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1장: 낡은 강의실, 수상한 돌멩이 그리고… 그녀?

“하아… 내 팔자가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나는 땀으로 축축한 앞머리를 대충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손에는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빗자루가 들려있었고, 코끝에는 오래된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이곳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구석진 곳, 아마 아무도 쓰지 않은 지 족히 십 년은 넘었을 법한 폐쇄된 강의실이었다. 동아리 방 청소를 핑계로 선배들에게 잔뜩 떠넘겨진 ‘미루고 미루다 잊혀진 공간’ 청소의 결과였다.

“이게 무슨 동아리 활동이라고…”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묵묵히 빗자루를 움직였다. 이 넓은 공간을 혼자 청소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눈부신 햇살은 내 처량한 신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저 햇살 아래서는 분명 최예린 선배도 빛나고 있겠지.

최예린 선배. 내 짝사랑 상대이자, 이 학교의 빛이자 소금. 나는 그녀를 떠올리며 잠시 넋을 놓았다. 긴 생머리, 사슴 같은 눈망울, 똑 부러지는 말투까지. 완벽함 그 자체인 선배가 어째서 나와 같은 우매한 인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단 말인가. 물론,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우리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 사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녀는 늘 과탑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고, 나는 간신히 턱걸이로 학점을 유지하는 평범하디평범한 공대생일 뿐이었다.

“정신 차려, 김민준. 청소나 해. 선배는 무슨.”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다시 빗자루질에 집중했다. 교탁을 지나 책상들을 밀어내다 보니, 한쪽 구석에 잔뜩 쌓여있던 낡은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마치 거대한 돌덩이처럼 변해버린 상자들. 이걸 다 치우려면 오늘 밤샘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에잇, 될 대로 돼라!”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가장 위에 있던 상자를 잡아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 속에서 오래된 책 몇 권이 쏟아져 내렸다. 두꺼운 표지는 빛바래고 곰팡이가 슬어 있었지만, 희미하게 남아있는 제목들에서는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했을 법한 흔적이 느껴졌다. 역사서, 고전문학…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문양들로 가득 찬 얇은 책 한 권.

나는 호기심에 그 해괴한 책을 집어 들었다. 표지는 가죽인지 종이인지 모를 질감이었고, 알 수 없는 상징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 책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작은 돌멩이였다.

내 손바닥에 쏙 들어올 만큼 자그마한 크기. 표면은 매끄럽게 닳아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어두운 돌 속으로 은은한 은빛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별자리를 새겨놓은 듯 복잡하면서도 규칙적인 무늬였다. 이상하게도, 그 문양들은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잠깐, 정말 잠깐. 착각이었을까.

나는 홀린 듯 그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손끝에 닿는 순간, 차가운 돌멩이에서 섬뜩할 만큼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찌릿, 하는 정전기 같은 느낌과 동시에 묘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이게 뭐야… 그냥 돌멩이인가?”

나는 돌멩이를 이리저리 돌려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돌멩이 같기도 하고, 동시에 뭔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딱히 버릴 이유도 없었고, 왠지 모르게 끌리는 마음에 나는 돌멩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뭐, 기념품이라도 되는 셈 치자.

그렇게 돌멩이는 내 낡은 청바지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내 평범하디평범한 일상이, 조금씩 ‘운수 좋은 날’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

강의실 청소를 끝내고 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땀은 비 오듯 흘렀지만, 왠지 모르게 개운한 기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힘든 노동 후에는 온몸이 쑤셨을 텐데, 오늘은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아, 목마르다.”

나는 자판기 코너로 향했다. 시원한 탄산음료 한 캔이면 오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라?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만져졌다. 나는 분명 지갑에 돈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지? 어제 편의점에서 쓰고 남은 건가? 기억에 없는데.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나는 동전을 자판기에 넣었다. 콰앙! 시원한 소리와 함께 캔이 떨어졌다. 나는 캔을 꺼내려다 문득 바닥을 보았다. 어라? 캔이 두 개였다. 내가 누른 음료수 캔과 똑같은 종류의 캔이 하나 더 굴러떨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자판기 오류인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캔 두 개를 들었다. 이런 행운은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운이 좋은가?

복도를 걸으며 시원한 탄산음료를 들이켰다. 달콤하고 상쾌한 맛이 온몸에 퍼졌다.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긴 생머리, 살랑거리는 치마 자락. 최예린 선배였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떡하지? 아는 척을 해야 하나? 그냥 지나칠까? 나 같은 게 말을 걸면 실례가 아닐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옆을 지나치려 했다.

그때였다.

“어머!”

선배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 파일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안에서 알록달록한 필기구와 중요해 보이는 종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아뿔싸!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떨어진 물건들을 주웠다.

“괜찮으세요, 선배?”

나는 허둥지둥 떨어진 펜을 집어 들며 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보통 이렇게 쏟아지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야 할 펜들이,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모아놓은 것처럼 내 손이 닿는 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서류들도 바람에 날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최예린 선배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김민준 씨? 고마워요. 제가 좀 칠칠치 못해서…”

선배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아름다웠다. 게다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느끼며 얼른 주워 모은 물건들을 선배에게 건넸다.

“아, 아닙니다! 제가 마침 지나가던 길이라서요. 별 말씀을요.”

나는 괜히 어색하게 웃었다.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물건들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손끝이 내 손에 닿았다. 찌릿! 아까 돌멩이를 주웠을 때와 비슷한 기분 좋은 정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살았네요. 다 흐트러졌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다, 다행입니다…”

나는 어색함에 발만 동동 굴렀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보내기는 아쉬운데, 그렇다고 뜬금없이 말을 이어갈 용기도 없었다.

“저기… 김민준 씨.”

그때 선배가 다시 나를 불렀다. 심장이 다시 쿵 떨어졌다.

“오늘 청소하느라 고생 많았죠? 얼굴에 먼지가 좀 묻었네요.”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내 뺨에 묻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쓱 닦아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부드러웠고,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완전히 백지가 되었다. 시간도 멈춘 것만 같았다. 뺨에 남아있는 온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다시 한번 고마워요.”

선배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녀의 잔향이 맴도는 것 같았다. 내 뺨에 닿았던 그녀의 손길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세상에… 방금 뭐였지?”

나는 황홀경에서 깨어나 비틀거렸다. 평소 같으면 선배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 텐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얼굴의 먼지까지 닦아주다니! 이건 기적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아까 쏟아졌던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던 것도 그렇고, 자판기에서 캔이 두 개 나온 것도 그렇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가우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돌멩이가 손끝에 닿았다.

‘설마… 이 돌멩이 때문인가?’

순간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이런 우연이 계속될 리 없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게 돌멩이를 주운 후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돌멩이를 꽉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였다.

“민준아! 김민준!”

저 멀리서 최예린 선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급하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뭔가를 들고 있었다.

“이거… 혹시 네 거니?”

선배가 내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내 낡은 청바지 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었던… 바로 그 수상한 돌멩이였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내가 떨어진 걸 몰랐던 건가? 아니면… 그녀가 주워서 내게 돌려주려고? 이 돌멩이, 정말 뭔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 손안에, 아니 내 주머니 안에 있던 이 고대의 마법 같은 돌멩이가, 이제 막 내 인생의 운명적인 장난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최예린 선배와 얽힌 장난을!

나는 어딘가 얼떨떨한 채로 선배의 손에 들린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돌멩이 속 은빛 문양이 한 번 더, 섬광처럼 반짝였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