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어둠 속의 첫 비상

김현수는 오늘도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삐걱이는 손잡이를 잡은 채, 그는 창밖으로 흘러가는 어둑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29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의 29년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저 평범의 연속이었다. 아침 7시 기상, 9시 출근, 밤 10시 퇴근. 주말엔 밀린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가볍게 술 한 잔. 그게 그의 전부였다.

“후우…”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과연 이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더 높은 직위? 더 많은 돈? 아니면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갈 뿐인 무료한 미래? 어딘가 뻥 뚫린 듯한 공허함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보던, 거친 모험을 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는 이야기들은 그에게 있어 먼 나라의 동화에 불과했다.

‘나도 한 번쯤은… 뭔가 대단한 걸 해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의 귓가에는 지하철의 덜컹거리는 소음과 사람들의 잡담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직전, 현수는 몸을 일으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문 쪽으로 향했다. 잠시 뒤, 익숙한 역에 도착했고 그는 파도처럼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휩쓸려 지상으로 나왔다.

퇴근길의 도시는 늘 그렇듯 소란스러웠다. 매캐한 매연 냄새와 네온사인 불빛이 뒤엉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현수는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최대로 올린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이 모든 소음을 집어삼켰다. 현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십자 교차로 저편에서, 거대한 트럭 한 대가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것인지, 트럭은 제어가 불가능한 속도로 비틀거리며 그의 방향으로 돌진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 쿵, 쾅, 하는 끔찍한 파열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현수의 눈은 공포에 질려 크게 벌어졌다. 트럭의 거대한 차체가 순식간에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이미 다리는 굳어버린 뒤였다.

‘이대로… 끝인가?’

스쳐 지나가는 마지막 생각은, 후회와 함께 어린 시절 꿈꿔왔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번엔 평범하게 살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어진 것은, 온몸을 꿰뚫는 듯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찾아온 완전한 암흑이었다.

***

차가웠다.

아니, ‘차가움’이라는 감각 자체도 희미했다. 그저 모든 것이 검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찰나였는지 영겁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문득, 아주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점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따스함. 그리고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소리, 축축한 흙냄새…

‘내가… 살아있는 건가?’

눈을 뜨려 했지만, 시야는 여전히 암흑이었다. 다만, 전과는 다른 어둠이었다. 빛 한 점 없는 곳에서 느껴지는 습하고 눅진한 어둠. 그는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흐릿하게, 아주 희미하게 실루엣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동굴 내부였다. 그의 몸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일어나려 몸을 뒤척였지만, 평소와는 다른 어색한 감각이 밀려왔다. 팔을 짚어 바닥을 밀어내려 하자, 손바닥이 아닌 무언가 딱딱하고 거친 것이 닿았다.

‘뭐지?’

다시 몸을 일으키려 애쓰자, 이번엔 뭔가 길고 단단한 것이 바닥을 스치며 ‘사락’ 소리를 냈다. 뒤를 돌아보니, 꼬리…였다. 비늘로 덮인 굵고 긴 꼬리.

현수는 경악했다.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가득 차서, 자신이 대체 어떤 끔찍한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제 모습을 살폈다. 아니, 이제 ‘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뾰족하고 검은 발톱이 돋아난 세 개의 손가락. 그리고 손목에서부터 시작되어 어깨까지 이어지는, 거뭇한 비늘로 뒤덮인 얇은 날개… 같은 것이 있었다.

끔찍한 현실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키는 고작 어른의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몸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단단함은 이전에 없던 것이었다. 동굴 한편에 고인 물웅덩이가 보였다. 현수는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갔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그는 얼어붙었다.

작은 그림자 비룡이었다.

온몸은 짙은 검은색 비늘로 덮여 있었고, 등 뒤에는 아직은 작고 약해 보이는 검은 날개가 접혀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송곳니가 돋아난 주둥이. 깊이를 알 수 없는 황금빛 눈동자는 마치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분명 거대하고 웅장한 존재의 새끼였다.

‘내가… 괴물이 됐다고?’

인간 김현수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는 이제 이세계의 어딘가에 떨어진 이름 모를 그림자 비룡의 새끼였다. 경악과 절망, 그리고 알 수 없는 흥분이 뒤섞여 그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그는 평범한 삶을 벗어나고 싶다고 갈망했다. 그리고 신은, 어쩌면 그의 소원을 조금 비틀어 들어준 것일지도 몰랐다.

“크으… 캑!”

말을 하려 했지만, 목에서는 낮고 거친 울음소리만 터져 나왔다. 익숙하지 않은 발성과 혀의 감각.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동굴 벽에 몸을 기댔다. 멍하니 자신의 새로운 몸을 바라보았다. 검은 비늘에 반사되는 물웅덩이의 희미한 빛이 기묘한 광채를 뿜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새로운 몸은 생소했지만, 본능은 경고하고 있었다. 이곳은 안전하지 않다. 배가 고프다.

그는 동굴 안쪽을 두리번거렸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동굴 벽에 붙어 빛나는 푸른 이끼를 발견했다. 망설일 틈도 없이, 현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뜯어 먹었다. 쌉쌀하면서도 미약하게 단맛이 났다. 허기를 완전히 달래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속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며칠이 흘렀을까. 현수는 동굴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수정 조각과 이끼, 그리고 동굴 밖으로 나가 용기 있게 사냥한 작은 곤충들을 먹으며 연명했다. 아직 날개는 제대로 펴지도 못했고, 육체는 나약했지만, 그의 정신만은 인간 김현수 그대로였다.

어느 날, 그는 바깥세상이 궁금해졌다. 동굴 어귀까지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밖은 밤이었다. 머리 위로는 익숙하지 않은 거대한 달이 세 개나 떠 있었고, 수많은 별들이 검은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숲의 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생명이었다. 윙윙거리는 벌레 소리, 쉭쉭거리는 바람 소리, 알 수 없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끊임없이 들려왔다.

현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진 검은 숲이었다. 나무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었고, 그 그림자는 이 세계의 비밀을 간직한 듯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주 멀리, 숲 저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빛과 함께, 현수에게는 낯선,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따르릉, 따르릉…’

맑고 청량한, 종소리였다. 그리고 그 종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현수의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곳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가 속한 어둠의 숲과는 다른, 빛과 소리가 있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소리는,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을 강렬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인간이었던 자신의 잔재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미약한 날개를 파닥였다. 아직은 제대로 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저 빛을 향해 날아오르리라. 그의 새로운 삶의 첫 비상이었다.

현수는 숲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숨죽이며,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의 새로운 삶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홀로 깨어난 작은 그림자 비룡은, 아직 자신이 어떤 운명을 마주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