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둑한 밤이었다. 낡은 고택의 그림자가 달빛 아래 길게 늘어져 있었다. 빗방울이 후드득 창문을 때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경찰 통제선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저택은 마치 수십 년 전의 시간을 그대로 박제해 놓은 듯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불가능한 죽음이 발생했다.

“류 박사님, 오셨군요.”

두꺼운 비옷을 입은 김민준 경감이 지혁을 보자마자 안도와 초조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지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이미 저택의 가장 어두운 창문을 향해 있었다. 마치 그 안의 비밀을 꿰뚫어 보려는 듯 날카로웠다.

“상황은 들으셨겠지만… 골치 아픕니다. 희생자는 백정호 회장입니다. 밀실 살인입니다.”

김 경감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절망이 섞여 있었다. 지혁은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꿉꿉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목재의 향이 뒤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가 울렸다. 현관에서부터 현장인 서재까지 이어지는 길은 온통 형광등 불빛과 경찰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문제의 서재는 저택의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두꺼운 참나무 문에는 ‘출입 금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문 앞에는 과학수사팀 요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문은요?” 지혁이 묻자 김 경감이 한숨을 쉬었다.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빗장도 걸려 있었고요.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고, 창살까지 박혀 있습니다. 환풍구도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크기이고요. 벽난로 굴뚝은 수십 년 전에 막혔다고 합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지혁은 말없이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물론 장갑을 낀 손이었다. 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복잡한 기계장치를 해독하려는 듯, 그의 안에서 무언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묵묵히 서 있는 천재 탐정의 모습이었지만, 지혁의 정신은 이미 시간의 틈새를 오가고 있었다.

“사체는요?”

“안쪽 책상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흉기는… 고급 레터 오프너더군요. 심장에 정확히 박혀 있었습니다.”

지혁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종이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비릿하게 풍겼다. 서재는 그의 소문대로 온갖 희귀한 고서와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벽을 따라 천장까지 닿는 높은 책장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고, 중앙에는 육중한 나무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책상에, 백정호 회장이 쓰러져 있었다. 잿빛 얼굴은 공포에 질린 채 굳어 있었고, 희고 얇은 와이셔츠 위로 붉은 피가 거대한 꽃처럼 번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잉크병과 펜촉, 그리고 다 써가는 양피지 두루마리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금박 장식의 레터 오프너가 섬뜩하게 박혀 있었다.

“정말, 어떻게 들어왔고, 어떻게 나갔을까요….” 김 경감이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사건에 대한 좌절감이 역력했다.

지혁은 말없이 서재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의 눈은 살아있는 스캐너처럼 모든 것을 흡수했다. 책장의 먼지 쌓인 틈새, 바닥의 미세한 흠집, 창문 손잡이의 미묘한 위치까지. 그 어떤 것도 그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두꺼운 문은 겉보기에는 완벽했다. 틈새 하나 없이 닫혀 있었고, 안쪽에는 육중한 철제 빗장이 단단히 걸려 있었다. 문고리는 옛스러운 주물 장식으로 되어 있었고, 그 옆에 달린 잠금쇠는 누가 보아도 안에서 걸어 잠근 형태였다.

“범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혁은 문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아주 미세한, 눈에 잘 띄지 않는 흠집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그저 세월의 흔적이라고 치부할 법한 흠집이었다. 하지만 지혁의 눈에는 그것이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으로 보였다.

그는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 깊이 집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시계 초침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틱, 톡, 틱, 톡… 현실의 소음이 멀어지고, 시간의 장막이 걷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 빗소리, 그리고… 희미한 금속성의 마찰음.

지혁의 시야가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그의 눈앞에는 몇 분 전의 서재가 펼쳐졌다. 백 회장은 여전히 책상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문은, 문은…!

지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보았다.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슬로 모션처럼 생생했다.

범인이 문을 나서는 순간, 문은 완벽하게 닫히지 않았다. 아주 미세한 틈새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 사이로, 섬세하게 세공된 얇고 긴 금속 막대기가 쑤욱 들어왔다. 그 막대기는 안쪽에 걸려 있는 빗장 손잡이를 정교하게 파고들었다.

**끼이익— 찰칵!**

막대기가 빗장을 옆으로 밀어 걸쇠 홈에 완벽하게 안착시켰다. 그리고 막대기는 재빨리 다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제야 문은 ‘완벽하게’ 닫히면서, 육중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들어맞았다. 마치 누군가 안에서 빗장을 걸고 문을 닫은 것처럼!

“젠장…!”

지혁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주변 경찰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김 경감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류 박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지혁은 길게 숨을 내쉬며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눈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방금 본 광경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김 경감님. 이 밀실은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범인은 이 문을 나간 후에, 밖에서 빗장을 걸었습니다.”

“밖에서…요? 그게 어떻게…!” 김 경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지혁은 문 옆의 벽에 기대어 있던 장식용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은빛 손잡이 끝에 섬세한 문양이 새겨진 고급스러운 지팡이였다. 그는 그 지팡이 끝으로 서재 문과 문틀 사이의 아주 미세한 틈새를 가리켰다.

“이 틈새는 너무 작아 보이지만, 아주 얇고 견고한 도구라면 충분히 침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고 가는 강철 케이블이나….” 지혁의 시선이 백 회장의 책상 위에 놓인, 사용하다 만 양피지 두루마리를 받치고 있던 얇은 금속 막대로 향했다. 그것은 서재의 고풍스러운 장식품 중 하나였다. “…이런 것과 같은 도구로 말이죠.”

그는 지팡이를 이용해 문틈을 따라 움직였다.

“범인은 살해 후 이 서재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문이 완벽하게 닫히기 직전, 저 틈으로 길고 얇은 도구를 집어넣어 안쪽 빗장을 옆으로 밀어 걸쇠에 잠가 버린 겁니다. 그 후 도구를 회수하고, 문을 완전히 닫은 거죠. 그러면 겉으로 보기에는 안에서 잠근 완벽한 밀실이 됩니다.”

정적이 흘렀다. 김 경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과학수사팀 요원들도 경악한 얼굴로 지혁과 문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이 밀실의 트릭을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맸던 참이었다.

“하지만, 류 박사님… 그런 미세한 조작이 가능한가요? 빗장이 걸리는 소리나 움직임이 분명히 났을 텐데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래서 범인은 그 소리를 감출 다른 트릭을 썼을 겁니다. 이 방의 시계는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군요. 그리고 천둥번개가 치고 있습니다. 살해 시각이 대략 자정 무렵이라면, 천둥 소리가 그 모든 미세한 소리들을 완벽하게 덮었을 겁니다.”

김 경감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정말 그런 방법이….”

“이제 문제는 하나 남았습니다. 누가, 왜 이런 치밀한 수법으로 백 회장을 살해했느냐는 거죠.” 지혁의 시선은 서재의 다른 한편으로 향했다. 백 회장이 죽기 직전 작성하고 있던 양피지 두루마리였다. 거기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씨가, 피처럼 붉은 잉크로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 두루마리. 백 회장은 대체 무엇을 쓰려고 했을까요? 어쩌면 여기에 범인의 단서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혁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밀실의 트릭은 풀렸지만, 이제 진짜 이야기는 시작될 참이었다. 빗소리는 여전히 창문을 때리고 있었고, 저택은 다음 비밀을 품은 채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