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천하제일 무술대회, 그 이름이 주는 웅장함과는 달리 몽환령(夢幻嶺)에 드리운 그림자는 지독히도 음침했다. 비현실적으로 깎아지른 기암괴석들, 늘 안개에 잠겨있는 비경은 분명 신선들이 노닐 법한 곳이었으나, 오늘의 공기는 마치 심해의 압력처럼 무겁게 짓눌러왔다. 이곳은 무림인들이 수련의 성지로 여기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다른 의미로, 아니 어쩌면 본래의 의미로 ‘성지’가 되어 있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다는 비장한 구호 아래, 각 문파의 고수들이 모여들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오직 깊은 불안만이 서려 있었다.

류하(柳河)는 경연장 가장자리에 서서 고요히 눈을 감았다. 몽환령의 싸늘한 바람이 그의 흑포 자락을 흔들었지만, 그의 내면은 흔들림 없었다. 지난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천하제일 무술대회. 그 명예는 언제나 뜨거웠으나, 올해는 달랐다. 무림맹주와 각 문파의 장로들이 쉬쉬하며 전한 바에 따르면, 이번 대회의 승자는 단순한 ‘천하제일인’이 아니었다. 그는 ‘봉인자(封印者)’가 되어, 아득한 심연에서 깨어나려는 ‘그것’과 맞서야 했다.

눈을 뜨자, 대회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바위들을 깎아 만든 원형 경기장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위압감을 풍겼다. 경기장 중앙에는 고대 문자처럼 보이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을 볼 때마다 류하는 알 수 없는 현기증과 함께 귓가에 맴도는 불협화음을 느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데 섞여 엉망이 된 듯한,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다음 대결! 천궁문(天宮門) 은월(銀月) 대… 무영각(武影閣) 류하(柳河)!”

호명 소리가 몽환령 전체에 울려 퍼졌다. 류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그의 상대인 은월은 천궁문의 차기 문주로 불리는 천재였다. 그녀의 무공은 물 흐르듯 유려하고 달빛처럼 신비로웠지만, 류하는 그녀의 움직임에서 종종 섬뜩한 기시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듯한, 어딘가 비틀리고 왜곡된 아름다움.

경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은월은 이미 경기장 중앙에 서 있었다. 은백색 도포 자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새하얀 얼굴은 차가운 달빛을 머금은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이 깜빡였다.

“무영각 류하. 명성대로군.” 은월의 목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맑았지만, 그 안에 온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류하는 가볍게 목례했다. “천궁문 은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리자, 경기장의 분위기는 더욱 팽팽해졌다.
류하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가르며 선제공격에 나섰다. 그의 무영신법은 그림자처럼 민첩하고 예측 불가능했다. 하지만 은월은 류하의 움직임을 꿰뚫어 본 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껴나가며 반격했다.

“달그림자 흩뿌리기!”

은월이 손을 휘두르자, 마치 수십 개의 달 그림자가 류하를 향해 쇄도하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잔상이 아니었다. 류하의 검이 그림자를 꿰뚫고 지나갈 때마다, 미약한 저항감과 함께 섬뜩한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형체가 없는 무언가를 베는 듯한 기분.

‘이것은… 평범한 환영술이 아니다.’

류하는 직감했다. 은월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유려하고 자연스러웠지만, 동시에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녀의 몸놀림은 인체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듯했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그녀는 마치 공간 자체를 접는 것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전혀 다른 위치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빠른 것이 아니라, 존재의 위치를 ‘조작’하는 것 같았다.

“열파천공검(裂破天空劍)!”

류하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모든 환영과 기만을 꿰뚫고 오직 진실만을 베어내는 그의 필살기였다. 검기가 은월의 본체를 향해 쇄도하는 순간, 은월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속삭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몽영무(夢影舞)….”

그 순간, 경기장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흐려지고, 류하의 눈에는 은월의 모습이 수십, 수백 개로 분열되어 보였다. 그 분열된 그림자들은 단순한 잔상이 아니었다. 각각의 그림자에서 독립적인 움직임과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기이한 것은, 그 그림자들이 드리우는 그림자였다. 그것은 빛의 반대로 생겨나는 검은 영역이 아니라, 마치 어둠 자체가 형체를 지닌 것처럼 꿈틀거렸다.

푸른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은월의 수많은 그림자들을 꿰뚫었다. 하지만 단 하나도 제대로 된 타격감은 없었다. 류하는 소름 끼치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의 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그림자들은 너무도 선명했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라지지 않고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 그것은 마치 현실의 법칙이 잠시 정지된 듯한 현상이었다.

“크윽!”

류하의 머릿속에 갑자기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왔다. 귓가에는 아까 느꼈던 불협화음이 더욱 선명하게 울렸다. 눈앞의 경기장이 뒤틀리고, 관중들의 형상이 흐릿하게 번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아득한 우주의 심연, 셀 수 없이 많은 눈동자들이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끔찍한 환영을 보았다. 거대한 도시, 그러나 인간의 문명과는 전혀 다른 기괴한 건축물들이 그의 시야를 채웠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순간, 은월의 진짜 몸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느려.”

은월의 손바닥이 류하의 옆구리를 스쳤다. 엄청난 고통보다는, 전기에 감전된 듯한 마비감과 함께 싸늘한 냉기가 몸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류하는 몇 걸음 뒤로 휘청였다. 그의 눈에 비친 은월의 눈동자는 더 이상 차가운 달빛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광대한,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공허가 번뜩였다. 아주 찰나였지만, 류하는 그 눈동자에서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존재’의 시선을 보았다.

경기장 바깥, 관중석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던 남궁진인(南宮眞人)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눈은 은월의 움직임, 특히 그녀의 그림자들이 남기는 비정상적인 잔상을 쫓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벌써인가… 심연의 기운이 이렇게 깊이… 아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단 말인가.”

남궁진인의 중얼거림은 바람에 흩어졌지만,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는 수백 년 전의 고문헌에서 읽었던 끔찍한 기록들을 떠올렸다. ‘환영에 실려 오는 진실’, ‘꿈속에서 피어나는 현실의 균열’….

경기장 중앙, 류하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몸 안에 침투한 냉기가 온몸의 기혈을 얼어붙게 하려는 듯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내공을 끌어올려 냉기를 몰아냈다. 그러나 그의 시야는 여전히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은월의 존재 자체가 그의 이성을 갉아먹는 듯한 기분이었다.

은월은 류하를 스치고 지나간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경기장 중앙에 섰다. 그러나 그녀의 새하얀 뺨을 타고 한 줄기 검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눈물처럼 보였지만, 잉크처럼 검고 농밀한 액체였다. 그 검은 물방울은 뺨을 타고 흐르다, 그녀의 턱 끝에 이르러서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증발해버렸다. 그 찰나의 현상을 본 사람은 아마 류하뿐일 것이다.

은월의 눈동자가 다시 류하를 향했다. 그 눈에는 다시 차가운 달빛이 돌아와 있었지만, 류하는 방금 본 공허를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대결은 단순히 ‘무공’을 겨루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무공은 이미 ‘그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이…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이란 말인가.”

류하의 입에서 터져 나올 뻔한 외침은 꾹 눌러 삼켜졌다. 싸늘한 침묵만이 몽환령의 불안한 정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몽환령은 더 이상 무인들의 성지가 아니었다. 이곳은 심연의 문이 열리기 직전의, 위태로운 경계선이었다. 그리고 류하는 그 경계에 서 있었다. 그의 검은, 이 세계를 지킬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지킬 수 있는’ 것이기는 한 걸까? 알 수 없는 공포가 그의 심장을 옥죄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