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듯한 거대한 경기장은 낮게 깔린 구름 속에서도 위용을 뽐냈다. 천하 각지에서 모여든 무림 고수들의 기운이 대기 중에 팽팽하게 흘렀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수많은 관중의 열기가 북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타올랐다. ‘천하제일 무술 대회’, 그 이름만으로도 모든 무인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수십 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 한 대축제였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단순한 명예 싸움이 아니었다. 대회 시작 전부터 퍼진 흉흉한 소문들, 그리고 이 대회의 숨겨진 목적은 모든 참가자들의 눈빛에 결연함과 동시에 깊은 불안감을 드리웠다.

운한은 경기장 가장자리에 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 스무 살 초반의 앳된 얼굴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맑으면서도 예리하여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그저 변방의 작은 문파에서 온 햇병아리 무사일 뿐이었으나, 그의 내공은 이미 수많은 노고수들을 능가할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는 주먹을 쥔 채, 경기장 중앙을 응시했다. 오늘 벌어질 첫 시합, 그리고 그 시합에서 벌어질 ‘무언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첫 번째 시합은, 모두의 예상대로 불꽃 튀는 대결이었다. 이름난 사천 당문의 젊은 고수, ‘비검’ 당소연과 북해빙궁의 ‘한빙검’ 암투명사가 맞붙었다. 당문의 독문 무학인 비연십삼보와 북해빙궁의 한빙진기가 격렬하게 부딪히며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당소연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검은 날카로운 바람을 갈랐고, 암투명사의 얼음 칼은 서늘한 냉기로 공간을 얼어붙게 했다. 막상막하의 접전,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순간, 북해빙궁의 한빙검 암투명사가 갑자기 휘청였다. 그의 날카롭던 눈빛이 흐려지고, 손에 든 얼음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마치 누군가 그의 생명력을 순식간에 빨아들인 듯, 그의 몸은 급격히 쇠약해져갔다. “크흐읍…!” 핏물 섞인 기침과 함께 그는 무릎을 꿇었다. 당소연은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지만, 곧 심판이 다가와 북해빙궁의 패배를 선언했다.

운한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단순히 경기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빙궁 암투명사가 휘청이던 그 짧은 순간, 일반인들은 알아채지 못할 미세한 기운의 흐름을 감지했다. 마치 생명력이 강제로 뽑혀나가는 듯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단순한 기공 역류가 아니다. 누군가 개입했다.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많은 고수들의 눈을 피해… 아니, 어쩌면 모두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건장한 체구의 무인, 강무가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쯧쯧, 역시 빙궁 놈들은 몸이 약해. 저 정도에 쓰러지다니. 비검 당소연의 기세에 눌린 게 분명하다.”
운한은 강무를 힐끗 보았다. 강무는 정파의 명문인 금강문에 속한 젊은 고수로, 순진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을 지녔지만,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몸이 약한 게 아닙니다.” 운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그의 기는 외부의 힘에 의해 순간적으로 교란되었습니다. 마치… 생명력이 순간적으로 응축되어 다른 곳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강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응축되어 이동?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멀쩡히 시합하던 사람이 외부의 힘에 당했다고? 그럼 경기장 전체에 진이라도 설치되어 있단 말이냐?”
“아직은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심상치 않습니다.” 운한은 다시 경기장을 보았다. 경기장 바닥, 북해빙궁 암투명사가 쓰러졌던 그 자리에 미세하게 남아있는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그의 내공이 만들어낸 예민한 육감은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여전히 감지하고 있었다.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되었고, 세 번째 시합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무림 십대 문파 중 하나인 곤륜파의 장로가 승리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내공이 역류하여 쓰러졌다. 경기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기묘한 일이었다. 관중석에서는 웅성거림이 커졌고, 일부 고수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회 운영진은 황급히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단순한 기공 역류이니 염려 마십시오! 워낙 고수들의 대결이라 기가 충돌하며 벌어진 일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운한은 확신했다. ‘이건 계획된 일이다. 하지만 누구의 짓이지? 그리고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그는 경기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거대한 경기장은 천여 명의 무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기를 운용해도 버틸 수 있도록 특수하게 제작되었다. 그 안에 감춰진 무언가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아니면 관중석 어딘가에서?
그의 시선이 문득, 경기장 한 켠에 마련된 귀빈석에 닿았다. 그곳에는 각 문파의 수뇌부와 천하를 움직이는 거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의 얼굴에는 불안감 대신,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특히, 마교의 교주, 검은 장포로 얼굴을 가린 채 고요히 앉아 있는 그에게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경기 진행은 잠시 중단되었고, 어수선한 틈을 타 운한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강무가 그를 불렀지만, 운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경기장 뒤편, 무림 고수들이 대기하는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일반 관중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었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방금 벌어진 일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공 역류가 저렇게 쉽게 발생할 리가 없는데!”
“혹시 독인가? 독이라고 하기엔 너무 깔끔하게 쓰러졌어. 아무 흔적도 없지 않은가!”
운한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지나쳤다. 그의 목표는 쓰러진 빙궁 암투명사였다. 그는 이미 의무대에 실려갔을 터. 어쩌면 그에게서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복도를 빠르게 가로지를 때였다. 인기척 없는 어두운 복도 끝에서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무당파 장로 차례입니다.”
“…서두를 필요 없어. 그들의 혼란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목표는 더욱 가까워질 테니.”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운한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 중 하나는… 아까 귀빈석에서 느꼈던 그 싸늘한 기운의 주인과 닮아 있었다.
운한은 벽에 바싹 몸을 붙였다. 그림자에 숨어 소리의 근원지를 엿보았다. 어둠 속에서 두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한 명은 낯선 복면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운한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의 눈에 비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번 대회의 총책임자이자 정파의 거목 중 하나인 ‘천검문의 문주’, 철검왕 이신이었다.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젠장… 천하제일 무술 대회가… 처음부터 거대한 함정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