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 별의 부름
해질녘의 노을이 낡은 교실 창문을 비스듬히 비추었다. 칠판 위로 번지는 주황색 빛은 분필 가루처럼 뿌옇게 가라앉아 하루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열여덟 살의 서하에게는 늘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 책상에 필기하는 소리, 지루한 수업 내용. 이 모든 것이 마치 스쳐가는 바람처럼 그녀를 에워쌌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속은 언제나 아주 오래된 이야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설 같은 것에 머물러 있었다.
“서하야, 얼른 안 가? 오늘 보충 없다며?”
옆자리 수아가 가방을 메며 재촉했다. 서하는 “응, 먼저 가” 하고 나지막이 대답하며, 방금 읽다 만 역사 교과서의 구석을 멍하니 응시했다. 교과서의 한쪽에는 오래전 멸망한 고대 왕국의 유적 사진이 실려 있었다. 흙먼지로 뒤덮인 석상과 폐허가 된 기둥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저 시험 범위의 한 부분으로 치부했지만, 서하에게는 늘 알 수 없는 끌림이었다. 저 아래, 저 땅속 깊이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잠들어 있을까.
집으로 가는 길은 낡은 상점가와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이어졌다. 서하는 굳이 멀리 돌아 옛 골목길을 택했다. 이따금씩 할머니의 낡은 골동품 가게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곳에는 겉보기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 그러나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는 유물들이 가득했다. 오늘따라 가게 문이 활짝 열려 있고, 할머니는 허리를 숙여 진열대 위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서하는 가방을 내려놓고 익숙하게 걸레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자 뽀얗게 쌓였던 시간의 먼지가 걷히고, 빛바랜 자기와 낡은 목공예품들이 제 색깔을 드러냈다. 한참을 그렇게 구석구석 쓸고 닦는데, 서하의 눈길이 가장 구석진 진열대, 다른 물건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곳에 닿았다. 그곳에는 작고 낡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빛을 잃은 보석들이나 깨진 도자기 조각들 대신, 흙이 잔뜩 묻은 듯한 돌멩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할머니, 이건 뭐예요?”
“음? 아아, 그거. 옛날에 증조할아버지께서 산에서 주워 오신 돌멩이란다. 아무리 닦아도 흙이 씻기지 않아서 그냥 저렇게 넣어뒀지. 별 쓸모없는 거란다.”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서하는 왠지 모르게 그 돌멩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손으로 집어 들자 차가운 흙의 감촉이 먼저 느껴졌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회색 돌멩이였지만, 어쩐지 미묘한 무게감과 함께 아주 희미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는 그 돌멩이를 흙먼지를 닦아내듯 옷소매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돌멩이의 표면을 덮고 있던 흙빛 막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그 아래에서 투명하고 영롱한, 밤하늘의 별을 응축해 놓은 듯한 푸른빛이 번져 나왔다. 손안에서 돌멩이는 어느새 손목에 찰 수 있는 팬던트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어…?”
서하는 할머니에게 보여주려 고개를 들었지만, 할머니는 이미 가게 밖으로 손님을 배웅하러 나간 뒤였다. 팬던트의 푸른빛은 희미하게 반짝이며 서하의 손바닥 위에서 맥박치듯 흔들렸다. 왠지 모를 강렬한 이끌림에, 서하는 조심스럽게 팬던트를 목에 걸었다. 차가운 금속과 보석의 감촉 대신,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날 밤, 서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목에 걸린 팬던트는 어둠 속에서 아주 미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희미한 진동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결국 잠자리에 드는 것을 포기하고, 서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 반짝였다.
그때였다. 팬던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갑자기 강렬해지며 방 안을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놀란 서하가 손으로 팬던트를 움켜쥐자, 빛은 마치 생명체처럼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빛이 뭉쳐지며, 서하의 눈앞에 작은 형체가 나타났다.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작은 존재였다. 투명한 날개를 파닥이며 공중에 떠올라 서하를 마주 보았다.
*“드디어, 주인이여.”*
귓가를 스치는 듯한 나직한 목소리. 동시에 서하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말이 울려 퍼졌다.
“너… 너 누구야?” 서하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저는 반디. 이 세계의 균형을 수호하는 고대 존재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팬던트가 선택한 자. 별의 수호자입니다.”
반디는 작은 몸으로 빙글 돌며 설명했다. 그 말은 현실이라기엔 너무나 동화 같았고,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빛나는 존재와 목에 걸린 팬던트의 따뜻한 온기가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별의… 수호자? 난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더 이상 평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봉인되어 있던 고대의 기운이 이 도시의 지하 깊은 곳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계에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반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밖에서 우르릉거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땅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 서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도시의 저편, 오래된 중앙 공원 쪽에서 거대한 푸른빛 기둥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거대한 기둥은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저게… 뭐야?”
“그것이 고대의 힘입니다. 서하, 지금입니다. 팬던트의 힘을 받아들이세요. 당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힘을 깨우세요!”
반디의 외침과 함께 팬던트가 강렬하게 빛을 내뿜었다. 서하는 본능적으로 팬던트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따뜻한 빛이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혈관마다 새로운 힘이 흐르는 듯했다. 그녀의 눈앞에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몸이 가벼워졌다. 눈을 뜨자, 익숙했던 잠옷 대신 반짝이는 전투복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가볍고 유연하며, 마치 자신의 피부처럼 느껴졌다. 손끝에서는 푸른빛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거울을 보니, 놀랍도록 변화한 자신의 모습이 서 있었다. 평범했던 검은 머리카락은 밤하늘의 푸른빛을 머금고 반짝였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 힘에 서하는 당혹감과 함께 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서하가 아니었다.
“이 힘으로 고대의 유적을 찾아야 합니다. 저 빛이 가리키는 곳, 중앙 공원 지하 깊은 곳에 그들의 비밀이 잠들어 있습니다.”
반디가 외치자, 서하는 고개를 들어 창밖의 푸른빛 기둥을 다시 바라보았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두려움과 망설임이 없진 않았지만, 그녀의 발은 이미 창문을 향하고 있었다. 낯선 힘, 낯선 운명.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이것이 그녀가 늘 갈망했던, 평범함 너머의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서하는 창문을 열고 밤하늘로 몸을 날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의 뺨을 스쳤지만, 몸속의 뜨거운 에너지는 추위를 잊게 했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처럼 보였다. 중앙 공원에 도착하자, 거대한 빛의 기둥이 뿜어져 나오던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공원의 가장 후미진 곳, 아무도 찾지 않는 낡은 석상과 덤불로 뒤덮인 작은 언덕이었다.
지상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하의 새로운 시야에는 빛의 기둥이 시작되는 지점에 거대한 에너지의 균열이 명확하게 보였다. 반디가 그 균열을 향해 날아갔고, 서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 균열에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땅이 갈라지며 굉음과 함께 흙과 돌들이 솟구쳐 올랐다. 거대한 석상이 뒤로 밀려나고, 그 아래에서 어둠으로 가득 찬 거대한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먼지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습한 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깊고 깊은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고대의 기운이 서하를 유혹했다. 이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평범한 고등학생 서하는 사라지고, 별의 수호자가 된 그녀만이 이 어둠의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어둠 속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잊혀진 고대 지하 유적의 비밀이, 바로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