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을 번뜩이며 하준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오늘, 그가 향하는 곳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아파트 단지는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은 신축 건물이었다. 회색빛 외벽은 첨단 기술의 집약체임을 자랑하듯 번쩍거렸다. 이런 곳에 ‘폴터가이스트’라니, 하준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분명 전선의 문제거나, 하수관에서 올라오는 소음 따위일 게 분명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3층에 도착하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복도는 적막했고,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은 차가운 빛을 반사했다. 2307호의 초인종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문틈으로 새어 나온 희미한 불빛 아래, 한 여자가 불안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강하준 탐정님 맞으세요?”

이유진. 의뢰인의 얼굴이었다. 사진보다 훨씬 초췌해 보였다. 그녀의 눈가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공포와 피로가 뒤섞인 얼굴이었다.

“네, 강하준입니다. 이 비상식적인 사건을 의뢰하신 이유진 씨 맞으시죠.”

하준의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에도 유진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오세요. 지금도… 아마 별반 다르지 않을 거예요.”

하준은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거실로 들어섰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였다. 온통 흰색과 회색으로 꾸며진 공간은 넓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한낮의 햇살이 잘 들어오는 베란다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하준은 거실 소파에 앉아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유진은 그 맞은편에 앉아 두 손을 꽉 잡았다.

“지난주부터였어요.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불이 깜빡거리고, 문이 저절로 열리거나 닫히는 정도… 오래된 아파트도 아닌데 왜 이러나 싶었죠.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서 전기 기사님도 오셨고, 문 점검도 다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대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다음엔 물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커피잔이 탁자 위에서 혼자 미끄러지거나, 침대 협탁 위에 있던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처음엔 제가 잘못 봤거나, 지진인가 했어요. 그런데 점점 심해지는 거예요.”

“심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어젯밤엔… 정말 무서웠어요.”

유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주방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층 찬장 문이 ‘쿵’ 하고 열리더니, 그 안에 있던 접시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어요. 와장창 소리와 함께 깨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죠. 그리고 곧바로 거실 스탠드 조명이 제멋대로 켜졌다 꺼졌다 하더니, 제 방 문이 ‘쾅’ 하고 닫혔어요. 마치… 마치 누군가가 저를 보면서 장난을 치는 것 같았어요.”

그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저 이 집에서 더는 못 살겠어요, 탐정님. 제발… 제발 이 상황이 뭔지 알아봐 주세요.”

하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접시가 쏟아져 내리고 문이 닫히는 것. 단순한 착각이나 노이로제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집 전체를 한번 둘러봐야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에서 주로 벌어졌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준을 안내했다. 먼저 주방. 며칠 전의 일인데도 아직 깨진 접시의 파편이 구석에 남아 있었다. 하준은 찬장 안을 꼼꼼히 살폈다. hinges (경첩)는 단단했고, 흔적도 없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나무 표면을 쓸어보았다. 매끄럽고 차가웠다.

그 다음은 거실. 유진이 스탠드 조명이 켜졌다 꺼졌다 했다는 곳을 확인했다. 하준은 조명 주변의 전선과 스위치를 꼼꼼히 살폈지만, 역시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벽이나 천장에 균열도 없었다.

안방과 작은방, 화장실까지. 하준은 전문가의 눈으로 집안 곳곳을 훑었다.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혔다는 방문 경첩도 살펴보고, 창문을 열어 바람의 흐름도 확인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니,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이상했다. 흔들림이나 소음을 유발할 만한 어떤 물리적인 요인도 찾아낼 수 없었다.

하준이 안방 침대에 놓인 베개를 정리하며 몸을 숙이는 순간이었다.

‘스으으윽.’

낮게 긁히는 듯한 소리가 그의 귀를 스쳤다. 하준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소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으나, 공간에 메아리치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진은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인지, 불안한 표정으로 하준을 응시하고 있었다.

“혹시… 뭔가 들리셨어요?”

하준이 물었다. 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철컥!’

갑자기 거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하준과 유진은 동시에 거실로 향했다. 거실 중앙에 놓인 커다란 유리 탁자 위에서, 방금 전까지 멀쩡히 놓여 있던 은색 볼펜이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볼펜은 두어 번 구르더니, 거실 한가운데서 멈췄다.

유진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은 공포에 질려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하준은 침착하게 바닥에 떨어진 볼펜을 주워 들었다. 그는 탁자 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미끄럽지도, 기울어지지도 않았다. 볼펜이 저절로 굴러떨어질 만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일이… 정말 자주 있나요?”

하준의 목소리에도 미세한 긴장감이 실렸다. 그의 눈동자는 빛나는 볼펜 끝을 응시했다.

“네, 네… 지금처럼요. 제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에요…”

유진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하준은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방금 볼펜이 떨어진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숙여 바닥을 살폈다. 볼펜이 떨어진 그 작은 공간, 그 주변의 마루 바닥에… 마치 뭔가가 긁고 지나간 듯한 희미한 흠집이 보였다.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흠집이었다.

“흠…”

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흠집을 만져보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것은 매끄러운 나무의 질감뿐이었다. 이건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물리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때, 유진의 뒤편에 놓인 작은 서랍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서랍장이 미세하게 앞으로 튀어나왔다. 서랍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아악!”

유진이 비명을 지르며 하준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준은 서랍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서랍은 조금 열린 채 멈춰 있었다.

“이건… 확실히 심상치 않군요.”

하준의 얼굴에도 드디어 당혹감과 함께 묘한 흥미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성적인 사고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직면할 때마다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지는 타입이었다.

“집 전체에 CCTV를 설치하고, 제가 며칠 머물면서 직접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울 것 같네요.”

유진은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그녀는 하준의 뒤에 바싹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하준은 그런 유진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이 아파트, 입주하시기 전에 전 세입자가 있었나요? 아니면, 주변에 공사 현장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제가 첫 입주자예요. 그리고 주변에도 조용한 편이고요.”

하준의 미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외부 요인도 아니고, 전 세입자의 흔적도 아니라면… 이 기이한 현상은 이 아파트, 아니, 이 방에서 ‘생겨났다’는 말인가?

그때였다. 창밖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번개가 ‘콰앙!’ 하고 건물 전체를 뒤흔들 듯 내리쳤다. 순식간에 아파트 전체의 전기가 나갔다. 거실은 암흑에 잠겼고, 유진의 작은 비명이 어둠 속에서 울렸다.

“정전인가…?”

하준이 중얼거렸다. 손전등을 찾으려던 그때, 어둠 속에서 차가운 기운이 그의 발끝부터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꺼져…’

아주 낮고, 쉰 목소리. 마치 수십 년을 갇혀 있던 원혼이 뱉어내는 듯한 섬뜩한 말. 하준은 몸을 굳혔다. 이건 유진이 들은 소음과는 다른, 너무나도 명확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유진의 비명과는 달리, 오직 하준의 귓속에서만 울린 듯했다.

전기가 다시 돌아왔을 때, 유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떨고 있었다. 하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등골에는 오싹한 한기가 감돌았다.

강하준은 평생을 이성과 논리만 믿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의 이성과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아파트 안을 훑었다. 분명, 이 공간 어딘가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탐탁지 않아하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