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천해호 비망록: 그림자의 속삭임

**승무원 일지 (함장 박선우)**

**기록 257년 11월 12일, 04:30 표준 시각. 천해호 함교.**

수면 아래 심해를 탐험하는 잠수정처럼, 천해호는 광활한 우주의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궤도 안정화 시스템의 나지막한 진동만이 이 고요한 공간의 유일한 생명 신호였다. 대원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시간, 나는 함장석에 앉아 홀로 모니터의 점멸을 응시했다. 수백 광년 떨어진 이 심우주에서, 우리는 인류가 처음으로 조우한 ‘그것’을 발견했다.

‘제논 유물 001’. 과학장 김서진은 그렇게 명명했다.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미지의 존재가 남긴 흔적. 그것은 단순히 무기물이 아니었다. 흡사 살아있는 것처럼, 정체 모를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한 기이한 물체였다.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는 이제 희미한 안개처럼 흩어지고, 그 자리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채우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대원들의 표정에서 미묘한 변화들이 감지되었다. 조종사 한지혁은 쉬는 시간마다 함선 벽에 새겨진 미세한 스크래치를 눈으로 쫓는 버릇이 생겼고, 기관장 이태호는 평소 쾌활했던 목소리 대신 웅얼거리는 낮은 어조로 혼잣말을 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과학장 김서진이었다. 그녀는 유물 근처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잠조차 제대로 청하지 않는 듯했다. 그 아름답고도 섬뜩한 물체에 매혹된 듯한 그녀의 눈빛은, 탐구자의 열정이라기보다는 광기에 가까워 보였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깊은 피로감, 꿈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속삭임들. 그것은 분명 우주 생활의 피로와 폐쇄된 공간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 감각들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우리의 정신을 조금씩 좀먹는 듯한 불길한 예감.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신 기록을 확인하자, 어제 오후 의무관 최윤아로부터 올라온 보고서가 눈에 들어왔다. 대원들의 수면 패턴 이상, 집중력 저하, 그리고 몇몇 대원들에게서 보고된 경미한 환청 증상. 나는 보고서를 내려놓고 조용히 의료실로 향했다.

**의료실, 기록 257년 11월 12일, 04:50 표준 시각.**

의료실의 차가운 공기는 언제나처럼 소독약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최윤아 의무관은 조용히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등은 잔뜩 웅크린 채였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한 피로가 역력했다.

“함장님, 이 시간에….”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가라앉아 있었다.

“윤아, 자네 보고서 봤네. 대원들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최윤아는 한숨을 쉬며 내게 한 파일을 열어 보였다. 여러 대원의 뇌파 그래프와 심박수 기록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모든 그래프에 불안정한 패턴이 확연했다.

“함장님, 이건 단순한 우주 스트레스나 폐쇄공포증 증상이 아닙니다. 너무… 비정상적이에요. 마치 무언가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요. 환청이나 망상 같은 증상까지 보입니다. 특히 서진 씨가….”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모니터 한구석에 작게 떠 있는 실시간 함선 내부 카메라 영상을 응시했다. 영상은 과학실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김서진은 여전히 유물 앞에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유물의 매끄러운 표면을 마치 살아있는 것을 어루만지듯 더듬고 있었다.

“김서진 과학장은 어제부터 잠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내내 저 유물에 매달려 있어요. 마치… 유물이 그녀를 부르는 것처럼요.”

최윤아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 유물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흡사 수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심장 같았다. 표면에는 미세한 혈관처럼 보이는 불규칙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느리게 움직이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함장님, 제 생각에… 저 유물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 에너지가 우리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요?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분 탓이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떨렸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알겠네. 우선 유물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대원들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야겠어.”

하지만 이미 늦은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내 심장을 옥죄어왔다.

**과학실, 기록 257년 11월 12일, 05:30 표준 시각.**

과학실 문이 미끄러지듯 열리자, 김서진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유물을 등지고 서 있었다. 평소 단정했던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실험복 소매는 접혀 있었다. 그녀는 마치 허공에 대고 속삭이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그건 내가 아니야….”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려 할 때, 김서진이 갑자기 고개를 획 돌렸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동공은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나를 꿰뚫는 듯했다.

“함장님… 왜 여기 오셨어요? 방해하지 마세요. 이제 곧…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딱딱하고 차가웠다. 평소의 활기 넘치고 호기심 가득한 김서진이 아니었다.

“서진 박사, 지금 자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네. 당분간 유물 연구는 중단하고 휴식을 취해야겠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김서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유물로 향했고, 그녀의 손은 마치 유물이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듯 느리게 유물을 향해 뻗어갔다.

“휴식…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이 유물이… 이 유물이 전부를 말해주는데….”

그녀의 손가락이 유물의 표면에 닿는 순간, 유물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그 빛은 김서진의 눈동자에 반사되어 섬뜩하게 빛났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아주 희미하고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그 소리는 내 뇌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듯했다. 마치 오랜 시간 잊고 지낸 기억의 파편들이 산산조각 나 부유하는 듯한 기분.

김서진은 유물을 어루만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슬픔이라기보다는, 해방감에 가까운 울음소리였다.

“찾았어요… 드디어….”

그녀는 유물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더 이상 예전의 김서진이 아니었다. 이질적이고 텅 비어 있는, 마치 다른 존재가 그녀의 몸을 빌려 나를 응시하는 듯한 차가운 시선이었다.

“함장님… 이 유물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함선 전체가 갑자기 크게 요동쳤다.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비상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내가 외치자, 통신기로 조종사 한지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함장님! 기관실에… 기관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태호 기관장이…!”

통신이 뚝 끊겼다. 나는 김서진을 응시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 기이한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유물에서 손을 떼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눈은 차갑게 빛났다.

“이제 시작이에요, 함장님. 우리의 진정한 여정은….”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저 정체 모를 유물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유물은 침묵을 깨고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함선은 다시 한번 격렬하게 흔들렸다. 우주선을 옥죄는 것은 단순한 고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의 숨통 조이기 같았다. 우리는, 이 심우주 한가운데서, 미지의 존재에 의해,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