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잃어버린 시간의 심연

서울 변두리, 재개발 구역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낡은 갈애사(渴愛寺). 겉보기엔 그저 스러져가는 폐사였지만, 내게는 ‘잃어버린 시간의 심연’으로 가는 입구였다. 김민준, 스물셋의 나는 흔한 역사학과 삼수생이었지만, 흔하지 않은 집념을 가진 자였다. 고대 문명의 흔적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한마디로 ‘오타쿠’였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 들린 낡은 탁본과 일기장은 갈애사 지하에 미지의 무언가가 잠들어 있다는 섬뜩한 암시를 보내고 있었다.

“흐읍… 냄새 봐라.”

부서진 석탑 뒤편, 잡초가 무성한 틈새에 숨겨진 좁은 통로를 발견했을 때, 내 심장은 이미 발치까지 떨어져 있었다. 습하고 퀴퀴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쇠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조심스럽게 몸을 웅크려 어둠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손전등 빛이 닿는 곳마다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인공적인 석벽은 내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좁고 길었던 통로가 끝나는 곳, 드디어 발밑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숨을 헙 들이켰다.

“…이게, 대체…”

거대한 지하 공간. 천장은 까마득했고, 사방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검은 현무암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벽면에는 기괴한 문양과 알 수 없는 도형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그 형상은 내가 알던 어떤 고대 문명의 양식과도 달랐다. 분명 오래되었지만,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디자인이었다. 마치 수천 년 전의 예술가가 미래의 기술로 건축을 시도한 듯한 느낌.

중앙에는 거대한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단은 검은 돌로 깎아 만든 듯했지만, 그 표면은 금속처럼 매끄럽고 차가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내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하나의 물체가 놓여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투명한 구체. 구체 안에서는 마치 은하수를 응축해 놓은 듯, 희미한 푸른빛과 보랏빛이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빛은 맥박처럼 주기적으로 강약을 반복하며, 공간 전체에 알 수 없는 저음을 흩뿌리고 있었다. 웅웅거리는 소리는 내 심장 박동과 묘하게 겹쳐지며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매혹감을 선사했다.

나는 홀린 듯 제단으로 다가갔다.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구체에 닿았다.

그 순간, 온몸의 세포가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 덮쳤다.

콰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구체가 맹렬한 빛을 뿜어냈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뒤섞여 공간을 뒤덮었고, 나는 시야가 완전히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몸은 마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듯 격렬하게 흔들렸고, 온몸의 감각이 뒤섞여 사라지는 듯했다. 의식이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감지 않으려 애썼다. 이 모든 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

“으읍… 머리야…”

축축한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몸을 겨우 일으켰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숨을 헙 들이켰다.

여전히 지하 유적 안이었다. 거대한 현무암 벽, 기괴한 문양, 그리고 중앙의 제단.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공기가 달랐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습하고 퀴퀴한 냄새 대신, 풀과 흙이 뒤섞인 상쾌하면서도 낯선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리고, 제단 위에 놓여 있던 투명한 구체는 더 이상 빛을 내지 않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돌멩이처럼 묵묵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뭐지… 환각이었나?”

몸을 완전히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통로에서 들어온 방향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반대편에는 미지의 출구가 있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빛이 새어 나오는 입구였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곳은 분명, 아까 내가 들어왔던 그 공간이 아니라고.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빛이 새어 나오는 출구로 향했다. 출구를 통과하자, 나는 또다시 넋을 잃었다.

“이, 이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고층 빌딩과 아스팔트로 뒤덮인 서울의 모습이 아니었다. 푸른 하늘 아래, 거대한 운하가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운하 위로는 돛대가 여러 개 달린 거대한 목선들이 유유히 떠다니고, 강변을 따라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형태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붕은 화려한 비늘 모양의 기와로 덮여 있었고, 벽면에는 황금빛과 은빛이 번뜩이는 장식이 돋보였다. 거리에는 내가 아는 어떤 시대의 복식과도 다른, 화려하고 이국적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색은 다양했고, 이목구비는 뚜렷했으며, 머리카락 색깔조차 검은색 외에 붉은색, 푸른색, 심지어 은색까지 존재했다.

나는 거대한 미궁에 빠진 기분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현실적이었다. 내 눈앞의 이 모든 광경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설마… 설마 내가…!”

시간여행. 타임 슬립. 그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잃어버린 문명의 유적은 단순히 유적지가 아니었다. 시공간을 잇는 통로였던 것이다.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거기, 이방인. 길을 잃으신 듯 보이는데.”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에는 늘씬한 키에 푸른색 비단 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에는 은빛 장신구가 꽂혀 있었고, 깊은 푸른색 눈동자는 신비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마치 보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언어는 내가 알던 한국어가 분명했지만, 어딘가 고풍스럽고 독특한 억양이 섞여 있었다. 마치 수백 년 전의 사극 대사를 듣는 듯한 느낌.

“이곳은 천해국(天海國)의 수도, 아틀란티스입니다. 대체 어디에서 오신 분이기에 이런 허름한 차림으로…?”

천해국? 아틀란티스? 내가 알던 역사에는 그런 나라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가 내 차림새를 ‘허름하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나는 이곳 사람들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운동화에 청바지, 후드티 차림의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로 보일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응시하며,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혼란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뒤섞인 채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의 심연, 그 끝없는 미궁 속으로 나는 발을 내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