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지훈은 마른 침을 삼키며 반쯤 무너진 상점가의 입구를 응시했다. 해 질 녘, 붉게 물든 하늘은 지옥의 문처럼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벌써 며칠째 식량은 바닥이었고, 기침을 달고 사는 민준의 해골 같은 얼굴은 지훈의 심장을 죄어왔다.
“들어간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낡은 샷건은 언제나처럼 든든했지만, 그 무게만큼이나 어깨를 짓누르는 불안감은 숨길 수 없었다. 뒤따르던 김 반장은 뻑뻑한 무릎을 잡고 한숨을 쉬었다.
“여기, 그래도 한때는 번화가였는데… 젠장, 다 옛말이지.”
그의 말처럼, 대형 슈퍼마켓의 유리창은 산산조각 나 있었고, 녹슨 간판은 바람에 삐걱이며 귀를 찢는 소리를 냈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파편과 썩어가는 음식물, 그리고 이름 모를 잡동사니들이 뒤엉켜 악취를 풍겼다.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그들을 따라다녔다.
지훈은 손전등을 켜 주위를 비췄다.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빛이 먼지 쌓인 통로를 가로질렀다. 시체 썩는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역겨웠다.
“민준, 너무 떨어지지 마.”
서연이 민준에게 주의를 주자, 민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끄덕일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열병 때문인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계산대를 지나 통로로 진입했다. 냉장 코너는 이미 전기가 끊긴 지 오래라 문이 열려 있었고, 썩은 음식물들이 흘러나와 끈적한 바닥을 만들고 있었다. 온통 습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일단 식료품 코너부터… 통조림이라도 건져야 해.”
김 반장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발걸음을 조심했다. 바닥에 밟히는 과자 봉지 부스러기조차 크게 느껴졌다. 캔이나 병이 진열된 선반은 대부분 텅 비어 있거나, 바닥에 떨어져 깨져 있었다.
“이런… 여긴 이미 털린 것 같군.”
서연이 혀를 찼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희망을 찾으러 온 곳에서 더 큰 절망만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아직 희망이 있어.”
지훈은 구석진 곳, 다른 선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창고 문을 발견했다. 먼지가 잔뜩 쌓인 철제 문은 녹이 슬어 있었지만, 잠겨 있지는 않은 듯했다.
“저 안에는 뭐가 있을지도 몰라.”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시큼한 냄새와 함께 어두컴컴한 공간이 드러났다. 창고 안은 비교적 깨끗했다. 선반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아직 뜯지 않은 통조림 박스들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심지어 한쪽 구석에는 의약품 상자들도 보였다.
“대박… 지훈 씨, 대박이에요!”
민준이 신음을 섞어 작게 외쳤다.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나마 생기가 돌았다.
“서두르지 마. 이런 곳일수록 조심해야 해.”
김 반장이 경고했지만, 민준은 이미 통조림 상자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슈퍼마켓 입구 쪽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뭔가 끌리는 듯한 긁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지훈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젠장, 설마….”
서연이 샷건을 고쳐 쥐었다. 그 소리는 분명히 하나가 아니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 문 잠가!”
지훈은 급하게 외치며 민준을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슈퍼마켓 내부에서 우르르쾅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거대한 짐승들이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크아아악!”
소름 끼치는 괴성이 창고 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왔다. 일반적인 좀비의 신음과는 달랐다. 훨씬 더 빠르고, 맹렬하며, 지능적인 느낌이었다.
지훈은 김 반장과 함께 창고 문을 걸어 잠갔다. 철제 문은 낡았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버텨줄 수 있을 터였다. 안에서 쿵, 쿵, 쿵, 하고 문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런, 놈들이 늘었어… 이건 보통 좀비가 아니야.”
김 반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고 내부를 향했다. 폐쇄된 공간.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창고 뒤편에 비상문이라도 찾아봐!”
서연이 외치며 창고 구석을 뒤졌다. 하지만 온통 선반과 벽뿐이었다.
“젠장, 막다른 길이야…!”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철제 문이 안으로 푹 꺼졌다. 나무 판자와 못으로 겨우 버티고 있던 잠금장치가 부서진 것이다.
“물러서!”
