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푸른 첨탑과 지하의 속삭임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푸른 첨탑 학원. 그 이름처럼 수십 개의 첨탑이 하늘을 꿰뚫을 듯 솟아 있었고, 거대한 대리석 벽면에는 고대 마법 문양이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스가르드 대륙 모든 마법사의 꿈이자 정점이었다. 제국 각지에서 모여든 영재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으며, 언젠가 세계를 바꿀 위대한 마법사가 되리라 꿈꾸었다.

하지만 카엘에게 푸른 첨탑 학원은 꿈보다는 숙제와 쪽잠이 더 많은 현실이었다.

“……마력의 순환은 본질적으로 에너지의 흐름이며, 이것은 곧 만물의 근원인 마나의 변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익히는 모든 주문은 이 기본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하지요. 오늘 배울 불꽃의 구슬 소환술은……”

교수 에를란트의 나긋나긋하면서도 권위 있는 목소리가 웅장한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그는 완벽하게 빗어 넘긴 은발과 깊은 눈매를 가진 중년의 마법사로, ‘이론의 대가’라는 별명답게 건조하면서도 빈틈없는 강의로 유명했다. 카엘은 팔짱을 낀 채 턱을 괴고 있었다. 겉으로는 진지하게 경청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그의 시선은 강의실 창밖으로 펼쳐진 아카데미의 정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원의 고목들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붉고 노란 잎들을 흩뿌리고 있었다. 저 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또다시 혹독한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고, 카엘은 여전히 학원 생활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특별히 뛰어난 학생도, 그렇다고 낙제할 만큼 뒤떨어진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어딘가 좀 특이한’ 학생이었다.

그때였다.

쿵- 하는 아주 미세한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강의실의 묵직한 마법석 바닥이 아주 잠깐, 마치 심장이 고동치듯 울렸다 사라졌다. 너무나 미미해서 옆자리의 리안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듯, 그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엘은 그 진동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놓칠 수 없었다. 지난 몇 주간, 특히 밤마다, 그는 비슷한 진동을 느끼곤 했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지하 어딘가에서 움직이는 듯한, 아니면 짓눌린 무언가가 간헐적으로 숨을 쉬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카엘, 집중하게.”

에를란트 교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꽂혔다. 카엘은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에를란트 교수는 특유의 차가운 눈으로 카엘을 응시하고 있었다.

“불꽃의 구슬 소환술의 첫 번째 핵심 주문은 무엇이지?”

“어…… 마나의 집중과, 아르카나 에너지의… 정렬입니다.” 카엘은 더듬거리며 답했다. 운 좋게도 그가 딴생각을 하던 찰나에도 교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나 보다.

교수는 만족스럽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사의 ‘의지’다. 어떤 마법이든, 마법사의 의지가 선행되어야만 그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특히 금지된 마법에 혹하여 그릇된 의지를 품는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교수의 시선이 잠시, 아주 짧게 카엘에게 머물렀다. 금지된 마법이라… 카엘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그 말이 방금 느낀 미세한 진동과 연결되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리안이 카엘의 어깨를 툭 쳤다.

“오늘도 딴생각 하다 걸렸냐? 이러다가는 졸업 시험 때 발목 잡힌다.”

리안은 카엘과는 정반대로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늘 웃는 얼굴에 공부도 곧잘 하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모범생이었다.

“글쎄… 그냥 좀 몸이 찌뿌둥해서.” 카엘은 대충 얼버무렸다. 차마 리안에게 “방금 바닥이 흔들리는 걸 못 느꼈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는 리안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을 알았다. 어차피 리안은 귀신같이 잘 자는 타입이라 밤중에 들리는 소리도 전혀 듣지 못했을 것이다.

“몸이 찌뿌둥하면 마나 수련을 더 해야지. 아, 맞다! 도서관에서 신비 마법 관련 고서를 찾았는데, 너도 관심 있을까 해서.” 리안이 손에 들고 있던 두꺼운 책을 흔들어 보였다. 낡은 가죽 표지에는 알아보기 힘든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카엘은 책을 흘긋 보았다. “신비 마법이라니? 또 이상한 전설 같은 거냐?”

“이상하긴! 이건 아르카나 계열의 심층 이론에 대한 책이야. 어때, 같이 보러 갈래? 저녁 먹고 도서관에서 만나자.”

리안은 카엘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다른 친구와 합류하여 복도를 걸어갔다. 카엘은 한숨을 쉬며 리안이 사라진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신비 마법이라… 푸른 첨탑 학원의 도서관은 대륙에서 가장 큰 지식의 보고였지만, 그만큼 ‘금지된 지식’ 또한 무수히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에를란트 교수가 언급한 ‘금지된 마법’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날 밤, 카엘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낮보다 더 선명하게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번에는 짧고 굵은 한 번의 울림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가 규칙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낮고 묵직한 ‘웅- 웅- 웅-‘ 하는 소리가 침대 프레임을 타고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환청일까? 아니면 지난 몇 주간의 기이한 경험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는 것일까?

카엘은 조용히 침대에서 벗어나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밟았다. 동실의 다른 학생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복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멀리서 희미하게 비상등만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웅- 웅- 웅-‘

소리는 더 가까워진 듯했다. 그리고 방향이 어딘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래쪽. 학원 건물의 가장 깊은 곳, 지하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푸른 첨탑 학원에는 학생들에게 엄격히 통제된 구역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검은 심장부’라 불리는 지하 깊은 곳은 모든 학생들의 접근이 금지된 곳이었다. 그곳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체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어떤 이들은 고대 마법 유물이 잠들어 있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학원의 설립자들이 감춰둔 금지된 존재가 갇혀 있다고 속삭였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 많았던 카엘은 늘 그런 금기에 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그 웅장한 소리는 단순한 소문이나 환상 너머에 있는, 살아있는 무언가의 존재를 확신하게 했다.

카엘은 복도 끝의 비상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철제 계단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래로, 더 아래로. 숨 막힐 듯한 어둠 속을 헤치며 그는 계속 내려갔다.

마침내 가장 아래층에 다다랐을 때, 낡고 녹슨 철문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문은 오래전에 봉인된 듯 마법으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웅- 웅- 하는 소리가 더욱 크고 선명하게 울리고 있었다.

카엘은 문에 귀를 바싹 대었다. 쇠와 돌의 냄새, 그리고 어렴풋이 느껴지는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리고 그때, 웅장한 소리 사이로, 마치 거대한 존재가 내쉬는 한숨처럼, 낮고 깊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 *찾아라… 잊혀진 것을…*

소리는 바람결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카엘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것은 명백히 ‘말’이었다. 그것도 누군가의 정신에 직접 울리는 듯한,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였다.

카엘은 숨을 헐떡이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가 지금껏 겪은 어떤 경험과도 달랐다. 이건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이곳 지하에는, 살아있는 무언가가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카엘은 공포와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푸른 첨탑 학원의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 그 문이, 자신 앞에서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