지훈이 외치며 서연을 뒤로 끌어당겼다. 부서진 틈새로 손전등 빛이 새어 들어갔다. 그 순간, 괴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비정상적으로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놈. 온몸의 근육은 터질 듯 부풀어 있었고, 눈은 핏발이 서서 이글거렸다. 놈은 일반적인 좀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다. 마치 굶주린 맹수 같았다.
“젠장… ‘추격자’잖아!”
김 반장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이른바 ‘추격자’는 기존 좀비들보다 훨씬 빠르고,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며, 심지어 뛰어오를 수도 있는 변종이었다. 그들은 건물 안에서 마주치면 거의 살아서 도망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추격자가 부서진 문을 완전히 박살 내고 안으로 들어섰다. 놈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가장 약해 보이는 민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민준아, 피해!”
지훈이 소리쳤지만 늦었다. 민준은 놀라서 주저앉았고, 추격자의 거대한 몸이 그에게 덮쳐들었다. 콰직,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민준의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악!”
민준의 비명에 지훈의 눈이 뒤집혔다.
“이 개자식…!”
서연이 망설임 없이 샷건을 발사했다. 굉음과 함께 납탄이 추격자의 옆구리를 강타했지만, 놈은 잠시 휘청거릴 뿐, 오히려 더 맹렬하게 민준을 물어뜯으려 했다.
“안 돼!”
지훈은 선반에 있던 쇠파이프를 집어 들고 추격자의 머리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추격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민준의 목덜미를 노렸다.
“망할, 놈의 가죽은 갑옷인가!”
김 반장이 권총을 뽑아들었지만, 좁은 창고 안에서 발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칫하면 민준에게 오발탄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민준은 공포에 질려 발버둥 쳤지만, 추격자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서연아, 내가 유인할게! 민준이 데리고 뒤로 빠져!”
지훈이 쇠파이프를 다시 휘두르며 소리쳤다. 추격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놈은 민준을 잠시 놓아주고 지훈에게 달려들었다.
“지훈 씨!”
서연의 외침과 함께 샷건이 다시 불을 뿜었다. 이번에는 추격자의 등짝이었다. 놈은 짧은 고통의 신음과 함께 비틀거렸다. 그 틈을 타 서연은 민준의 팔을 붙잡고 창고 안쪽으로 끌고 갔다. 민준의 어깨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지훈은 쇠파이프를 방패 삼아 추격자의 공격을 막아냈다. 놈의 손톱이 쇠파이프를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막다른 곳에 몰린 짐승처럼, 지훈의 눈에도 광기가 서렸다.
“여기서 끝낼 순 없어… 절대!”
그는 이를 악물고, 선반 위에 놓여있던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붉은 소화기는 마치 한 줄기 희망처럼 보였다. 놈이 달려드는 순간, 지훈은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고 놈의 얼굴에 하얀 분말을 분사했다.
치이익-!
매캐한 분말이 뿜어져 나오자, 추격자는 잠시 눈을 가리며 멈칫했다. 놈은 맹렬히 울부짖으며 앞발로 얼굴을 긁어댔다.
“지금이야!”
지훈은 소리쳤고, 김 반장은 재빨리 민준의 상처를 확인했다. 깊게 베인 상처였지만, 다행히 목은 아니었다.
“뒤쪽 문 찾았어, 지훈 씨!”
서연이 창고 가장 안쪽 벽을 가리켰다. 벽 한쪽에 숨겨져 있던 작은 철문이 보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상 탈출구였다.
하지만 그 사이, 소화기 연기 속에서 추격자의 형체가 다시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놈은 여전히 지훈을 향해 달려들 태세였다.
“먼저 나가! 내가 시간을 벌게!”
지훈은 소리치며 다시 쇠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추격자는 시야를 방해받았는지 머리를 흔들었지만, 지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서연이 망설이자, 김 반장이 그녀의 어깨를 밀었다.
“빨리! 민준이 살려야 해!”
김 반장은 민준의 팔을 붙잡고 비상문으로 향했다. 서연은 지훈에게 마지막 눈빛을 던진 후, 민준과 김 반장을 따라 나섰다.
지훈은 혼자 남겨졌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놈은 분말 연기 속에서 다시 지훈을 향해 돌진했다. 지훈은 이를 악물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쾅! 쾅! 쾅!
비상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어져 갔다. 지훈은 혼자 남겨진 창고에서, 괴물과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 생존의 지옥에서, 다음 날의 해를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